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쓴 것은 좋은 소설입니까, 나쁜 소설입니까?
이번에 소개할 책은 기리노 나쓰오 소설 <일몰의 저편>입니다.
기리노 나쓰오는 일본 소설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다들 아실만한 이름 있는 작가입니다. 1984년에 데뷔하여 일본의 이름 있는 문학상을 모두 수상했고, 발표하는 작품마다 이슈를 몰고 다니는 작가입니다. 여성 하드보일드 장르의 시초가 되는 작품을 비롯하여 여성 주인공이 주로 등장하며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폭력과 살인 그리고 비정상적인 성애 묘사 등으로 호불호가 강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딸의 머리를 빗어주며 "이 사회는 점점 썩어 문 드러 질 것"이라고 말한 일화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그녀의 니힐리즘적 세계관이 그녀의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 <일몰의 저편>은 그녀의 기존 작품과 상당히 다릅니다.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감싸고 있지만, 기존 작품과 달리 작가의 메타적 시선이 엿보입니다.
주인공 '마쓰 유메이'는 웬만큼 잘 나가는 소설가입니다. 그녀는 주로 살인과 소아성애적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을 씁니다. 키우던 고양이가 갑자기 사라져 마음이 혼란스러운 어느 날. '총무성 문화국 문화예술윤리향상위원회'라는 검색도 되지 않는 국가 기관으로부터 소환장을 받게 됩니다.
소환장으로부터 안내된 그녀가 도착한 곳은 모든 것으로부터 폐쇄된 시골 '요양소'이고, 그녀는 그곳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모든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공감' 할 수 있는 착한 소설을 쓸 수 있도록 '갱생'과 '정신개조'를 강요받으며 감금됩니다.
그녀의 반항과 항거는 '벌점'으로 되돌아오고, 쌓이는 벌점은 현실 세계로의 복귀를 점점 멀게만 할 뿐입니다. 일방적으로 정해진 규칙과 욕망(특히 식욕)의 통제는 점점 그녀를 시스템에 길들여지게 하고, 오로지 '요양소'에서 나가야겠다는 순진한 목표는 그들이 원하는 착한 소설을 쓰게 만듭니다.
하지만, '요양소'의 직원(혹은 공무원)들과 같은 처지로 감금되어 있는 작가들의 모습을 통해서 어쩌면 '요양소'가 하나의 거대한 실험실이자 최종 목적은 자신에 대한 '사회로부터의 영원한 격리' 일지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공포 뒤에 숨어있는 진실들이 하나둘씩 밝혀지게 됩니다.
기리노 나쓰오가 출간 직후 인터뷰에서 몇 가지 집필 동기를 밝혔습니다.
소설의 전후 맥락을 무시한 채 등장인물의 대사 하나만을 가지고 와서 '남성혐오', '여성차별', '반사회적'이라는 '정치적 올바름' 공격을 받는 현실이 어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논란' 이라며 부추기는 미디어의 트집이 창작물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또한 아베 정권 이후 만들어진 특정비밀보호법과 안보법제 등의 개정 등 표현을 규제하는 정치권력에 대한 공포를 묘사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일몰의 저편> 속 인물과 대사들이 결코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러한 작가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 기반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토를 달 수 없는 정론. 그런 선의의 정론이 전 세계에 만연해 있어서 참으로 숨이 막혔다.” 작가가 주인공 마쓰의 입을 통해서 말하는 이 말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습니다.
문장 하나, 단어 한 조각도 철저한 자기 검열을 통해 밖으로 내어야만 공격받지 않는 이 시대에 스스로가 선량한 차별주의가 되지 않기 위해 감수성과 공감을 훈련해야 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겠지만, 그것이 하나의 권력이 되어 문학과 예술의 영역까지 확대된다면 '전체주의의 탈을 쓴 천국'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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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들에게 추천을]
평소 기리노 나쓰오 작품의 거부감이 있으셨던 분들 (그녀의 색다른 모습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대중이 정한 올바름으로 인해 알아서 기게 만드는 파시즘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으신 분들
[이런 분들은 한번 더 생각을]
세상이 올바르게만 가야 한다는 자기 확신이 강하신 분들
험악한 세상에 소설만이라도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