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는 약속된 날짜와 시간에 맞춰 막시밀리안의 집을 찾았다.
"어서 들어와.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니 서두르자"
막시밀리안은 올리버에게 나무껍질 같은 거친 천을 주면서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다.
"전에 입고 있던 옷은 아무것도 걸치면 안 돼. 속옷도 다 벗으라는 말이야"
올리버는 네네라고 대답하며 옷을 벗고 거친 천으로 만들어진 껍데기 같은 옷을 걸쳤다.
"벌써 다 갈아입었나?"
막시밀리안같이 부유한 양들은 몇 겹의 옷을 갖춰 입지만, 평범한 올리버는 바지와 윗도리 밖에 없었다. 속옷을 입는 젊은 양들은 거의 없다. 서민의 삶을 알지 못하는 막시밀리안의 생각엔 한참 걸릴 것 같았지만 막시밀리안이 말하고 자루 하나를 챙기는 동안 환복은 끝나 있었다.
"다행이네. 시간을 아낄 수 있겠어!"
막시밀리안은 모든 것을 효율로만 따진다. 올리버의 현재 감정, 생각, 궁금증엔 일절 관심이 없다. 오로지 정해진 목표를 향해 최적화하고 성과를 얻는 것에만 집중한다.
"자. 이 자루를 챙겨서 따라와"
자루는 묵직하고 낯선 냄새가 나지만 못 견딜 만큼 무겁지는 않았다.
"저. 어디로 가는 건가요?"
"가면서 말을 해주지. 지금은 늦지 않게 움직여야 해"
양마을을 나서 늑대의 숲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밤에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이었지만, 이곳에 살던 죽음의 사자들은 이미 양마을에 들어와 있다. 죽음의 사자들이 떠난 죽음의 숲으로 들어가는 양 두 마리. 올리버는 가 본 적 없는 곳까지 들어갔다. 막시밀리안은 익숙한 듯하다. 전에 이반을 모셔오기 위해 들어갔더 곳이라 익숙한 것일까? 비대한 몸집에 비해 지치지 않고 숲을 헤쳐 나가는 막시밀리안이 다다른 곳은 높다기 보단 나이 먹은 듯한 나무 아래였다.
"어르신. 잘 걸으시네요?"
"쉿!"
막시밀리안은 두툼한 손가락으로 올리버에게 주의를 주곤 나무 위를 쳐다봤다. 나무 위에는 올리버가 발견하지 못한 빛나는 동그라미 두 개가 있었다. 그리고 나무 뒤에서 조용히 오전에 봤던 바람의 송곳니가 나타났다.
"미네르바님. 의식을 집행해 주시고 증인이 되어 주시지요"
커다란 날갯짓 후에 나타난 것은 커다란 부엉이 었다. 주로 밤에 활동하기에 올리버가 직접 본 것은 처음이다. 어려서부터 밤에 혼자 다니다 보면 커다란 새에게 잡혀 먹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말만 들었다.
미네르바로 불렸던 부엉이가 나무 아래에 자기의 깃털을 뽑아 원을 만들었다. 그리곤 올리버에게 묻는다.
"준비되었나 젊은이?"
"네?"
"제물과 제물을 받아들일 준비 말일세. 막시밀리안은 여전히 늑대의 습성을 버리지 못해서 불친절하군"
올리버는 무슨 의민지 알 수 없었다.
"미네르바님 덕분에 늑대의 탈을 벗은 지가 언제인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단지 아둔해서 기억을 못 했을 뿐이죠. 올리버 어서 이 원안에 자루에 있는 것을 놓고 미네르바님이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네"
미네르바가 올리버 앞에 섰다.
"자네는 무엇이 되고 싶은 건가?"
"저... 저는 고기를 먹는 양이되고 싶습니다"
미네르바는 말없이 막시밀리안을 쳐다본다.
"왜 이야기를 다 하지 않았지? 이 아이는 자기가 무엇이 되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막시밀리안이 대답한다.
"자신이 절실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미네르바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다시 묻지. 자네는 무엇을 원하는가?"
"고기를 먹고 싶습니다"
미네르바는 올리버를 깃털로 만든 원안으로 인도했다. 그리곤 올리버가 가지고 온 자루를 풀었다. 몇 겹으로 잘 싸매어진 자루 안에 들어 있던 것은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예상할 수 있는 것. 고기였다.
"자 씹어서 삼키도록. 그리고 삼키자마자 이 물을 바로 마셔야 해. 만약, 물을 마시지 못하면 자네의 노력은 모두 헛 것이 될 거야"
미네르바가 전해준 고기는 피가 엉겨 붙은 살점이었다. 그리고 그 옆엔 나무 그릇에 담긴 맑은 물이 담겨 있었다. 올리버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미네르바가 먼저 이야기를 한다.
"올리버라고 했나? 자네는 아무런 말도 해서는 안돼. 지금 주어진 시간이 지나면 기회는 다시 얻지 못하게 될 거야. 충분한 설명을 들었든 아니든 그것 또한 운명이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 고기를 먹고 싶은지 아닌지 그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결과는 스스로가 모두 짊어져야 하네. 모든 생명체는 결국 자신의 삶을 짊어져야 하는 것. 그게 생명의 무게. 선택하게"
올리버는 시간이 흘러감을 느꼈다. 지금 원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었다. 그게 아니면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는 순간 어떤 변화도 얻을 수 없다. 아무런 설명 없이 자기를 여기까지 이끈 막시밀리안이 원망스러웠다. 올리비아의 얼굴도 떠 올랐다. 하지만, 이 숲에선 혼자일 뿐이다. 원 안에 갇혀 있는 것도, 원안을 탈출하는 것도 올리버의 선택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선택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