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가 술 취해 들어왔다. 얼굴이 아직도 붉다. 보통은 들어와서 씻고 얌전히 자는데 오늘은 수제비에게 시비를 건다. 수제비는 술 대신 메틸알코올을 마시고 미쳤다고 생각했고, 산성비를 허용치 이상으로 맞았기 때문이라 생각했고, 잠잘 때 베개로 숨을 못 쉬게 죽일까 생각했다.
"갑질이 뭔지 알아?"
"니가 하는 짓"
"내가 무슨 갑이야. 난 을이라고...니가 갑이잖아. 아까도 카톡에 늦는다고 남겼는데. 무성의하게 넌 동글뱅이 두 개만 보냈지. 누가 봐도 귀찮을 때 쓰는 수법이잖아. 모음도 아닌 자음. 똑같은 자음 땅. 땅. 두 번 누르면 되는 거. 늦는다는데 걱정도 안 돼?"
"니가 지금 갑질을 하고 있잖아!"
아무리 술을 마셨어도 돌멩이는 태생이 을이다. 을로 태어난 자는 자기보다 센 동물이 힘을 모으고 있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알게 된다. 세상은 공평하다. 신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한 능력치를 배분했다. 단지, 누군가에게는 체력을 누군가에게는 지력을 그리고 을에게는 '위험 인지 능력'을! 술의 힘을 빌어 멈추지 않고 계속 수제비에게 대들었다가는 내일 회사 출근을 못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병원 문턱에만 들어가면 발부되는 전치 2주의 치료를 요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 달이 넘는 장기 요양을 해야 할 심각한 부상을 얻게 될 것이 분명했다. 수제비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고, 그런 능력을 돌멩이에게 행사하는데 어떠한 주저함도 없다.
돌멩이는 갑자기 서러웠다. 세상에서 자기만큼 착하게 을의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살아온 사람도 없는데 이 세상엔 육식동물 같은 맹수들만 가득하다. 자기 같은 초식동물이 살기 위한 어떤 배려도 없다. 수제비는 그래도 초식동물을 위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돌멩이에게 수제비는 라이온 킹에 나오는 품바와 함께 사는 심바였다. 품바는 돌멩이. 그런데 오늘 돌멩이 품바는 사자 심바의 먹잇감이 되는 공포를 느꼈다. 초식동물도 되지 못한 존재라는 인식. 한 떨기 자존감의 상처. 돌멩이에겐 초식동물도 사치다. 돌멩이는 말 그대로 풀(草)이다. 갑은커녕 을도 아닌 병. 의식의 흐름을 따라 생각하는 돌멩이의 발달된 '의식 흐름'이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 전에 이야기했었나? 광전사-두 자릿수의 조회수도 기록하지 못하고, 다섯 개의 좋아요도 얻지 못한 그 글-라는 것이 있다고. '의식의 흐름'이란 것에 돌멩이의 강낭콩만 한 뇌가 올라타면 어디로 갈지 모른다. 광전사처럼 버저커처럼, 베르세르크처럼 미친년 널 뛰듯, 신 내린 무당이 칼 춤을 추듯 멈추지 못한다. 이때가 되면 수제비도 놔둔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친놈은 피해야 한다'
다시 돌멩이의 급류 같은 의식을 따라가 본다. 사실 의식을 알 수는 없다. 다음날 아침에 수제비가 어제 왜 그랬냐며 돌멩이의 머리통을 두들기자 돌멩이 입에서 핑계라고 나온 말을 녹취해서 알게 됐다. 앞뒷말이 안 맞아도 상관없다. 미친 사람 이야기가 앞뒤가 맞으면 미친 사람이 아니다. 소시오패스지. 돌멩이는 곱게 미친 사람이지 소시오패스는 아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간다.
'나는 초식동물은 커녕 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랬더니 갑자기 서러운 거예요. 그래도 난 을인줄 알았는데, 갑은 기대도 안 했지만 을은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을도 아니었던 거잖아요. 갑을병. 병... 맞아요. 난 병. 병신이었죠. 나이 먹고 내가 참 병신 같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번개가 번쩍하고 천둥이 울리는 거예요. 그리고 호우경보가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비가 오는 거예요. 비가 후드득 떨어져요. 창문을 때려요. 창문은 병신같이 비를 맞고 있는 거예요. 창문에 비가 주르륵 흘러요. 내 피처럼 흘러요. 병신 같은 창문이 나랑 똑같잖아요. 창문이 우는데 나도 울어야죠. 창문에 비가 흐르는데, 내 몸엔 눈물이 흘러요. 주르륵 흘러요'
여기까지가 돌멩이가 왜 울었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수제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늘 그렇듯 '돌멩이 보기를 돌처럼'하면 넘어갔다.
어제저녁 이야기는 눈물을 흘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제목에 '질'이라고 써놓고 풀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멩이가 우는 바람에 이야기는 여름날 캐러멜처럼 죽죽 늘어지고 있다. 원래 글 제목에 맞는 이야기로 돌아서야 한다. 안 그러면 우린 돌멩이의 의식을 따라 해가 뜨도록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읽어야 할 참이다.
"질질 짜지 마!"
수제비가 낮고 강하고 섬뜩하고 무게 있고 살의를 무겁게 담아 이야기했다.
돌멩이의 흐름이 수제비의 단어로 퀀텀점프를 한다.
"갑질의 질이 무슨 뜻인지 알아? 난 항상 을질만 하고 살았단 말이야! 질리도록 을질"
수제비는 알고 있다. 이 와중에도 라임을 맞추려는 돌멩이의 편집증.
"질은 XX염색체를 가진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체 기관을 말하는 거야"
돌멩이가 쳐다본다. 온갖 경멸과 황당함을 눈으로 표현하려 했겠지만, 돌멩이의 어머니를 제외하곤 돌멩이의 A4 한 장 두께(그것도 50g짜리)의 눈에서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수제비의 눈에는 불타는 고구마에 잔뿌리 두 개가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만 보였다.
"갑질, 도둑질, 선생질 그런 거 말이야. 국어사전을 뒤져보면 '질하다'의 어근이라고 나와. 근데 '질하다'는 질펀하게 놀다의 뜻 이래. 갑질은 맞아! 갑으로서 질펀하게 을을 괴롭히면서 노는 거야. 그런데 선생질이 질펀하게 노는 거야?"
수제비는 뭔 소리하나 쳐다보기만 했다. 돌멩이가 이어간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괴롭히는 거야? 그러면서 즐겨? 어?... 그런 거 같기도 하네..... 도둑질은 도벽 있는 사람들이 질펀하게 노는 거지. 훔치면서 즐기는 거야.. 그러네.... 어....?"
수제비는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을질은 아니야! 을은... 괴롭힘을 당하는데 즐거워? 질펀해? 어? 어? 어..... 어? 사디즘의 반대인 마조히즘은 당하면서 즐거운 건데... 어? 그럼 나도 즐기는 건가? 아닌데..."
돌멩이의 회로가 꼬였다. 워낙 잘 꼬이는 돌멩이의 뇌가 큰 머릿속에서 추락한 거다.
수제비는 쉴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추락하는 돌멩이의 뇌에 바위 덩어리를 매달아 줬다.
"계집질이란 말도 있지. 여자의 경우엔 서방질이라고 하고. 그런데 이상하다. 그렇지? 왜 남자가 하는 것은 계집질이고 여자가 하는 것은 하고 많은 단어 중에 '서방'일까? 매우 편파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돌멩이는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뭐라 대꾸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또 하나. 질이 중요할까? 양이 중요할까? 많이 본 기사가 중요할까? 단독기사가 중요할까?"
수제비는 바위를 매단 체 바닷속에 파묻힌 돌멩이 위로 모래를 수북하게 덮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