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청소년용이 아니야!
아이의 놀이터이자 식탁이자 공부하는 책상인 거실 테이블에서 발굴된 책입니다. 테이블 위에는 종이비행기와 학교와 학원의 각종 유인물과 풀다 만 교재와 읽다 만 책과 먹다 버린 음료수 껍데기와 과자 봉투까지 가득하기 때문에 섬세하게 발굴하듯 다루지 않으면 분리수거하지 않은 쓰레기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발굴과 동시에 믿을 수 없었습니다. 신석기시대의 무덤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물건이 발굴된 것 같은 경험이랄까? 내가 아는 아이가 이런 책을 볼리 없는데...? 살리도 없는데?
논술학원에 다니는 아이의 교재랍니다. 학원에서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알려줘서 주문한 책. 적어도 왜 고인돌 무덤에 현대의 물건이 들어 있는지는 알게 됐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니 출판사의 마케팅이라 생각했죠. 흐름이 있는 지식보다 토막토막의 상식들을 얼버무려 아동용, 학생용 등등 포장해서 출판한 책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양장본이네? 책 값 비싸겠다는 생각부터 드는 속물임을 인정합니다. 재택근무의 장점은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어 여유가 생깁니다. 점심 먹고 오후 햇살을 즐기며 읽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양장본의 두꺼운 표지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이란 단어 때문에 얼마나 무시한 것이 많았는지 반성했습니다. '청소년'을 나이 개념으로 생각하지 말고, 기본적인 어휘를 구사하고 이해할 줄 아는 어른이지만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는 사람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한' 경제의 역사라고 봐야 해요.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려면 몇 가지 기술이 들어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금방 지루해지고, 지겨워지고, 도망가거나 아니면 좌절하고 말거든요.
글자 크기가 커요. 책 두께는 적당한데 글자 크기가 크면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끝까지 읽을 수 있습니다. 중간에 그림이 있어요. 저만 해당하는지 모르지만 색감 있고 의미 있게 그려진 그림입니다. 옛날이야기와 버무렸어요. 이야기와 지식을 버무리는 것은 아무나 하지만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은 솜씨가 있어야 하고, 이 책은 그 솜씨를 잘 발휘했습니다. 상상의 이야기와 실제 이야기를 섞어서 읽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농업 경제 시기부터, 왕이 등장하고, 산업혁명과 금융자본의 등장, 제국주의와 국제통화기금까지 띄엄띄엄 들었던 소재들을 하나로 엮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아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야기도 나오고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혁명'도 나옵니다. 불편한 사실인 십자군과 노예제 등 하나의 맥락으로 엮어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쉽게. 서점 사이트에 가서 책의 목차를 보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이미지입니다. 첫 번째는 중세시대를 꽉 잡고 흔들었던 종교의 수도사들이 일으킨 경제적 사건을 그린 걸로 표정과 색감이 좋아서 골랐습니다. 두 번째는 잔혹한 내용입니다. 유럽이 접시에 놓인 아프리카 대륙을 먹어치우는 그림입니다. 그림은 볼 수록 많은 고민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경제 관련 토막상식은 있는데 큰 흐름으로 꿰고 싶다.
그렇지만 어려운 이야기는 싫다.
경제학이나 경제사, 경제 등 큰 틀의 개념을 잡아보고 싶다.
옛날 얘기나 히스토리엔 큰 관심이 없다.
경제 지식이 나름 있다.
세부적이고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
전 매우 만족했습니다. 책 값은 적당해요. 선택이 어려우면 항상 드리는 방법이 있죠? 동네 도서관을 이용해 보시거나 서점에 나가서 훑어보세요.
만족스러움을 더 누리고 싶었습니다. 아이와 아이 수준에서 경제 관련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아이는 지식 뽐내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가족 간의 대화'라는 것을 해볼 거라 기대했습니다.
"책 내용 중에 어떤 게 재밌었니?"
"안 읽었는데!"
가족 대화 마무리
[책주모] 매거진에 카피보이님의 새 책 소개가 올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