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을 가진 가문의 양
막시밀리안이 생각을 해보겠다고 한다. 나시르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겉모습은 순한 양이지만 늑대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막시밀리안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 분명했다. 눈치 빠른 막시밀리안이 숨겨진 제안의 의미를 모른 척 할리 없다. 누구보다 빠르게 자기의 이익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늑대가 아닌 사자라도 불러 들일일 것이다. 막시밀리안이 나시르와 손을 잡는 다면 준비는 끝났고 실행만 남는다.
부를 가진 막시밀리안, 그리고 권력을 쥐고 있는 나시르. 아니 정확히는 나시르 가문. 둘에게 없는 것은 물리적인 힘. 물리적인 힘은 개들에게 있다. 우리 세계의 삼권 분립이다. 돈과 권력과 물리적인 힘. 그리고 삼권분립을 지탱하는 법. 집단이 한 방향으로 나가려고 한다면 세 개의 힘이 같은 곳으로 향해야 한다. 막시밀리안과의 협력은 세 개 중 두 개의 힘을 합치는 것. 나머지 하나의 힘은 바꾸기로 결정한 것이다. 주인을 위한 개의 노릇을 하지 않으니 다른 야생의 개로 바꾸기로 한 결정. 문제는 덜 떨어진 니콜라이뿐이다. 니콜라이는 축복받은 지위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속해있는 집단을 혐오한다. 철없는 명예심 가득한 젊은이의 전형이다. 개들과 어울리고 개들의 논리에 오염되어 자꾸만 스스로의 배경이자 근거이자 양무리의 핵심인 원로원을 흔들려고 한다.
골치 아픈 니콜라이는 막시밀리안이 손을 잡으면 일단 해결이다. 니콜라이와 개들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이 '법'이기 때문이다. 법은 명시되어 있지만 법의 해석은 이른바 '국민의 뜻'에 따른다. 그 뜻은 수많은 양들의 의견이 모인 것이지만 나시르는 걱정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양들의 뜻을 바꿀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양들은 지극히 단순해 자기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으로 누군가를 던 저주면 된다. 설명도 필요 없다. 그저 '저 개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하면 된다. 목소리가 큰 양이 먼저 목소리를 내면 눈덩이 굴러가듯 여론이 만들어진다. 자기의 목소리가 퍼지는 것에 도취된 양은 목소리를 더 크게 내고, 주목받는 양을 시기하는 다른 양이 더 큰 목소리를 낸다. 목소리 크기 경쟁을 하다 누군가 '저 개는 쫓아내야 한다'라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한다. 이때가 중요하다. 양들은 순간 동요하고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눈치를 살핀다. 그때 가문의 힘을 써야 한다. 권력의 힘. 선택받은 자들의 고귀한 의견으로 합법적이라는 신호를 주면 된다. 그 신호는 침묵이고 방관이다. 그다음부터는 눈덩이의 속도가 몇 배로 커진다. '저 개는 이리의 첩자다', '저 개는 다른 양의 죽임을 방치했다', '저 개는 자기들의 잇속만 챙겼다' 등등.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믿음이 중요하지. 나시르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이니'라는 성경구절을 좋아한다. 믿음을 만들어 주면 모든 것이 진실이 된다. 나시르는 믿음의 창조자다.
나시르는 충직한 양치기 개 바스코를 싫어하지 않는다. 늑대와 달리 속이지 않기 때문이다. 바스코 같은 부류를 상대할 때 필요한 것은 한 가지 결정을 지키면 된다. 아니, 지키는 척하면 된다. 작은 이익에서는 법이 정해준 선을 넘지 않고, 중간 이익에서는 선을 타고, 큰 이익에서는 과감하게 선을 넘고 나서 법의 해석을 바꾸면 된다.
나시르 가문은 이익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한다. 나시르 가문의 이익은 현재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후대에게 전달하는 것. 그 점이 수대를 걸쳐 내려온 나시르 가문의 생존 목적이다. 목적을 위해 양처럼 순진한 얼굴로, 개처럼 충직한 말을 하고, 늑대처럼 잔인하게 행동하는 것이 나시르 가문이다.
나시르에게 늑대와 개는 저울에 올려져 있는 무게추와 같다. 어느 쪽으로 쏠리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시르 가문은 늑대의 이빨이나 개의 지구력은 가지지 못했지만 대신, 신에게 저울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