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서른아홉 어른이
누군가 나에게 당장 오백만 원 정도를 줄 테니, 오로지 너를 위해 그 돈을 다 써야 한다고 한다면-그중 일부는 나의 드림 타자기 (올리베티 밸런타인)를 사는데 쓰고, 그중 일부는 타자기 놓을 테이블 사는데 쓰고, 나머지는 작업에 필요한 재료 사고 책사는데 써야지. 책도 그냥 책이 아닌, 그동안 비싸고 커서 못 샀던 화보집들을 살 것이다. (커다란 데이비드 호크니 화보집이 일 순위) 그 후엔 영어 수업이라던지 비누 만들기 수업처럼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는 것에 쓸 것 같다. 그러고도 돈이 남는다면, 그제야 올 겨울에 입을 패딩 하나 정도는 생각해볼 것 같다.
지인들에게 현실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정도의 액수를 제안하고(500만 원 정도) '내가 사고 싶은 것의 목록'을 적어보라고 하면 참 재미있다. 전제조건은, 그 돈은 꼭 나를 위해 써야 한다는 점이다. 현실의 소비는, 가족을 위한 것, 남을 위한 것, 미래를 위한 것이 혼재되어 있기에 그 안에서 나의 욕망을 구분해 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나의 욕망들이- 마음속 위시리스트가-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인 것도 같다. 적어도 '지금의 나'를.
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나의 위시리스트에 타인의 시선이 끼어들기 시작한다. 마흔 정도 되면, 이런저런 명품 한두 개 정도는 두르고 다녀야 초라해지지 않는다던데, 사그라드는 젊음의 빛을 화려한 보석으로 보충해야 한다는데, 화장품도 신발도 더더 좋은 거 쓰고 신경 써야 한다는데.
그런데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대강 입고 대강 들고 대강 신으면서 버틸 수 있을까. 언제까지 그래도 괜찮은 걸까.
사실 책과 재료들 살 돈으로 H브랜드의 가방은 한두 개 정도는 사고도 남았을 것이다. 문득 어릴 때 읽었던 동화에 등장하던, 커다란 구두 속에 사는 할머니가 떠올랐다. 나도 책과 재료들로 집을 지어 그 안에서 살아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가구는 작은 책상 하나밖에 없고 그 위엔 타자기만 놓여있는 것이다. 좋은 옷이나, 가방, 신발, 보석 같은 것이 곱게 놓일 공간 같은 것은 없다. 앉을 의자가 필요하면, 어디선가 책을 또 사 와서는 바닥에 쌓아 간이 스툴을 만들어서 쓰면 되겠지.
나는 제 발로 그러한 운명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명품백을 포기하고 대신 책으로 지은 작은 집에서 꼬장꼬장하게 나이 들어가는 초라한 중년의 운명으로. 타닥타닥 타자기나 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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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서른 중반에 접어들면서, 이제 정말 나이가 들어버린 것 같다는 나의 투정에 마흔 줄에 들어선 선배가 그런 말을 했다.
'길가다가 보이는 옷가게 들어가서, 아무 옷이나 사서 걸치고 다녀도 용서가 되는 30대는, 내가 보기엔 20대나 같아. 다 청춘이지'
(그런데 내가 그 선배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선배도 어렸다!)
그래도 선배의 말이 위로가 되었던 것인지 -그래 딱 마흔 되기 전까지만, 나 편한 대로 살자. 마흔될때즘에는 나도 정신 차리겠지- 그렇게 몇 년의 유예기간을 스스로에게 주었다. 그런데 용돈 모아 책사고, 방학 때면 방에 처박혀 책을 읽다가 뜨개방에 가서 할머니들에 둘러싸여 뜨개질 배우러 다니던 소녀는 내 안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아 함께 마흔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소녀는, 손에 화려한 반지를 끼고 우아한 숄을 두르고 잘 관리받은 피부에서는 광이 나고 좋은 신발을 신고 취미로 골프를 즐기는 여성들 앞에서는 여전히 곧잘 부끄러워한다. 그녀들의 귀티 나는 삶이 아니라, 시의적절한 취향의 추구가 부러워서 그렇다. 그러한 나이 듦을 추구하는 성숙함에 기가 죽는다.
그것은 가진 돈이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 배분의 문제다. 나도 나름 재료를 살 때엔 '큰손'이다. 책도 그렇다. 책도 통 크게 산다. 책에 쓰는 십만 원은 안 아까운데, 입고 바르는 것에 쓰는 십만 원은 아까운 것이 문제다.
그리고 아마도 더 큰 문제는, '미래의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지나치게 신뢰한다는 점일 것이다. 많은 것을 그녀만 믿고 미뤄둔다. 당장 이번 주에 할 일도, 다음 주의 그녀가 알아서 하겠지 싶어서 미루고.. 지금의 우아하지 못한 나도 마흔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했는데 이런! 망했다. 이러니 오십의 나라고 다를 리가 없다. 지금의 내가 그러하지 못한데 오십의 나라고 갑자기 그렇게 될 리가.
언젠가 남편이 나보고 '당신은 언제까지나 소녀 같을 거 같아'라고 , 얼핏 낭만적인 칭찬으로 들리지만, 실상은 '넌 언제까지나 어릴 거 같다'라는 뜻의 디스를 한 적이 있다. 분하지만 ,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나는 평생 우아하고 부티나는 사모님 같은 모습으로 나이 들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 명품 살 돈으로 책 사고 재료 사고 타자기 같은 ,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없어 보이고 삶의 사족같이 보이는 것들에 관심과 돈과 시간을 쓰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그러한 '나다움'에 대해서 창피해하거나 불안해하지 말자고 다독이는 한편으로는,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거나 아이의 친구 엄마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그녀들의 적절한 성숙함에 또 기가 죽고 만다.
마흔이 다되어 가면서 나는 왜 아직도 '어른인 척하는 아이'같은 것일까. 기가 막힌다. 흰머리는 나날이 늘어나고 얼굴엔 없어지지 않는 기미가 올라오는데... 그래! 결심했어. 이제부터는 나도 우아한 중년이 될 거야. 피부관리실도 다니고, 책사고 재료 사고할 돈으로 명품 신발을 사고 좋은 화장품을 사서 쓸 거야. 편하다고 맨날 술렁술렁 들고 다니는 저 에코백들도 다 버려야지. 앞으로 일해서 번 돈들은 잘 모아서 좋은 백도 살 거야. 이번에 주문한 타자기는 어쩔 수 없고.. 다음엔 그런것에 돈 쓰지 말아야지..
라고 결심할 때 즈음 타자기가 도착했다.!
커다란 상자에서, 여기저기 흠집이 있고 얼룩이 진 , 사연이 스무 개가 아니라 백개는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하늘색 타자기가 나왔다. 타닥타닥 소리마저 아름답고, 타자기 앞에서 내 손이 해야 하만 하는 불필요한 노동조차도 너무나 즐거워서 웃음이 나온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타자기 앞에 앉아 타닥타닥 아무 말대 잔치를 쏟아내고 나면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카타르시스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원해진다. 거기에 더해 아이가 타자기 앞에 앉아 시를 쓰는 그 아름다운 모습이라니!
이 즐거움 포기 못해. 이것이 나의 행복이고 나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여. 우아한 중년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난 당장 다음 타자기를 물색해봐야겠어. '올리베티 밸런타인'의 빨간 타자기가 보이면 바로 사버리겠어. 옷장에 처박혀있는 C백을 팔면 타자기 놓을 멋진 테이블 하나 살 수 있을 텐데.
그래도 여전히, '귀티 나고 우아한 중년'에 대한 미련이 남아 '어쩌지.. 싶은 마음이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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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모르겠다! 우아한 중년은 오십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난 너만 믿는다!
아인슈타인 아저씨에 의하면, 매번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데... 그 행동이 얼마나 좋으면 그렇게 매번 반복하겠어요..라고 조금 소심하게 반박을 하며 이 긴 변명의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