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우, 이동수, 권세중, 유지원 지음. Page2
엔비디아 주가는 예측하기 어렵다. “이거 너무 오른 거 아니야?”, ‘혹시, 떨어지는 거 아닐까?”라고 수군댔지만 지난 6월 뉴욕증시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더 이상 변화는 없을 것 같았다. 최근 발표된 2분기 실적 역시 여전히 과거보다 많이 늘었다. 그런데 주가는 떨어졌다. 뭐지? 왜?
SK하이닉스는 많이 오르는데 삼성전자는 잘 안 오르는 이유 중 하나가 HBM이란 것 때문이란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납품을 한다. 그런데,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1등 삼성전자는 아직 납품했다는 기사가 안 나온다. 뭐지? 왜?
엔비디아가 만든 AI반도체는 GPU라고 한다. 원래 컴퓨터의 핵심은 CPU인데, GPU의 시대라고 한다. 단순 계산을 훨씬 잘하는 GPU가 CPU보다 훨씬 유용하다고 한다. GPU는 원래 그래픽을 위한 반도체였다는데 이게 왜 AI에 더 적합하다는 걸까?
이외에도 AI에 힘을 쏟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우리나라 네이버 이야기.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 TSMC와 ASML이란 수퍼을의 이야기. 관심 있는 사람은 각 소재를 연결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은 연결해서 설명하기 힘들다.
마치,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를 모르는 체 일부 역만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의 지식은 단편적이고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맥을 잡기 위한 공부를 하려고 맘먹고 자료를 뒤져본다. 하지만, 지하철의 구동원리나 지하철의 역사를 설명하는 읽기 힘들고 재미없는 전문적인 자료는 찾을 수 있지만 내게 필요한 ‘노선도’는 찾기 힘들다. 전동차를 만들거나 운전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어느 역을 가려면 몇 호선을 타면 되는지 알고 싶고, 어디서 갈아타면 되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반도체’라는 도시에 깔려 있는 지하철 노선도와 같은 책이다. 내가 가고(알고)싶은 곳으로 가려면 어떤 노선을 이용하면 되는지 알려준다. 서울에 깔려있는 거미줄 같은 1~9호선 노선들에 대한 설명이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지하철을 직접 운전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가야 할 역이 어디고, 어느 역에서 갈아타면 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뉴스에 등장하는 반도체와 관련된 각종 사건들은 ‘역’과 같다. 노선을 알면 A라는 역 다음에 B역이 나오고, B역 다음에 C역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나면 위에서 얘기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반도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길을 잃지 않고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갈 수 있다.
아무리 쉽게 썼다고 해도 수없이 등장하는 낯선 용어들과 기술적인 설명에 몰입하면 큰 그림을 잃고 헤맬지 모른다. 이럴 때 책의 전체 얼개를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된다.
1부에서는 가장 핫 한 사건 및 회사들에 대한 현재 상황을 짤막짤막 나열한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 경쟁자와 그들의 친구들이 뒤섞여 서로 정신없이 싸우는 중이다. 왜 이렇게 싸우는지 궁금하도록 흥미를 끌어올리며 1부가 끝난다.
2부에서 4부는 전쟁이 벌어진 역사와 싸움에 참여하게 된 플레이어들의 과거를 보여주는 회상장면이다. 반도체가 개발되는 과정과 PC 시대를 석권했던 1세대 트로이카 인텔-IBM-마이크로소프트의 연합의 완성되는 스토리가 2부. PC 시대는 곧 CPU의 시대다. 누구도 깰 수 없어 보였던 CPU 트로이카의 성을 ‘스마트폰’이라는 마법의 단도 하나로 깨버린 이야기가 3부다. 단도를 휘두른 용사의 이름은 애플, 마법의 단도를 소환한 마법사는 ARM, 단도를 만들어 낸 제작자는 TSMC. CPU의 시대를 이어받은 ‘모바일 CPU’인 AP의 시대로 ARM-애플-TSMC의 네오 트로이카가 탄생했다. 디바이스의 물리적 크기가 2부와 3부의 분기점이라면, 3부와 4부의 분기점은 사람의 능력을 대체할 서비스 AI의 등장이다. 4부에는 왜 AI가 등장하게 되었고 왜 엔비디아의 GPU가 최후 승자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5부는 현재의 패왕 엔비디아의 GPU라는 무기를 날실과 씨실로 엮으며 다각도로 보여준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여기서 책을 끝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현재의 분석으로 끝내지 않고 미래를 변화시킬 변수들로 설명을 이어간다.
6부는 현재 AI를 이끄는 초거대언어모델과 이를 제대로 운용하기 위한 반도체의 발전 방향을. 7부는 인공지능을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고민들을 8부는 네이버의 노력을 보여준다. 6부~8부는 미래를 더듬어 볼 수 있도록 여러 가능성과 사람들의 노력을 묘사한 부분이다. 마지막 9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것들에 대한 질문과 답이다.
이 책의 저자는 기자다. 기자의 글은 장단점이 뚜렷하다. 이 책에서 기자의 장점은 잘 돋보이고 단점은 잘 감춰졌다. 기자의 장점인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과 적당한 시니컬과 실제 사례로의 연결은 돋보인다. 글로 풀어내기 어려운 부분을 전문적인 용어로 퉁치고 넘어가는 기자의 단점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썼는지 궁금했는데 저자가 직접 에필로그에서 비법을 알려준다.
“이 책은 전문적인 AI 반도체를 다루고 있지만 전문가를 대상으로 쓴 책이 아닙니다…. 인공지능도 어렵고 반도체도 어렵습니다…. 최대한 쉽게 쓴다고 쓰긴 했지만 솔직히 어린 자녀들에게 권할 정도로 쉽진 않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미래를 바꿀 인공지능 산업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는 됩니다. 장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을 쓴 저도 책을 쓰기 전까지는 AI 반도체에 문외한이었거든요.”
이 글만큼 책의 성격과 수준과 한계를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 산업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쓴 책. 문외한이 전문가에게 배워봤자 얼마나 알까 싶지만, 일반인들은 문외한을 벗어난 깨달음에 더 공감한다. 왜냐하면 같은 어려움을 겪었기에 어떻게 극복하면 되는지, 어느 부분을 알고 싶고 궁금해하는지, 어떻게 설명하면 잘 이해하는지 깨달은 자는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요리할 때 살짝 첨가해서 맛을 확 끌어올리는 것을 Kick이라 한다. 이 책은 중간중간에 구분자가 있고, 구분자 직전의 문장들 중 상당수가 kick의 역할을 한다. 마지막 Kick 문장만으로 앞의 뭉터기 글맛이 확 살아난다.
“평판형 공정기술의 발전으로 반도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작은 조형물이 되었다” (p82)
“성공한 제품은 자기가 만들었다는 부모가 많고, 실패한 제품은 고아다.” (p96)
“뛰어난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정작 인공지능이 상업화 될 수준까지 올라오자 그만두고 ‘윤리’를 이야기 하는 것이 참 흥미로운 장면이다.” (P158)
“반도체 회사들이 실제 환경에서의 성능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실제환경에서의 성능을 모른다고 보는 것이 맞다”(p363)
인공지능 반도체 산업에 관심 있거나 반도체 투자자라면 큰 부담 없이 읽기에 좋다. 모든 부분을 꼼꼼하게 읽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읽고 싶은 부분부터 읽다가 어려우면 건너뛰어도 된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알고 싶어 하는 질문과 답, 그리고 그 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다 들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앞으로 반도체 뉴스를 읽으면, 정보로 꿰어지는 짜릿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소정의 지원을 받고 리뷰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