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11.21. No. 64. 예술 본능 일러스트와 놀기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역사상 글보다 그림이 먼저 존재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신동이라도 글을 깨우치기 전에는 분명 줄 긋기부터 시작했다. 끝까지 글을 먼저 깨우쳤다고 우기는 것은 부모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글자의 역사는 몇 천년 전이지만 그림의 역사는 알타미라 벽화가 그려진 1만 ~1만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 하필 들소 떼를 동굴 안 천장에 그려 놓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마도 그것으로 먹고 살 후세 연구자들을 위해서인지···혹은 '하도 심심해서'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에게 '그리기' 욕구는 본능이다. 어려서는 마징가 Z와 태권 V를 잘 그리는 녀석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예쁜 옷을 잘 그리는 아이를 부럽게 쳐다보던 누이의 눈매에서 느꼈던 동질감은 ‘왜 나는 못 그릴까? 였다. 커다란 검은자 위에 작은 동그라미 세 개로 포인트를 주어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만드는 것이 마냥 신기해 보이기도 했다.
'만화'라는 말에는 '카툰’,‘코믹스’, '애니메이션’ 등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만화의 정의를 간단한 끄적거림’이라고 하자. 더해서 ‘어떤 의미나 형태를 갖춘 정도’라는 기준을 둬야 아이들의 것과 구별이 될 터. 추상화는 그 경계에 서 있을 것 같다. 내 개인적 주장이지만, 그림의 형태를 갖춘 행위에 가장 근접한 것이 '만화’가 아닐까. 모든 그림은 '끄적거림’에서 나온 것이니 만화가 그림의 조상이라고 우겨 볼 만하다. 그렇다면 ‘그림= 예술’ 일 경우 만화는 ‘끄적거림 예술’의 경지에까지 다다르는 고상한 분야인 것이다. 그리고 이 끄적거림을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실행한다면 당신은 '예술활동을 레저에 접목한 멋진 사람'으로 변신하게 된다. 때때로 스스로의 이런 자가발전적 생각에 대견해하곤 한다.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도구와 그림이 들어갈 공간만 있으면 된다. 인터넷이 연결된 최고 사양의 PC도 필요 없고, 전기가 끊어져 텔레비전이 먹통이 되어도 즐길 수 있다. 집에 돌아다니는 신문이나 광고지에 ‘모나미 볼펜’이면 충분하다. 이 말뜻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나! 직장인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을 익히는 것만도 엄청난 도움이 된다.
지루한 회의시간은 온전히 논의에만 집중한단 말인가? 오, 저런..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다이어리는 상황을 훨씬 더 풍성하게 전달한다. 심심할 땐 그 캐릭터로 이야기를 꾸미고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본다. 혹시 아나? 추종자가 생겨 출판 제의가 들어와 만화가로 전향하게 될지? 잘 그리겠다는 압박감만 집어던지면 그림 그리는 자체는 충분히 즐거운 행동이다. 자! 펜을 들고 동그라미부터 시작 ~!
첨부된 이미지에 있는 3번 그림은 김풍 작가의 그림입니다. 요즘은 만화가보다 방송인으로 더 알려져 있는 그가 가장 먼저 '폐인가족'이라는 만화로 유명해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재죠. -_ -;
조만간 이 주제의 옛글도 다 끝나갑니다. 이제 진짜 뭘 써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 옛날 책에 있던 내용을 고쳐 쓸까? 그 책은 '나무야 미안해!'라는 댓글을 많이 받았던 책이죠. 지금 보면, 부끄러울 뿐이지만 그래도 출판사에 손해는 끼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쇄까지 찍었었거든요.
여러 가지 일이 동시에 터지는 것이 사람 인생이라지만 안 좋은 일들은 몰려서 오네요. 회사를 떠나면 다 해결되는 일들이죠. 그런데 회사를 못 떠나요. 카드 값이 순간접착제보다 더 딱 달라붙어 있어요.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웹툰 작가라는 직업이 있었는지도 애매한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강풀 작가의 '일상 다반사'가 막 유행을 할 때이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어엿한 산업군이 되어 있죠. 말도 많지만 계속해서 자리를 잡아갈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