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나 모든 것을 기록해 둔 컴퓨터가 있다고 해도 기억이 만들어지기 이전을 기억할 순 없어"
당연하며 뻔한 말이다. 간만에 말 같은 말을 했다고 알게 해선 안된다. 조금이라도 고개 아니 눈동자를 돌리면 찌를 노려보다 낚아채는 낚시꾼보다 더 확실하게 채 올릴 것이다.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하면 켜고 끄는 것 밖에 없는 스위치처럼 두 가지 단어로 귀결된다. 깔때기처럼 모든 이야기의 결론이 모이는 단어는 정자와 난자. 보통의 수컷들이라면 수정시키는 과정까지만 광적으로 집착하는데 이 녀석은 정자와 난자의 수정 순간에만 집착한다.
"정자와 난자가 만들어지기 전의 이야기야. 우주의 기억"
미끼를 잘 던졌다. 정자와 난자라는 익숙한 재료로 절인 단어를 사용했지만 결과물은 '수정'이라는 닳고 닳은 레시피가 아니었다. 맨날 생선으로 구이만 만들던 사람이 갑자기 조림을 내놓은 격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억겁의 시간만큼 쳐댔나 보다. 마침내 네안데르탈인 급의 단단한 머리뼈를 때리고 때려 허블 망원경으로도 찾기 힘들 만큼 숨어 있는 녀석의 뇌에 나노 수준의 파동을 일으켰음을 깨달았다. 수제비는 '유레카'를 외칠 뻔했다. 감정을 억눌렀으나 미세하게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빠르게 녀석이 수제비의 머리카락을 낚싯줄처럼 팽팽하게 채 올린다.
"사람의 기억은 뇌가 생기기 전에는 존재할 수 없어. 아무렴! 기억이라는 것 자체가 없지. 눈으로 무엇을 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귀로 소리를 듣고, 혀로 맛을 보고, 피부가 가시에 찔려서 피가 흘러도 기억할 수 없어. 뇌가 없기 때문에 어디에도 저장할 수 없는 거야. 방금 경험한 그 느낌을 아무것도 잡아두지 못해. 뇌가 없으면 담아둘 곳이 없는 거야. 옛날 우리 삼촌이 쓰던 컴퓨터는 하드라는 것이 없었데. 그런 걸 어떻게 썼는지 모르겠지만 컴퓨터를 끄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거야. 똑같아. 사람의 기억은 없어. 단지 경험만 있을 뿐. 사람이 기억을 하려면 반드시 뇌가 필요해. 뇌가 생기려면 결국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란이 만들어져야 하는 거야.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일으키고 우리 몸의 모든 장기를 만들어 내면서 궁극적으로 '뇌'라는 기억이 담길 창고를 만들어 낼 때! 그때가 바로 '기억'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는 거야."
팔뚝에 힘이 들어갔다. 돌멩이-녀석을 부르는 명칭-와 삶을 나누면서 수제비는 생활 근육을 발견하게 됐다. 아무런 운동을 하지 않아도 돌멩이의 가당찮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모든 근육 하나하나가 살아났고, 힘이 들어갔고, 근육이 되었다. 녀석의 뇌는 분명 매끈한 조약돌처럼 생겼다는 데 모든 재산과 오른팔을 걸 자신이 있다. 커다란 머리와 어떤 것도 뚫을 수 없는 두꺼운 머리뼈. 그 안에 아기 주먹보다 작은 뇌가 들어 있을 것이다. 아기 주먹도 과하다. 호두도 과하다. 잘해야 땅콩 크기일 거다. 뇌 크기의 수십, 수백 배가 되는 공간은 비어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 공간에서 땅콩만한 크기의 뇌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부딪히며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을 거다. 머리뼈로 둘러싸인 암흑 공간. 블랙홀은 우주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녀석의 머리뼈를 쪼개 봐야 발견할 일이다. 돌멩이의 뇌는 좌뇌와 우뇌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쪽은 정자, 또 다른 쪽은 난자. 간뇌가 있을 자리에는 '란(卵) 뇌'가 있을 것이다.
"아니. 아니. 난 사람의 기억이 아니라 우주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야!"
타조의 뇌는 자신의 눈보다 작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녀석의 뇌는 타조 것보다 작을 것이 분명하지만, 녀석의 눈보다 작다고 하기는 어렵다. 눈이라고 불러야 할 곳에 한일자 두 개만 그어져 있기 때문에 아예 뇌가 없다고 해야 논리적으로 말이 된다. 희끄므레한 눈썹 밑에 일(一) 자가 그려져 있어 '눈이라고! 제발 믿어달라고!' 울부짖는 것 같다. 그래도 뇌는 있는 것 같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사람의 말을 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과 수제비의 오른손 근육에 힘이 들어갈 때 위험을 감지하는 본능 때문이다. 바퀴벌레도 뇌가 있지 않을까? 학술논문이라도 뒤져봐야겠다. 바퀴벌레보다 나은 면은 말을 한다는 점이고, 바퀴벌레보다 못한 점은 나올 때와 숨을 때를 모른다는 점이다. 두 생물에게 같은 점도 있다. 잡으려고 손을 들기도 전에 도망가는 점이다. 이번에는 말-사람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로 겨우 목숨을 건졌다. 알리도 없겠지만 '우주의 기억'이라는 낭만적인 단어로.
"우주의 기억이 있다면, 우주가 생겨난 이후에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되지. 그러니 우주의 기억은 아무리 오래되고 따져봤자 빅뱅 이전에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야. 빅뱅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되는 그 순간! 수정란과 같은 거라고!"
우주에 기억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인류에게 기억이 있는 것은 안다. 인류의 기억은 '역사'라는 것으로 남겨져 왔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우리가 제대로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지, 과거의 잘못을 깨닫고 고치고 있는지, 옛날과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돌멩이를 보면 더 모르겠다. 기억이란 것이 있는지. 아니, 뇌는 있는지. 아니, 사람과 동물에 차이가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