외람

by 간질간질

수제비가 문서작업을 하는 동안 돌멩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외람되오나'

'뭘 잘 못했니?'

이번에도 돌멩이스런 일을 저지르고 나서 수제비에게 자백 하는 거라 생각했다.


'ㅎㅎㅎㅎㅎㅎ'

'?'

돌멩이가 웃으니 오히려 불안하다. 뭔가 실수한 것이 있나 싶다.


'아직 모르는구나? 외람이'

'?'

돌멩이는 한참 더 웃더니 수제비를 위해 설명을 시작한다.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와의 기자회견장에서 한 기자가 '외람되오나...'라는 말로 질문을 해서 널리 알려진 말이라고 한다. 외람이는 그래서 붙여진 또 하나의 기자의 별명이다.


수제비는 부끄러웠다.

원래 사회와 세상 돌아가는 일은 그래도 돌멩이보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멩이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과 그래도 한때 기자 밥을 먹었던 수제비에게 기자들의 일은 남 얘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같은 식구였다고 '어쩌다 그런 말을 썼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검색했더니 기사들이 나오고 있고, 커뮤니티에서는 조리돌림이 한창이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기자는 법적 대응을 불사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도 한다. 뒷맛이 썼다. 언제부터 기자들이 '법대로 하겠다'는 것으로 남에게 대응했을까? '법대로 하겠다'는 이야기는 기자들이 들어야 하는 말이었다. 남들이 밝히기 싫어하는 이야기를 굳이 캐내고, 조금이나마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찾아내기 위해 캐묻고 캐묻다 보면 취재원은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한 발 더 물어야 하는 숙명이다. 그래야 좋은 기사가 나온다. 처음엔 왜 이러시냐고 좋게 좋게 풀려던 취재원들은 상황이 심각해질수록 읍소하고, 읍소가 안 통한다는 생각까지 들면 기자에게 쌍욕을 하거나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말로 협박을 한다. 이때 기자가 할 말이다. '법대로 하세요' 이 말에 들어 있는 뜻은 하나다. '나는 이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나는 이 건을 기사화할 것이고, 당신이 법적 조치를 취하더라도 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런데. 요즘은 기자 편에서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연이야 있겠지.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튀어나온 어휘 선택의 실수일 수도 있고, 지나치게 예의 바른 것일 수도 있고, 오히려, 상대를 조롱하기 위한 말일 수도 있다. 아무튼 해당 기자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다. 아쉬운 것은 그냥 묵묵히 버텨줬으면 하는 건데... 사실 쉽지는 않다는 것도 안다. 아직 매체 밥을 먹고사는 후배들과 선배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옛날과 달라진 기자들의 노동강도와 사회적인 압박, 그리고 저열한 인신공격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안다. 적어도 그 사람들 면전에서는 그런 얘기를 할 도리가 없다.


수제비는 옛날 선배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완전 기자 햇병아리 시절.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 그런데 왜 기자들은 뒤에 존칭을 안 붙여요?"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기자들은 누구를 부를 때 호칭으로 끝나지 존칭을 붙이지 않는다. 상대방이 장관이라면 장관님이 아니라 '장관'으로 끝난다. 회사의 사장이나 대표를 만나도 대표님이 아니라 '대표'로 끝이다. 자기네들끼리는 존대할까? 아니다. 편집국장에게도 '국장!'이라고 부른다. 이런 모습이 어색한 수제비는 수습 때 들었지만 다시 한번 듣고 싶었다. 그 선배는 인터뷰를 자기만의 필체와 글체로 풀어내는 실력이 일품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그 속내를 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왜냐고?" 허리는 구부정하고 염색하지 않은 흰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쳐다본다. 허리는 구부정해도 옛날 조선시대 선비처럼 군살 없는 몸을 쭉 피더니 웃는다. 울림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자는! 국민을 대표해서 묻는 거야. 국민이 장관이든 대통령에게 낮춰야 하냐?"


깊은 웃음을 두세 번 웃더니 다시 책을 펼친다. 더 묻고 싶었지만 더 물을 말도 없다. 나중에 다른 선배와 이야기할 일이 있어 그 선배 이야기와 존칭을 쓰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 다른 기자 선배는 "옛날에 그랬다는 거지.. "라며 그다음 설명을 하지 않는다.


요즘도 이렇게 말하는 기자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수제비에게 외람이 건은 국민을 대표하는 힘든 책무를 내려놓았다는 해석도,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했는데 오해받았다는 해석도 가능했다. 외람이를 이야기한 기자를 만나면 취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첫 질문은 "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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