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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

2. 타자기 페르소나

by Sarahn
california typewriter



타자기에 대한 관심은 늘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름다운 것들이 좋다. 70-80년대에 탄생한 기기들은 아직 디지털의 매끈함에 물들기 전이라 기계보다는 오브제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 특히 타자기는 더 그렇다. 아마 당시 타자기 디자이너들도 그런 자부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올봄에 'California Typewriter'라는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타자기 판매, 수리를 하는 오래된 가게를 중심으로 타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타자기 수집가는 오래된 타자기를 수집하면서'돌아갈 수 없는 장소를 향한 향수'를 달래고, 타자기 동호회 사람들은 '대세인 사고방식뿐 아니라 작지만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것을 모임을 통해 공유한다.

뿐만 아니라, 톰 행크스와 존 메이어, 밥 딜런 등 타자기를 애용했던 , 또는 애용하고 있는 유명인들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특히 밥 딜런이 타자기를 다루는 이야기에 마음이 동했다.

"밥 딜런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웃다가도 , 타자기 앞에 앉아서 악기를 연주하듯이 가사를 치는 장면을 봤어요." (-존 메이어)


타자기를 악기처럼 연주하는 밥 딜런 이라니-


그 모습을 보고 , 자기도 그날로 바로 타자기를 사서 사용하고 있다는 존 메이어는 이런 말도 했다.

(그는 이 다큐에서 좀 멋있는 말을 많이 했다)

'모니터 속 글은, 오타가 나면 빨간 줄이 그어지잖아요. 나는 그냥 쭉 써내려 가고 싶은데.. 여기저기 빨간 줄이 그어지고 내 리듬을 방해한단 말이에요. 타자기로 글을 쓰면 , 쓰는 동안에는 오타 따위 걱정하지 않게 되죠. 나중에 결과물을 보면서 팬으로 여기저기 오타를 표시하고 덧붙일 글을 메모해요. 컴퓨터로 작성한 글은 두 번 다시 보지 않는 것이 대부분인데, 타자기로 쓴 글은 읽고 또 읽고 수정하고 메모도 남겨요. 그 종이 한 장에 내 생각의 흐름이 전부 담기는 거죠. 그래서 타자기 앞에서는 완전히 미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요.
- 존 메이어


타자기를 칠 땐 완전히 미친 사람이 되려고 한다는 존 메이어의 말에, 타자기를 악기처럼 연주하는 밥 딜런의 모습에 반했다.

한편으로, 컴퓨터로 글을 쓰는 나는 어떤가. 글씨체가 너무 많아서 고민하고, 글씨 크기 고민하고, 여백의 정도는 모니터로 아무리 봐도 와 닿지 않고. 나는 오히려 컴퓨터 앞에서는 정말 상식적이고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러다가 산만한 사람이 되고 (글 쓰다 말고 온라인 쇼핑하기) 그러다가 초조하고 짜증에 찬 ( 온라인 쇼핑하다가 정작 해야 할 일도 못했다는 자각에) 사람이 되는 것을 반복한다.

-그냥.. 타자기에 반하고 나니, 컴퓨터는 악의 근원 같고... 다 미워보였다. 정이 그냥 뚝!

그래,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이 싫다고 치자. 그렇다고 굳이 타자기를 사야하는 이유가 되는것은 아니잖아?


컴퓨터로 글을 쓰고 편집하고, 프린터로 손쉽게 출력할 수 있는 세상에서 타자기가 줄 수 있는 이점이란 무엇인가, 왜 나는 타자기를 사야하는가? 라는 의문을 던져놓자- 타자기를 통해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대답을 생각해낸 스스로가 대견했다.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싶은 스스로의 욕구에 이름을 붙이고 이유를 생각해내는 것- 나는 늘 순서가 바뀐듯한, 구입을 추진하기 위한 나의 프로세스가 좋다. 나만의 조금은 변태스러운 자기 합리화의 과정. 이 과정을 잘 거쳐서 멋진 이유가 만들어지면, 그때부터는 그 물건을 소유하게 되기까지의 기쁨이 순수해지고 배가 된다.

물론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엔 구차하게 이유같은거 붙이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구차하게 하고 싶다. 그런거. 이유없는 마음에 이유 만들어주고 이름 붙여주고, 물주고 햇볕 실컷 쐬게 해줘서 잘 키우는 것이다.

-


나에게도 타자기가 있다면,

마치 밥 딜런처럼, 존 메이어처럼 , 타자기 앞에선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타자기 앞에서 나는 어떤 페르소나로 존재할까. 모니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나라는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겠지. 타자기라는 악기를 연주하고 싶다.

-

그때도 지금도 뻔뻔하게 인정한다.

타자기를 사면 내게 뭔가 기막힌 해결책이 생기리라는, 더 창의적이고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타자기를 무슨 구원자처럼 생각하며 소유욕에 불을 지폈다는 사실을.


이미 머릿속에선 '타닥타닥 탁탁 땡' 타자기를 연주하는 나의 모습이 , 뉴욕의 오래된 재즈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의 모습과 오버랩되고 있었다.

내가 그인지 그가 나인지 구분도 못하게 되기전에 , 그리하여 이 기대와 미화의 풍선이 터져버리기 전에 타자기를 소유하고 경험해야 한다. 마음이 급해졌다.


그런데, 때마침 한 달 뒤에 내 생일이네?!



(이 다큐는 올 초에 본것으로, 이 글을 쓰면서 팩트를 확인 하기 위해 다시 시청하려고 했으나 불가능하네요. 그래서 기억에 의존해서 존메이어의 말을 마음대로 편집해보았습니다. 아마도 말의 디테일은 좀 달라도 의미는 비슷할것으로 생각합니다. 대충 이런말을 했어- 정도로 읽어주세요. 다큐가 너무 좋았기에 더 길게 소개 하고 싶으나 이 역시도 기억에 의존해야하고 그런데 내 기억은 주관적인데 가난하기까지해서 이렇게 부실하게 언급 할 수 밖에 없음이 무척 아쉽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꼭 한번 보시길 바래요. 나의 소개와 너무 달라서 놀라게 되신다면, 미리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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