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선비와 일

by 간질간질

수제비의 마음이 한 켠 불편했다. 다른 것에는 궁상맞아 보일 정도로 돈을 아끼지만, 이유 없이 건강에는 민감해 실손보험은 넉넉하게 들어놓았다. 그렇다고 크게 아픈 것도 아니다. 돌멩이가 보기에 수제비의 실손보험은 일종의 부적을 사는 행위처럼 보였다. 앞으로 터질 일을 막으려고 무엇이든 매달려 보려는 행동 말이다. 가족력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지만 수제비는 건강 문제만큼은 유난했다.


먼저 말 거는 일이 거의 없는 수제비가 돌멩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의사들이 자리를 비워 결국 40대 환자가 죽었다는 것과 오늘 30대 환자도 한 명 죽었다는 기사 링크였다.

평소 대범하던 수제비가 먼저 카톡을 보낼 정도니 수제비의 약한 고리를 끊은 것이 분명하다. 수제비는 불안해하고 있다. 막연한 두려움. 그렇다고 수제비에게 앞뒤 맞춰 얘기를 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모두 약한 고리를 가지고 있고 약한 고리가 끊어지면 비정상적으로 변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비정상적으로 약해진 사람들에겐 논리가 먹히지 않는다. 공감과 안정감이 필요하다.


"봤어?"

"웅"

"어쩌면 좋아?"

"안 아프길 바래야지"

"내가 안 아프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그렇지"

고리가 끊어진 사람과의 대화는 어렵다. 왜냐하면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리며 상대방을 잡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잡히는 순간 같이 죽게 된다. 적절하게 피해야 한다. 더불어, 모른 척 해선 안된다. 돌멩이는 매번 쓰던 방법 중 하나인 '기도해 줄게'라는 말을 목구멍까지 꺼냈다가 삼켰다. 가뜩이나 기독교를 좋아하지 않던 수제비에게 광화문 집회 이후 벌인 특정 교회 소속원 들의 행동으로 기독교 전체는 상종 못할 집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라는 말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관련된 모든 단어는 수제비에게 싸움을 거는 방아쇠일 뿐이다.

"건강할 거야. 그동안처럼 괜찮을 거야"

"돌멩이 니가 어떻게 알아?"

모른다. 돌멩이가 알리 없다. 정색할 수도 없다. 돌멩이는 벗어나고 싶다. 수제비가 놓아줄 리 없다.


"의사들이 왜 이러는 거야? 왜 사람 목숨을 쥐고 흔드는 거냐고?"

"사연이 있겠지"

의사들은 늘 베일에 쌓여있다. 그들의 지식은 일반인이 알 수없고, 그들의 치료도 알 수 없고, 그들의 의식도 알 수 없다. 막연하게 전문가이고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말을 안 들으면 나만 손해라는 학습이 있을 뿐이다. 실제 내용과 상관없이 늘 피곤한 모습에 반말을 쓰고,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는 것이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의 모습이다. 그래도 죄인처럼 굴고, 간수처럼 굴던 옛날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의사들의 표정도 권위를 많이 뺐고, 최대한 친절히 대하려는 모습들이 보인다. 심지어 환자들에게 맞고 죽임을 당하는 의사들까지 있다. 하지만, 지금 수제비에게 이런 말을 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제비는 지금 자기 목숨이 걸려있다는 망상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사연?"

"어. 그러니까... "

돌멩이는 할 말이 턱 막힌다.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주위에 이른바 '사'자 직업을 가진 절친을 둔 것도 아니니 알리 없다. 의사들이 이 지경까지 나온 것은 아무튼 사연이 있다는 것만 안다. 의사들의 입장도 정부의 입장도 찬찬히 읽어본 적이 없다. 그냥 남일이다. 의사들의 일도, 검사들의 일도, 정부의 일도 먹고 사느라 바쁜 소시민에겐 그냥 남일이다. 같은 것이라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국적을 가지고, 같은 땅에서 살고 있다는 것뿐이다.


"의사라고 할 때 '사'가 무슨 뜻인지 알아?"

"스승 사(師). 스승은 개뿔. 지들이 무슨..."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가 닥터가 아닌 건 알지?"

"내가 바보니? 의로운 일을 한 선비라는 의미지"

"맞아. 선비를 뜻하는 사(士)"

돌멩이는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돌멩이의 쓸데없는 '의식의 흐름'기술이 먹히고 있다. 수제비는 평소 같으면 금세 알아채고 본론으로 돌아갔겠지만 그런 걸 짚어내지 못할 정도로 정신상태가 흔들리는 중이다.


"운전기사에 붙는 사는 뭘까?"

"당연히 스승은 아닐 테니 선비 사(士)를 쓰겠네"

"빙고!"

"변호사는?"

"스승은 아닐 거 같고 선비일까?"

"맞아! 재밌지 않니? 안중근 의사와 운전기사와 변호사는 모두 같아. ㅎㅎㅎ"

"재미없다"

돌멩이는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바로 다음 미끼를 던진다.


"변호사는 알았으니, 판사와 검사는 뭘까?"

"당연히 선비 사(士)를 쓰겠지. 잠깐. 판사는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고 변호사와 검사 사이에서 중재하는 거니까. 스승 사(師)를 쓰지 않을까? 아니지. 옛날에는 어차피 사법고시 통과한 건 똑같았고, 성적순으로 판사를 정하기는 했지만. 판사나 검사나 변호사나 다를 게 없지 않을까?"

"좀 더 생각해 봐"

"선비 사가 맞다고 봐"

돌멩이는 속으로 외쳤다. 'Thanks God!'

"땡! 일 사(事)를 써. 판사나 검사나 모두 일한다는 의미의 '사'야. 판사는 '판단하는 일', 검사는 '조사하는 일'"

"그랬군..."

"생각해 보면 판사나 검사는 국가의 일을 하면서 국민을 섬기는 공무원인 거야. 전문직 공무원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네"

돌멩이는 안심했다. 화제 전환에 성공했고 더 이상의 추궁이나 질문이 없었다. 수제비의 깊은 정서까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날 저녁 돌멩이는 회사의 친한 선배와 차를 마시며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 선배도 판사와 검사의 사가 어떤 글자였는지는 몰랐다고 한다. 그리곤 옛날이야기 하나를 덧 붙여준다.

"돌멩아. 기억나니? 옛날엔 간호원(員)이라고 불렀어. 그래. 지금 간호사(師)라고 부르는 그 직업"


코로나 방역에 의사들의 자리 비움을 지금은 간호사들이 메꾸고 있다. 왜 인지 모르지만 '원'이 아니라 '스승'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냥 간호사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수제비가 간호사를 하면 잘 어울렸을 거 같다는 상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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