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 클리어

by 간질간질

돌멩이가 또 늦는다. 요즘 돌멩이는 많이 늦는다. 자주 술을 마신다. 돌멩이는 술을 싫어한다. 오늘도 술을 마시고 들어오나 보다. 수제비는 헛개수를 주문해서 냉장고에 채워 넣는다.


돌멩이는 홍대역 근처 이자카야에 앉아있다. 전에 시키곤 남은 비잔 클리어를 마시고 있다. 비잔. 美山이라 쓰여 있지만 일본식으로 읽을 때 '비잔'이라고 한다. 돌멩이는 2층 이자카야 창가에 앉아 풍경만 바라보고 있다. 대단할 것 없는 담쟁이지만 녹색이 짙다. 시간의 힘이다. 과학적으로는 지구 공전과 자전의 힘일지 모르지만 대단할 것 없는 담쟁이는 시간이 되면 짙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떨어지고. 시간의 힘을 '자연스럽다'라고 말한다.


주인인 젊은 청년이 '명란 치즈감자'를 내온다. 이 집의 시그니쳐 메뉴다. 요즘 신경성인지 크림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화장실을 자주 가지만, 스트레스에는 단것이 최고다. 녹인 치즈 가득한 한 수저를 입에 넣는다. 부드럽고 달콤하게 녹는다. 담쟁이의 색과 치즈의 흰색이 짙다. 비잔도 클리어하다. 돌멩이만 회색이다.


돌멩이의 형은 바위다. 형수님은 이끼. 이야기를 풀어 볼 시간이다. 돌멩이는 이끼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이끼와 바위는 쇼윈도 부부다. 돌멩이에게만 창문을 깬 날카로움을 드러낸다. 언제나 돌멩이는 깨진 유리에 베여서 전전긍긍한다. 술을 한잔 들이켠다.


바위가 전화해서 돌멩이에게 이끼가 주기로 한 것을 왜 안주냐고 따진다. 돌멩이는 먼저 '달라는 문자를 이끼에게 보내기로 하지 않았냐'라고 바위에게 말했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이끼는 나쁜 년이다. 이끼가 그동안 바위를 얼마나 무시했는지, 얼마나 자기를 이용해 먹었는지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끝도 없이 쏟아낸다. 귀에서 피가 나고 입에서 단내가 올라온다. '문자는 이끼가 요구한 최소한의 요구사항'이다. 문자를 보냈다는 것으로 아무런 시비를 걸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끼는 했지만 바위는 믿지 않는다. 왜냐면 이끼는 나쁜 년이다.


이끼에게 톡을 날린다. 물건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항상 논리적인 이끼는 바위가 주기로 한 문자 한 통 없이 뭘 또 달라냐며 앞뒤 맞는 말을 한다. 바위는 나쁜 놈이다. 바위가 그동안 이끼를 얼마나 무시했는지, 얼마나 자기를 이용해 먹었는지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쏟아낸다. 눈에서 피가 나고 입에서 단내가 올라온다. '최소한의 요구도 들어주지 않으면서 추가로 요구하는 바위에게 진절머리 친다. 나중에 꼭 챙겨주겠다고 돌멩이가 얘기했지만 이끼는 믿지 않는다. 왜냐면 바위는 나쁜 놈이다.


결론은 알고 있다. 항상 뭔가 더 주는 것은 이끼다. 이끼네가 잘 살기 때문이다. 바위네도 잘 산적이 있었다. 하지만, 몰락한 부잣집의 도련님이 그렇듯 성깔만 남았다. 조금만 뜻이 어긋나면 눈알을 뒤집고 덤벼든다. 아니, 정확히는 돌멩이에게만 덤빈다. 이끼 앞에서는 얌전해진다. 이끼네가 잘 살기 때문이다.


치즈가 식었다. 비잔을 한 잔 더 따른다. 돌멩이는 술을 못 마신다. 그래도 한잔 털어 넣는다. 돌멩이는 안다. 뚱뚱한 비잔 한 병을 클리어하지 못한다. 병을 남겨둔다. 담쟁이는 바람에 하늘거린다. 색도 짙다. 냉장고에는 헛개수 하나가 없어질 거다. 바위와 이끼는 만나면 좋은 파트너라고 치켜세운다. 시간의 힘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브랜디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