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혁명의 개

by 간질간질

회의가 끝나고 보리스는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마떼오가 뛰쳐나갔고, 바스코는 평소대로 침묵하고 돌아갔다. 보리스는 남들이 보면 뒤뚱거리며 헐떡거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보리스의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늑대의 시간이 돌아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리 전쟁 이후에 태어나 늑대 공화국을 양과 개의 피로써 무너뜨린 시대의 상징이 바로 양치기 개다. 보리스가 헐떡 거리게 된 이유도 사실 늑대 공화국에 맞서다 얻은 훈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젊은 보리스와 늙은 보리스는 다르다. 세월은 날이 선 칼을 녹슬게 하고, 날카로운 돌을 무디게 한다. 보리스의 날카로운 눈매는 뭉툭해졌고, 보리스의 날렵한 몸매에는 기름이 끼었다.

세월은 날카로움을 무디게 해서 안전하게 만들었고, 보리스의 눈매도 선하게 만들었다. 보리스의 둥그런 몸에 낀 기름은 세상을 부드럽게 돌게 만드는 윤활유이기도 해다.


보리스는 여전히 정의로움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못지않게 안정적인 삶도 중요하다. 그래서, 혹자는 변절자라고 욕을 하지만 보리스는 강한 투쟁만이 답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강한 투쟁은 피의 소모량이 늘어난다. 하지만, 타협과 협의는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된다. 조금의 땀만 흘리면 모두가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 보리스가 젊은 날 뾰족하게 살다 다친 다리가 저려온다. 다리는 훈장이자 상처다. 그 당시 늑대들이 조금만 양보했더라면 그 당시 개들이 조금만 참았다면 더 행복했을 텐데... 보리스는 하늘을 한번 쳐다본다.


보리스는 늑대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떠 오른 늑대는 라훌이다. 라훌은 얘기가 통하는 늑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늑대 공화국이 무너진 이유는 선을 지키기 않았기 때문이다. 전체 공동체가 살아남기 위해 지켜야 하는 것은 올바름이 아니라 쏠림을 막는 것이다. 쏠리면 저울은 균형을 잃고, 균형이 무너진 것을 두면 결국 쏟아지게 되어 있다. 안정적인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구조. 결국, 단단한 무게중심과 무게중심 주변으로 붙어 있는 오뚝이 구조가 필요하다. 사회의 불안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더 강한 중심이 필요하다. 중심이 늑대에게 쏠려서는 안 된다. 라훌이라면 균형을 위해 개들과 싸우지 않고 협의점을 찾아낼 것이라 믿었다.


집으로 들어선 보리스는 독한 술을 한잔 한다. 그리고 달을 쳐다본다. 달은 보름을 지나 일그러지고 있다. 개의 시간이 끝나간다. 늑대가 달을 완전히 삼켜 그믐이 될 때까지 버텨야 한다. 내일 저녁에 라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독주를 한잔 더 들이킨다. 희생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과도한 피는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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