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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놀기] 한결같은 상상 증진,피겨(Figure)

프라이데이 2003. 10. 10. No.58

by Toriteller 토리텔러

키덜트라는 어휘적 •실제적 즐거움

키덜트(Kidult)란 키드(Kid)와 어덜트(Adult)의 합성어라고 유식한 척 용어 풀이를 해 보지만 쉽게 말해 ‘철없는 어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도 유아 때의 놀이와 캐릭터를 즐기고 어린아이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는 어른들을 세련된 마케팅 용어로 포장한 것. 얼마 전부터 어른들의 고상한 취미생활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피겨’. 우리나라말로 ‘피겨' 또는 ‘피규어’라고 쓰며 ‘주로 영화나 동화 혹은 알려진 이야기에 등장하는 어떤 대상의 모형’이라고 볼 수 있다.


피겨는 잃어버린 상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열쇠다

사람들은 상상의 즐거움을 알고 있다. 그런데 상상이란 것이 어린아이에게는 꿈 내지 창의력과 동일시되어 중요하게 취급되는 반면 어른에게는 공상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여 터부시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상상을 외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주인공 제제는 소설 끝자락에서 이렇게 말한다 ‘믿지 않는 일을 다시 시작한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 주고 싶었다. "바보야. 그건 표범이 아냐,그건 단지 한 마리의 늙은 암탉에 지나지 않아,내가 어저께 국으로 먹었던 -’" 상상의 단절은 어른이 되어 간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사실을 가지고 있다. 어른이 되었다고 상상의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며 더욱이 그 즐거움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피겨를 통한 상상유희는 오래된 인류 전통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이야기를 기억하는지? 최초의 피겨 러버(Figure- Lover)라고나 할까? 조각가인 피그말리온은 여성의 입상(立像)을 조각하고 나서 자신이 창조한 조각물과 사랑에 빠진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 의해 조각이 실제 여성이 되며 피그말리온의 사랑은 현실화된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은 무인도에서 발견한 배구공에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친구로 삼는다. 척박한 삶의 동반자로 생명 있는 반려 동물 못지않게 피겨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실제 필요한 것은 상상력을 쏟아부을 대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겨는 먹지도 않고 털도 날리지 않으며 ‘× 치우는’ 수고도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피겨를 가지고 상상을 즐기는 것은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사람에게 상처받고 소외된 심성을 치료해 주는 구실도 한다. 철없는 어른 취급을 받으면 어떤가?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킬말대답도 없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며 늘 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켜주는 존재의 든든함 그것이 바로 피겨 유희를 즐기는 실제 이유일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오래된 이 글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네요. 왜 그렇지? 다들 외로운가? 아무튼, 좋은 기회를 주셨던 과거 프라이데이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15년이나 지난 글들을 읽어주시면서 욕하지 않는 독자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구독자가 7천 명을 넘었더라고요. 어떤 이벤트를 할까 하다가 말았습니다. 구독자분들이 좋아할 만한 것은 묻지도 괴롭히지도 않으면서 읽을거리를 계속 제공하는 것이겠지만, 제가 뭘 알겠습니까? -_- 어떤 글을 쓰면 당신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지. 알려주시면 노력해 보겠습니다.


혼자 놀아야 돈 모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사회 초년생 재테크에 글 올리는 겁니다. 피겨도 너무 많이 모으면 돈은 못 모아요. 대신, 다른 가능성은 열립니다. '피겨 박물관'을 만든다던지. 사고파는 행위를 한다던지... 그리고, 보통은 결혼하면 이 취미는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아이가 피겨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감상이 아니라 같이 놀면서 부수는 것을 너무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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