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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받지 않은...

by 간질간질

"난 회사 그만두면, 출판사나 대형서점 같은 데서 북 리뷰하는 일을 하고 싶어"

돌멩이는 항상 회사에서 돌아오면 비슷한 말을 한다. 회사 시달림에 비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떠드는 것은 돌멩이의 습성이다. 돌산에서 돌이 아래로 구를 때 더 많이 더 자주 더 큰 소리를 내면서 데구루루 구르는 것처럼 돌멩이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 수 있다.

오늘 표정에서 읽은 시달림의 정도는 높다. 이런 날은 듣는 척해 줘야 한다.


"많은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최저임금보다 1만 원 더 받는 수준이면 만족할 거야. 대신,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잖아. 나는 책 읽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 아니고. 게다가 나는 말은 잘 못하지만 글을 못 쓰지는 않잖아?"

돌멩이가 책 리뷰어의 일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 중에 23가지를 빼도 말릴 이유는 10 폰트 크기로 A4를 한 장 빼곡히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줄 간격 1에. 엔터는 한 번도 누르지 않는 조건이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수제비는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빨리 들어줘야 나머지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최근에 읽은 책으로 해볼까?"

말릴 필요도 없다. 어차피 할 테니까. 돌멩이도 안다. 자기가 말리든 말든 할 거라는 걸.


"'2020 트렌드 노트. 혼자만의 시공간'이라는 책이야. 출판사는 북스톤. 가격은 합리적인 15,000원. 2019년 10월에 초판이 나왔는데, 같은 달에 초판 2쇄를 발행할 만큼 매력적인 책이지. 게다가 표지를 보면 미국의 팝아트 작가인 키스 해링의 작품처럼 보여. 대중과 쉽게 친해지려고 하는 작가의 그림처럼. 책 내용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살고 있는 삶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책이야"

키스 해링 같은 소리 하네라는 말풍선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뜬금없이 돌멩이의 고백이 생각났다. 나를 좋아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키스를 잘해서'라고 대답했던 황당함. 그럼 키스하기 전에는 대체 왜 만났던 걸까? 말풍선을 얼른 지운다.


"빅데이터 분석 기업인 다음소프트의 생활변화관측소에서 낸 책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로 사용한 단어들을 모으고 분류해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을 책으로 엮은 거지.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단어들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해석을 해주는 점이 매력이야"


굳이 책 표지 앞에 있는 설명문을 길게 읊는 것을 보니 초짜 리뷰어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용자들과 관련 없이 돈을 주는 사람이 만족할 만한 내용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트루먼 쇼'에 등장하는 가짜 가족들이 어설프게 화면을 향해 상품을 들고 홍보하는 장면 같다.


"변화 화는 공간, 관계, 소비라는 큰 3개의 챕터가 있고, 각 챕터마다 여러 개의 소제목들로 구성되어서 읽기가 편해. 제목들을 보면..."

참지 못하고 눈썹이 불끈했다. 지루하게 읊는 행위를 하면 매우 트렌디하게 맞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돌멩이가 바로 다음으로 넘어간다.


"수제비를 위해서는 챕터 6장을 추천하고 싶어. 'X세대 엄마, 변화하는 엄마'라는 제목인데,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중반에 태어난 X세대 엄마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거든. 수제비도 20대 때는 개성과 자유분방함으로 가득했잖아. 당연히 배낭여행도 다니고 신인류의 삶을 누리다가 엄마가 된 건지. 그리고, 현실에 치이게 된 거야. 자유와 개성을 누리던 X세대가 엄마가 돼서 가족을 생각하는 '희생적인 엄마'를 벗어나지도 못하는 삶의 이중적인 삶을 살게 되는 거. 그러면서 나오는 여러 가지 변화들. 유튜브로 삶을 배우고, 딸과 함께 여행을 다니고, 여전히 겁을 먹지만 배낭여행을 꿈꾸는. 마지막 소제목은 눈물까지 나온다니까. '아줌마가 되기 이전에, 그들은 X세대였다' 감동적이지 않아?"


요약하면 '수제비=아줌마'라는 뜻이다. 아이도 없는 수제비는 졸지에 돌멩이라는 큰아이를 키우는 희생적인 '아줌마'가 되었다. 돌멩이는 여전히 남자사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돌멩이는 움직일 줄 모른다. 아무리 맞아도 깨지고 가루가 될지언정 그 자리에 있는다. 돌멩이도 마찬가지다. 가르치고 타이르고 때려도 '돌'이다.


"밥이나 먹자"

지쳤다. 밥이라도 먹여야 입이 다물어질 것 같았다.


"오.. 소고기네? 한우야? 청정 호주산? 아니면 프리미엄 등급의 곡물 먹인 미국산? 이건 실용소비일까? 매력소비일까? 요즘 소비는 크게 매력소비와 실용소비로 나뉜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는 돈을 많이 들여서라도 사는 '매력소비'와 별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것은 최대한 저렴한 것으로 사는 실용소비라고 하는 거라고"

쳐 맞을 소리를 계속한다.


"취향템과 국민템도 있는데... 재밌는 건 두 가지 아이템을 사는 사람이 동일하데. 우리는 취향템과 국민템을 다 같이 소비하는데 각자 취향에 따라 취향템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국민템으로 돌리는 거지"


수제비는 못 참고 나지막이 소리를 뱉었다.

"쳐 돌아버리게 맞고 싶냐?"


돌멩이의 일자 눈이 종이 두장 두께로 커졌다. 수제비의 목소리가 크고 흉폭했기 때문이라고 이 글을 읽는 약 3명의 독자도 생각했으리라.


돌멩이 가라사대

"어? 너도 책 읽었구나? '처돌이'도 트렌디한 단어래. 난 몰랐어. 처갓집 양념통닭에서 내놓은 굿즈 이름이 처돌이. 엄청 인기를 끌어서 중고로도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 됐고. 인형 자체보다 '열광적인 상태'를 뜻하는 단어로 변한 거라고 하더라고. 역시 넌 책을 많이 읽는 것 같아. 존경해!"


수제비는 혼자 있고 싶어 졌다. 혼자만의 시공간이 절실하다.

그리고, 돌멩이의 머리를 효과적으로 가격할 수 있는 템을 유튜브에서 찾아야 봐야겠노라고 다짐하고, 잊지 않기 위해 인스타에 올리기로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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