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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승한 Feb 10. 2021

그날을 쓴다.

이제야, 쓴다.

  한적한 평일 오후였다. 점심을 먹고 돌아선 참인데, 대학교 때 꽤 친했지만 졸업 후에는 좀처럼 연락을 하지 않았던 선배가 갑자기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누나. 잘 지내시죠? 승한아, 최근에 OO이랑 연락한 적 있니. 안부를 묻는 말에 대답조차 없이 친구의 소식을 묻는 선배의 다급함을,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아뇨, 한 몇 개월은 못 본 것 같아요. 무슨 일이세요?


  전화기 너머로 불쾌하기 짝이 없는 침묵이 흘렀다. 신경을 거스르는 불협화음이 느껴졌다. 때맞춰 전화기가 말을 했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내가 방금 이상한 연락을 받아서…


  나는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했지만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왜 나에게 그런 전화가 왔는지, 그 순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마치 세상 전체가 나와 연결된 느낌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완전히 뜻밖이었다. 부모님께서 지금 외국에 계실 텐데. 장례는 어떡하지. 시야가 답답하고 숨을 쉬기가 어려워서 얼굴을 훔쳤는데, 손에 찐득한 무언가가 묻어 나왔다. 그것은 슬픔 같은 고상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애도를 할 정도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한 순간에 나를 사로잡은 그 뚜렷한 감각에 완전히 지배당한 채, 걸음을 옮겼다. 집을 나서고,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의 기억이 뚜렷하지 않은데, 지하철에서 소리 내어 엉엉 우는 나를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봤던 것 같다.


  알려준 주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이름, 이름을 찾아야 한다. 나는 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전광판에서 손쉽게 목적을 달성했다. 그곳에,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이름이 있었다. 그제야 아무것도 확인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한 상황을 부인하고 싶어졌다. 나는 무엇을 확인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가. 처음 연락을 받고, 옷을 입고 지하철 역으로 갔듯, 이름 밑에 쓰인 번호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그곳으로 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내 의지와는 무관했다. 확인하면, 받아들일 준비는 된 것인가.


  밖에서 보이는 빈소는 비어 있었다. 제단이 시야에 들어올 때까지, 앞으로 내딛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영겁 같았다. 부모님은 역시 아직 도착을 못 하셨나 보다. 그럼 어떡하지? 연락을 하자. 하지만 누구한테?


  드디어 제단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위에는 내가 이상하게 나왔다고 놀렸던 사진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직 빈소가 채 준비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빈소 안방에서 상복을 입은 중년의 여자가 나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답을 해야 하는데, 대답과 비슷한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생각이 얽히고설켜서 완전히 단단한 덩어리가 된 채 목 언저리에 붙어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에 막혀 소리는 나오지 않고, 소리를 내려면 그것을 온전히 풀어헤쳐야 할 것 같았다. 풀어내는 법을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때, 안방에서 조금 소란이 일더니, 일전에 뵌 적 있는 아버지가 나오셨다. 승한이! 승한이 맞지?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묘한 안도감과 함께 세상이 무너졌다.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이것을 확인하러 지금 여기에 왔구나. 너는 이제 세상에 없구나. 네가 죽었다는 것은 이제 내가 사는 세상 어디에도 네가 없다는 말이구나.


  가는 길에 너무 많이 울었던 탓에, 조문객도 들지 않은 상가에 곡소리를 내면 안 되겠다는 강박에, 눈물은 더 이상 나질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이미 연락을 받고 장례식장으로 오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친구도 한 시간 반이 더 지나서 왔는데, 빈소는 그때까지도 조문객을 받을 준비를 마치지 못했다.


  나중에 아버지께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도착할 수 있었는지 내게 물으셨다. 나의 집에서 장례식장은 한 시간 반이 넘는 거리였는데, 빈소가 마련되자마자 내가 들이닥쳤다는 것이다. 아직 해외에 계신 줄 알았습니다. 제가 빨리 와야 할 것 같아서… 아버지께서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 쥐고 한참을 계셨는데, 나는 아무 말도 이어서 할 수 없었다.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어떤 중간 과정도 없이 죽음 그 자체와 바로 마주했다고. 그것은 인정이 아니라 그냥 아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부정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 그 죽음을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소름 끼치도록 선명하게,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내가 빨리 도착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걸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그 감각을 낱낱이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나를 몸서리치게 하고, 잠에서 깨우는 것은 새삼스런 친구의 부재나 슬픔의 감정이 아니라 그 감각이다.


  이제야, 그날을 쓴다.




2021.02.05.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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