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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승한 Feb 10. 2021

학문에 대하여

학문의 본질과 방향

  흔히 철학을 최초의 학문, 근원적 학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인류가 구축해온 모든 지적 유산이 하나의 물음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의문이다. 그런데 사실 인간의 감각기관은 스스로를 인지하는 것보다 외부의 것을 인지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인간이 동물이기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인류의 지적 능력은 순차적으로 발전됐다. 동물은 존재론적인 회의를 하지 않는다. 때문에 인간이 사고를 할 만큼의 지성을 갖추기 전,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앞서 ‘이게(내가 지금 인지하고 있는 것)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있었을 것이다. 물리학의 시작이다. ‘물리’는 본래 사물의 이치를 이르는 말이다. ‘물리학’은 physics의 역어인데, 기가 막 번역 사례라고 할 만하다. 물리학은 물질의 이치를 밝히는 학문이고, 나아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철학 분야 중 인식론이라는 영역이 있다. 사전적 정의는 ‘인식·지식의 기원·구조·범위·방법 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실체가 모호하다. 관념을 재가공해서 관념화하는, 지극히 형이상학적인 탐구 영역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존재가 스스로와 주위 환경을 인식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식론의 관점에서 보면, 현대적 의미에서의 철학과 물리학은 도저히 나눌 수 없다. 그 밖에도 수없이 세세하게 갈라진 많은 학문 간의 구분이 무의미해진다. 사실 인식론을 철학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나는 인식론이야말로 모든 학문의 기저에 깔린 주춧돌이자, 모든 학문들이 그리는 마천루라고 생각한다. 모든 학문이 당대의 인식론이 가진 좌표에 영향을 받고, 인식론의 좌표는 말 그대로 당대 인류가 가진 지식의 지평 그 자체다. 소크라테스의 합리론 이전에 우리는 수사학이 가장 지고지순한 학문이라고 착각했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전에는 우주를 인지하지 못했으며, 다윈의 진화론 이전까지 창조론 말고 생물의 기원을 설명할 대안이 없었다. 소쉬르의 이전에는 관념적 언어가 완전히 이해되지 못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이전에는 우주의 기원을 알지 못했다. 인류의 인식은 셀 수 없이 많은 학문적 성과들과 상호작용해왔다. 학문적 성과들은 서로 견제하고 보완하며 우리의 인식을 완성시켜 왔다. 우리는 이제 과거의 인류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존재와 세상을 바라본다.


  인류가 가진 인식의 지평이 확장되는 속도는 자연스럽게 빨라져 왔다. 그런데 긴 인류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에, 인식이 수백 년간 조금도 확장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신앙이라는 관념적 장애물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동안, 인류는 인식을 확장하고 정제하고픈 욕구를 거세당했다. 회의가 죄악시되던, 불합리의 시대였다. 신학적 탐구라는 것은 오히려 인류의 인식을 퇴보시켰다. 교조적이고 형식적인 지적 행동이 낳은 가장 큰 결과물은 기껏해야 종교전쟁이라는 대학살뿐이었다.


  현대의 학문은 지나치게 방법론 중심이다. 필요 이상으로 세분화된 학문의 분야들은 현대의 학문적 탐구라는 게 형식성에 치중하고 있다는 증거다. 학자들 대부분이 탐구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다른 분야의 연구를 참고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다른 분야의 영역을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른 분야’라고 인식하는 것들 중에는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다른 분야가 아니었던 것들도 있다. 범학문 차원의 메타인지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또, 꽤 많은 수의 학문 분야들이 벌써 수십 년째 극히 제한적이고 구체적인 ‘주류’의 의견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고 있다. 교조화 현상이다. 새로운 발견이나 연구가 나오기 어려운 토양이 굳어지고 있다.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다. 방법론 중심의 현대 학문에 특이점이 왔다. 지금 변하지 않으면 인류의 인식은 중세시대처럼 얼마간 정체기를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 Math, science, history, unraveling the mystery, that all started with the Big Bang.


  미국에서 2007년부터 2019년까지 방영한 시트콤 빅뱅 이론(Big Bang Theory) 오프닝 테마송의 한 구절이다. 이것이 현대 인류가 가진 인식의 현주소다. 이런 얘기를 700년 전쯤 유럽에서 했다면 화형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인류의 지식적 성취들은 끊임없이 인식론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킨다. 인간의 모든 탐구는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인식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화가 아니라 통합이다.




2020.06.26.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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