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가 엉덩이까지 씰룩 거리며 열심히 칼질을 하고 있다. 콧노래를 겸하면 전형적인 리드미컬한 칼질이겠지만 다행히 노래는 부르지 않는다. 솔직히 리드미컬한 칼질도 아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칼질이 아니라 칼로 음식을 찢고 있다. 대둔근의 씰룩거림은 음식을 찢기 위한 전신 근육들의 쪼임일 뿐이다. 돌멩이는 요리를 좋아하지만 잘한다고 볼 수 없다. 고픈 배를 채우고 싶지만 요리를 직접 하기 싫을 때 맡기기에 적당하다.
요리를 잘 못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잘하는 말 중에 하나가 연장 탓이다. 칼이 더 좋은 것이었다면, 코팅 프라이팬이 아니라 주물팬이었다면, 수입 고기가 아니라 한우였다면 등등등
"우리 도마를 바꿔야겠어"
오늘은 도마 탓이다.
"캄포나무로 만든 도마는 항균작용도 한데. 게다가 나무의 향이 묻어나서 음식이 더 맛있을 거야"
"그래"
수제비는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 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일단 음식을 먹고 싶기 때문이다.
"좋아! 내가 맛있는 도마도를 디저트로 준비할게"
굳이 '도마'를 강조하기 위해 토마토 대신 도마도라는 옛말을 끄집어 왔다는 것을 수제비는 이미 알고 있지만 별 반응 없이 넘겼다. 더 이야기해봤자 더 배고플 뿐이니까.
밥을 먹은 후 방울 도.마.도를 디저트로 먹기 시작했다. 방울토마토는 한 알씩 먹어야 하는 건데 다람쥐와 경쟁하는 건지 입에 차곡차곡 집어넣는 돌멩이. 수제비는 그러려니 한다. 밖에서만 안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른 과일을 먹을 땐 일반인과 다름없건만 알알이 구분되는 포도를 먹을 땐 다르다. 한송이 뜯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우수수 모든 알을 떼어내고 나선 한 주먹 입에 털어 넣는다. 옥수수도 손가락으로 잘 떼어내곤 포클레인 같이 꽉 담아 입에 넣는다. 그러려니 한다. 배가 부른 수제비에게 이 정도 일이야 놀랍지도 않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려면 이 정도 일에 놀랍다거나 반응을 해서는 안된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흔드는 것이야 익숙하지만, 광복절에 일장기를 같이 흔드는 일도, 태극기와 성조기와 이스라엘기가 등장하는 것도, 중국 오성홍기가 갑자기 등장하는 것도 있는데 방울토마토나 포도송이를 한 움큼 입에 욱여넣는 것 정도야 이상할 게 없다.
수제비는 배도 부르니 찐득하게 늘어진 밀가루 반죽처럼 소파에 들어붙는다.
"안중근을 왜 도마라고 하는지 알아?"
심드렁한 수제비는 모차렐라 치즈처럼 힘들게 입술을 벌린다.
"모올라"
말에도 찐득함이 묻어나는데 돌멩이는 모른다. 귀찮음이 더해진 수제비의 신호를 역시나 돌멩이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딘가 집요한 돌멩이의 도마 사랑은 찐득함을 지나쳐 여름철 습기 찬 공기처럼 끈적거린다. 불쾌지수가 올라가면 사람이 흉폭해지는 것을 정녕 돌멩이는 모르는 걸까? 알면 돌멩이가 아니겠지.
"안중근은 사실 가톨릭 신도였어. 그래서 세례를 받았고, 세례명이 도마였기 때문이야. 물론, 요즘 가톨릭에서는 도마라고 부르지 않고 토마스라고 불러. 안중근 의사가 세례를 받았을 때는 도마라고 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요즘도 개신교에선 도마라고 불러. 기독교라고 다 부르면 안되는거 알지? 광화문에서 집회를 연 기독교인들은 개신교고, 가톨릭은 천주교야. 한번에 기독교라고 부르는 건 좀 아닌거 같아. 물론, 광화문 집회를 주도한 개신교가 개신교를 대표하는 건 또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그래앴구나"
수제비는 최선을 다해 돌멩이 접대를 했다. 온 힘을 다해 저녁을 만들어 준 돌멩이라는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그만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건만.
"아무튼. 도마는 토마스야. 토마스는 알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토마스 기차도, 유럽의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도 도마라고. 칼질하는 도마와 토마스가 같은 거라니. ㅋㅋㅋ"
이 글을 읽는 사람처럼 재미없는 수제비.
"도마 사자. 무슨 나무라고 했지? 그거 사자"
수제비는 돈으로 때우고 싶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으로 해결되는 것 아닌가. 그냥 도마값을 쓰고 넘어가고 싶을 지경이다.
"아니. 난 도마가 사고 싶은 건 아니야. 도마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라고. 하지만, 사준다니 고마워. 내가 더 맛있는 걸 만들어 줄게. 그런데, 혹시 우리 칼이 좀 안 드는 거 같지 않아? 중식도 하나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어때?"
수제비의 근육이 소환된다.
수제비는 소파에 있는 쿠션 하나를 콱 움켜쥐고 적절한 각도를 체크한 후에 최대한의 힘을 모은 후 돌멩이에게 날렸다. 직격. 돌멩이의 얼굴에 그대로 꽂혔다. 사람의 분노를 담아 빠른 스피드에 실은 후에 수축된 근육의 힘으로 날리면 푹신한 탄성을 가진 쿠션도 사람의 얼굴에 꽂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수제비는 만족스러웠다. 세지 않았지만 체감상 약 3초 동안 쿠션은 돌멩이의 얼굴에 붙어 있었다.
쿠션이 떨어지면서 돌멩이의 입술이 움직였다. 당황해서 나오는 신음소리를 내는 자연스러운 입 벌림이 아니라 뭔가 다른 이야기를 꺼내려는 입술의 모양이다. 수제비는 두 번째 쿠션을 쥐었다. 돌멩이의 A4 두께의 눈으로도 알아차렸다. 두 번째 쿠션이 날아올 것이고,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한 수제비는 얼마 전 바꾼 갤럭시 S20 노트라는 고가의 스마트폰이라도 집어던질 것이다.
돌멩이는 육식동물의 순간적인 살기를 느끼고 튀어서 도망가는 가젤처럼 손으로 스툴을 발판 삼아 뛰어 도망갔다. 아프리카 초원의 평화가 찾아왔다. 먹잇감을 놓친 것은 아니지만 초가을 모기를 쫓아낸 것 같은 만족감이 든 수제비.
그러다 문득
'저 녀석. 체조를 배운 적이 있나? 지금 도망친 자세는 도마일까? 뜀틀일까?' 생각했다. 그리곤 흠칫했다. 정치인들이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곤 여론의 지지를 받지 않으면서도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돌멩이가 쳐 놓은 도마라는 덫에 수제비가 걸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