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3] The adolescent Bacchus

Caravaggio Meris

by Toriteller 토리텔러

The adolescent Bacchus (젊은 바쿠스)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그림부터 봐야 한다.


멍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그림 속 인물과 눈을 맞추고, 서로 민망할 일 없으니 이곳저곳 살펴보면 된다.

현실에선 그림 속 복장을 한 사람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림은 눈치 보며 쳐다볼 필요가 없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카라바조_바쿠스_01.PNG The adolescent Bacchus (출처 : 구글 아트&컬쳐)


빛과 그림자

카라바조의 그림들은 마치 '설정 샷'같다. 어두운 배경으로 평범한 인물들이 특정한 장면을 연출한 후에 그 장면이 도드라지게 사진을 팡 찍은 느낌이다. 우윳빛깔 살색은 어두운 뒤 배경 때문에 더욱 반짝인다. 투명한 살결? 옷인지 두른 천인지 모를 흰색 섬유보다 바쿠스의 몸은 더 하얗게 보인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무대에 오른 배우 한 명을 위한 조명을 비추듯이 주인공은 돋보이고 다른 것들은 뒤로 숨겨진다. 그 대비. 카라바조 그림을 다른 화가들의 그림 속에서 그나마 쉽게 찾아낼 수 있는 특징이다. 다른 카라바조의 그림보다 이 그림에서는 그런 특징이 덜하다고 하는데, 내게는 충분해 보인다.


머리

그림1.png

머리에 뭐가 식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은 알았는데, 어두침침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 확대해 보면 되지. 종이책으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기술시대의 축복이다. 원래 이미지에서 채도와 밝기를 더 높여봤다. 그래야 좀 잘 보이니까. 약간의 상상력만 있다면, 이 식물이 무엇인지 본 적 없어도 알 수 있다. 포도가 달려 있는 식물은 포도덩굴. 왜 머리에 이걸 썼을까? 포도주의 신 바쿠스가 아니면, 포도 왕관을 쓰고 있을 리 없겠지.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왕관이다. 머리에 꽃을 꽂은 것은 미친 X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꽃이 아니고 더구나 미친 사람 이야기를 듣더라도 당당한 자세. '내가 바쿠스다'라는 것을 머리에서부터 뿜어내고 있다.


둥그런 얼굴

얼굴.PNG

나를 쳐다보고 있다. 동그란 얼굴. 제목 그대로 아직 어른은 아니다. 볼에는 붉은 끼(홍조라고 하는)가 가득하다. 사슴 눈망울이라 부르는 딱 그 모양새다. 작은 이미지로 몸 전체를 볼 때는 '취해서 풀린 눈'처럼 힘 하나 없어 보였는데. 크게 보니 눈에 빠져들 것 같다. 입술은 도톰하고 븕다. 어딘가 어색한 곳은 다듬지 않은 얇고 짙은. 그리고 좀 길어 보이는 눈썹. 신이라고 하기에는 유럽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좀 예쁘장한 나이 든(?) 소년처럼 보인다. 짙은 눈썹 옆으로는 포도송이가 내려와 있다. 어딘가 조금 포도에 눌리는 것 같기도 하다. 착한 소년처럼 보이기도 하고 끈적끈적한 눈빛처럼도 보인다. 얼굴에 잡힌 잔주름은 실제 주름이나 주근깨가 아니라 오래된 유화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잘게 갈라지는 그런 현상. 어딘가 묘한 매력의 얼굴이다. 직접 그림을 본다면 넉넉히 한 시간은 쳐다보고 있을만한 눈과 얼굴을 가졌다.


몸통

카라바조_바쿠스_02.PNG

우윳빛깔. 흰 천 보다 더 하얗게 보이는 살결. 하지만, 팔에 잡힌 근육은 어린애가 아니다.


잠시 기존 자료의 의견을 읽어본다.

왼쪽 어깨에 드레이퍼리를 걸치고 포도와 잎사귀로 엮은 왕관을 쓴 바쿠스는 여린 소년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는 고대저녁식사 때 사용되었던 트리클리니움(triclinium)에 앉은 채로,포도주 잔을 관람자를 향해 건네고 있다.

드레이퍼리는 옷을 입었을 때 자연스럽게 생기면서 흐르는 주름 또는 한 장의 천으로 몸에 두르는 법을 말하는 것 같다. (설명이 좀 부실하지만 비전문가의 한계이다). 그냥 한 장의 옷을 걸치는 것 또는 아름다운 주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정리하련다.

트리클리니움은 고대 로마에서 사용했던 가구를 말한다.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음식을 먹는 의자 겸 식탁. 보통은 3개를 ㄷ자 모양으로 배치했다고 한다. 한쪽은 비워뒀다고. 음식 나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바쿠스가 두른 흰 천이 드레이퍼리고, 비스듬히 누워있는 곳이 트리클리니움. 이 두 가지 다 로마시대의 풍속. 로마 신화에서의 바쿠스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게 그건 별 의미 없다. 드레이퍼리를 입는 것은 '주름'때문이라고 하는데 구깃구깃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흐르는 주름과 '울퉁불퉁'이라고 표현하지만 주름 하나 없는 바쿠스의 근육. 이 두 가지의 대비가 더 눈에 들어온다. 같은 흰색이면서도 다른 바쿠스의 모습.


술잔과 손톱

카라바조 그림의 특징은 빛과 그림자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 내세우는 것이 '현실적인 표현'이라고도 한다. 카라바조는 그림의 모델들을 그당시 사람들 중에 골랐다고 한다. 이 장면이 현실적인 카라바조 그림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대부분의 글에 나온다. 어떤 점일까?

카라바조_바쿠스_03.PNG

포도주(와인)의 색이 붉으니 레드와인이구먼!이라고 말해도 된다. 그림보기는 그런 거라고 믿는다. 그보다는 통통한 손가락과 매끄러운 손톱. 그리고 손톱 끝에 '시커먼 때'! 이 때를 보고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화가들은 신을 그릴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렸다. 가장 흔하게 서양화의 신이라고 보면 예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서 피를 철철 흘려도 멋지고, 목수일을 한다고 해도 멋지고, 사람은 분명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다.

카라바조가 이 점을 깼다. 신이라고 해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놓고 그림을 그렸다는 점. 그래서, 손톱의 때도 같이 등장한다. 이 모델 역시 카라바조의 친구라고 전해진다. 이름도 나오지만 그것까지는 피곤하니 skip!


과일바구니

카라바조_바쿠스_034.png

눈에 잘 띄게 채도와 밝기를 올렸다. 과일바구니라고 하면 먹음직스러운 것들이 들어 있어야 할 텐데. 이 과일바구니는 마트에서 '못난이 과일'을 모아 놓은 것 같다. 파란색 동그라미 친 부분을 보면 눌리거나 흠이 있다. 그리고 과일들을 잘 보면 변색되어 있다. 왜 그랬을까? 여기에 또 의미를 부여한다. 보통 과일바구니와 포도주는 풍요와 포도주의 신인 바쿠스의 상징물로 여겨진다.

두산백과에서

사과와 포도, 석류 등이 담긴 과일 바구니가 놓여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과일들이 상하거나 이미 썩었다. 당시 사과에는 선악을 상징하는 종교적 의미가 있었으며, 이렇게 썩은 사과와 색이 변한 무화과는 인류의 원죄를 뜻하는 것으로 그림에서 좀처럼 소재로 삼지 않았다. 더군다나 술의 신이며 풍요와 축제의 신인 바쿠스에게 썩은 과일을 함께 배치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면서 한편으로 의미심장하다.

포도는 쉬워서 찾았고, 석류도 작고 붉은 알갱이들이 득실득실 모여 있는 과일이다. 사과는 나머지. 하나는 모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서양배인가? 과일가게 하시는 분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과일 맞추기 해도 즐거울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맛이 간(?) 과일을 배치한 것으로 쾌락만 좇는 것은 결국 변질될 것이라는 의미도 되고, 현실을 그대로 그리려고 했던 카라바조가 손톱이 때처럼 그린 걸 수도 있다. 유한한 인생을 표현한 것일수도 있다. 그리고 더 다른 해석은 각자 하면 된다. 전문가나 다른 사람의 해석을 이해하려는 것은 좋지만 똑같이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카라바조에게 물어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어떻게 해석하든 나의 마음.


의문의 검은 끈

카라바조_바쿠스_035.PNG

오른손으로 소중하게 잡고 있는 이 검은색 끈이 제일 궁금했다. 그런데 설명을 못 찾았다. 이 검은색 끈에 대해서는 왜 해석이 없을까? 더 찾으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멈추기로 한다. 그림 해석이 아니라 그림 감상이니까.


그림 구경

더 관심 있는 사람들은 카라바조에 대해 찾아보면 된다. 카라바조의 삶은 그림처럼 강하다. 그러다 카라바조라는 사람에게 애정이 생기면 그가 그린 다른 그림들을 찾아본다. 그러다 더 좋아지면 그림을 직접 보러 여행티켓을 끊는다. 그냥 유명하다는 장소에 가서 알지 못하는 그림을 보는 것 보다 단 하나라도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가치있어 보인다. 계속 얘기하는 구글아트&컬쳐 페이지는 그런면에서 꽤나 쓸모많은 녀석이다. 비행기 티켓을 끊지 않아도 해상도가 굉장히 높은 그림을 내 손에서 볼 수 있다. 말이 길었다. 이제 만나러 가자. 젊은 바쿠스.

지금 그가 머물고 있는 곳은 이탈리아의 피렌체. 두오모 성당 옆. 직접 떠나고 싶다.


모든 그림의 출처는 구글 아트&컬쳐. 우리나라 포털이나 다른 글에서 나오는 이미지는....... 많이 아쉽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2] Bacch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