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수제비에게 카톡으로 기사 하나를 보내줬다.
수제비는 왜 갑자기 신문사에서 벌어졌던 일이 생각나는지 알 수 없었다. 2000년대 초반인지 중반 인지도 가물가물하다. 신문사에서 벌어지는 일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신문사에서는 시간이 멈춰 버리기 때문이다. 신문사의 기자들은 '하루'를 산다. '하루'가 넘어가는 일은 당장 고민해야 할 일이 아니라 미룬다. 급한 일이면서 중요한 일이라면 '하루'안에 해결해야 한다. 모든 기준은 '하루'에 달려 있다. '하루'를 나누는 기준은 0시가 아니다. '마감'이다. '마감'까지는 전쟁터고, '마감'이 끝난 후는 천국이다.
신문사에서 벌어졌던 일과 성교육 사건이 겹쳐 보이는 것은 '마감'때문은 아니었다. 디지털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던 시기에 벌어진 일이다. 기자들 집단은 성기사단과 같다. 그만큼 자부심과 자존심으로 뭉쳐 있다. 하나하나의 기자들은 성기사(paladin, 聖騎士)들이다. 자기들의 신념에 따라 모든 우선순위를 세우고 흔들림이 없다. 성기사들에게는 믿음을 수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믿음의 구체적인 모양은 성경일 터이다. 기자들에게 성경은 '종이신문'이다. '종이신문'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며, 종이신문에 조금이라도 해가 가는 일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성전과 같은 일일 터다.
가장 쉬운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성기사도 아니고 한낱 농노의 취급을 받는 디지털 인력(과거에는 '온라인 인력'이라고도 불렸다)들이 화두를 던졌다.
"신문에 나오는 주요 기사를 꼭 아침에 내보내야 할까요? 저녁에 내보내면 더 많은 트래픽과 이용자 만족도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무지렁이 농노의 이야기라 넘길 수도 있었을 텐데, 이미 기사단에서는 '성전'에 들어갔다. 가장 심각한 '신에 대한 도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믿는 신은 '저널리즘'이다. 신을 섬기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종이신문'이다. 종이신문보다 먼저 권위도 없는 디지털로 기사를 먼저 내보내자는 말을 하다니, 이것은 신에게 제물을 바치기 전에 미리 빼서 먹어 보자는 말과 다름이 없다.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기 전에 제사음식에 손을 대겠다는 것만큼이나 무례하고 무도하고 생각 없는 행동이다.
종교재판이 열렸다. 공의회가 소집되었다. 당연히 공의회의 의장은 편집국장이다. 그리고, 종교재판에 불려 나온 디지털 인력은 눈을 돌릴 곳도 없이 안절부절이다. 그나마, 그 당시에는 기사단의 힘이 많이 약해진 시기였다. 안 그랬다면 디지털 인력은 바로 '추방' 되었을 것이고, 디지털 수장은 목이 잘렸을 것이다. 한낱 무지렁이 농노의 말이라도 '닥쳐라!'라고 끝낼 수는 없고 이유를 대야 했다.
디지털 농노의 목이 잘리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불경한 이야기는 공의회에서 기각되었다. 공의회가 발표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종이신문 구독자라는 지고지순의 귀족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는 행위는 해서도 안 되는 일"이란 결론이었다. 어렵다고? 더 쉽게 표현하면 '공짜로 기사를 인터넷서 보는 사람들에게 미리 기사를 내보내면 돈 주고 종이신문을 받아보고 있는 소수의 구독자들이 왜 우리 신문을 보겠냐!'는 이유였다.
성전이 마무리되었고, 성기사들은 원래의 행동으로 돌아갔다. 총이 등장한 시기에 번쩍거리는 갑옷을 입고 말을 잘 먹이는 순수한 기사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외면으로 지켰다.
다른 성스러운 이야기를 할 때다.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에 이제 모두가 동의한다. 하지만, 성교육을 구체적으로 해줌으로써 문란한 성생활이 퍼질 것이라는 생각은 종이신문 구독자를 위해 디지털 뉴스를 보내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디지털 뉴스는 모두가 보고 있고 종이신문 구독자는 줄어들고 있다. 신문사는 '종이신문'을 지키기 위해 '외면'하는 정책보다 '직시'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디지털에서 포르노는 넘친다. 성에 대해 '외면'하는 정책보다 '직시'하는 교육을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아이들은 부모가 알려주지 않아도 배운다. 부모가 모른척할수록 사회가 헛기침을 하며 외면할수록 더 은밀하게 더 자극적으로 성을 배운다.
콘돔을 사용하면 적어도 임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문제가 커지는 것을 막을 수는 있다. 용감한 선생님이 나서서 얘기했다. 마치, 디지털 농노가 종이신문 기사단에게 얘기한 것과 같다. 결론은 같다. 성부모님이 나서서 교장선생님에게 항의했고, 용감한 선생님의 행동은 취소되었다.
성스러운 사람들이 성스러운 판단으로 성전을 치른 이야기다. 어느 글자의 성일까? 그래서, 콘돔을 고등학생들이 알면 안 되는 걸까? 보여주면 아이들이 모여서 서로 '시험'해보자고 할까? 무엇이 정말 겁이 났을까?
수제비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다시 쓰던 원고에 집중했다. 수제비에겐 이미 성적인 내용은 별로 신비하지도 얼굴을 붉힐만한 일도 아니다. 그냥 사는 일 중에 한 가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