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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iteller 토리텔러 Dec 31. 2022

읽는 사람이 있어 가치 있는

[Thanks#5] 글을 읽어 주는 독자분들에게

마지막날의 마감효과

앞자리 숫자가 달라지니 의미를 두고 싶지만, 진지하게 생각하면 별 특별할 것 없는 날이 12월 31일이다. 추운 겨울의 하루고, 그동안 지내왔던 새털 같이 많은 날들 중 하루지만 연도가 바뀌는 것 하나로 의미 있는 날이 된다. 마지막 날, 그것도 1년의 끝이 되면 미뤘던 일을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뭐가 다른지 모른다고 말한 나도 다를 게 없다. 사람 많은 전철을 타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뒤에서 민다. 그 사람도 남에게 밀려 들어오니 째려본들 밀고 밀리는 사람들끼리 감정만 상한다. 그냥 나도 앞사람을 밀면서 들어갈 수밖에. 연말은 거대한 힘이 내 삶을 미는 것 같다. 다른 곳으로 밀려가기 전에 마무리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책임감이 생긴다. 책임감. 참 좋은 말인데 세상은 책임감 없이 살아야 더 행복해 보인다. 악당들은 책임감이 없어 자유롭고 행복해 보이나 보다. 정의로운 형사나 사람은 항상 힘들어한다. 책임감을 달고 다니면서 정의구현을 해야 하니 얼마나 벅찰까? 영화와 드라마에선 다수의 정의가 승리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읽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

난 참 운이 좋다. 책을 낸 것도 운이 좋았고, 1.5만 명의 독자가 있는 것도 운이 좋아서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만큼 뻔뻔하지 못해 이 모양으로 사는 중이다. 그리고,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같이 만들어 준 사람들 덕분이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로 글을 잘 쓴다 한들 누구 하나 읽어주지 않으면 알려질 리 없다. 게다가, 난 우리나라에서 제일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니니 더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들 딱히 불만은 없다. 그래서, 부족한 글을 읽어주는 분들에게 감사하는 것이 내게는 배고플 때 음식을 먹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다. 내가 잘 나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내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키우고, 팔고, 전달해 주고, 요리해줘서 마침내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돈을 냈기 때문에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돈을 주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회 구조나 경제 기반 역시 같이 만든 것이고, 운 좋게 내가 음식 사 먹을 돈푼을 챙겼다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빵집 주인의 이기심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나온다는 이야기다. 사실, 난 국부론을 읽어본 적 없다. 하지만, 아는 체하고 인용 한다. 모든 것을 다 읽지 않고 경험하지 않아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못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말이 사실일 거라 믿는 것. 믿음에 기반해서 우리는 거래를 하고, 대화를 하고 다음 돌을 쌓아간다. 내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빵집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수익을 얻으려는 빵집주인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말은 사실이다. 우리 부모님을 빼면 나에 대해 무한한 관심을 가질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빵집 주인을 비정하고 계산적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빵집 주인은 자기의 역할을 묵묵히 했을 것이고, 누군가 해야 할 빵 만드는 일을 그 사람이 나 대신해줬기 때문이다. 이기심만 생각한다면 글 쓰는 나에게 '좋은 글을 써줘서 고맙다'는 말을 할 필요도 없고, 독자들에게 '글 읽어 줘서 고맙다'는 말도 할 필요 없다. 서로 자기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이용했다는 것뿐이니까. 근데, 나는 진심으로 감사한다.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서라고 말해도 좋다. 수많은 글이 있고, 카카오의 플랫폼에서 추천을 해줬고, 우연히 읽었다고 해도 '좋아요'를 눌러주는 수고를 굳이 해준 것은 적어도 독자의 시간을 뺐었다는 말은 아니니까. 읽지도 않았고 내용도 마음에 안 들지만 '좋아요'라는 의사표현을 마지못해 했더라도 칭찬으로 '착각한(?)' 작가들은 글을 더 만들어 낸다. 선순환이라고 할 구조가 만들어진다. 


내년엔

아직 잘 모르겠다. 뭔가 하겠다고 다짐한들 체력도 안되고 의지도 박약하니 자신 있게 뭘 하겠다 힘차게 말하긴 부담이다. 나폴레옹 유머처럼 기껏 산을 오른 병사들에게 '이 산이 아닌가 봐'라고 말해야 할 일이 더 흔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 한다. 왜냐하면, 맞는 산을 찾는 것도 좋겠지만, 찾는 과정이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인생 모양새가 그렇다. 내가 아무리 잘난 척 한들 앞으로 항상 맞는 길을 갈리 없다. 나이 먹을 만큼 먹은 나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속 편하다. 뭔가 해볼 거고, 해보다 멈출 거고, 잘못했다고 후회할 거고, 더 잘했을 수 있을 거라 자책할 거고, 아마 남은 날 동안 반복할 게 뻔하다. 결과는 뻔하지만 길은 다채로울 테니 계속할 수 있게 된다. 길마저 뻔하다면 너무 지루해 퍼질러 앉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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