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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나와 타자기

1. 기다림의 시작

by Sarahn





우리 집 다이닝 테이블 위에는 네모난 하늘색 타자기가 한대 놓여있다.
이곳이 현재 우리의 활동 중심지이다.
누구든 내키면 타자기 앞에 앉아 타닥타닥 원하는 글을 쓴다. 그리고 놀랍게도 타자기를 가장 애용하는 사람은,
올해 10살인 나의 딸이다.

몇 달 전, 나의 서른아홉 번째 생일을 앞두고 남편에게 타자기를 선물로 사달라고 했다. '왜 타자기 같은걸 사?!'라고 황당해할까 봐 소심하게 요청했으나 남편은 세상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타자기? 그건 어디서 사면돼?"라고 물어보았을 뿐, 내가 그걸 왜 사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주변 지인들에게 타자기를 가지고 싶다고 얘기를 했을 때에도 아무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타자기와 어울리는 사람이거나, 늘 조금은 쓸데없어 보이는 것에 열광하는 사람이거나.

프린터도 없고 컴퓨터에는 ms office 도 없는데, 그 와중에 타자기를 가지고 싶어 하는 이 비효율적인 욕심을, 내 생일에는 마음껏 부려야지 작정하고 타자기 서치를 시작했다. 나이가 들 수록 유치하고 진하게 생일을 누리고 싶어 진다. 내것은 꼭 챙기고 싶어 진다. (갑자기 아기처럼 욕심 많아지는 할머니들의 마음을 이해해버렸다)


내가 찾는 타자기는 이러한 조건에 부합해야 했다.



1. 아름다워야 한다. -이왕 과거를 사는 것에 사치를 부리는 거, 무조건 아름다워야 한다.

2.4벌식이어야 한다. -한글 타자기에는 2,3,4, 벌 식이 있다. 4벌식 타자기가 처음에 적응하기에는 어려워도 타자의 결과가 완성도가 높고 , 타자기로써는 여러모로 가장 전성기를 누렸다.

3. 실제로 사용 가능해야 한다. -온라인으로 찾을 수 있는 타자기 중에는 인테리어 소품용으로 판매하는 것이 많다. 나는 실제로 쓰는 것이 목표이므로 당연히 실제 사용 가능하게 잘 손질이 되어있어야 한다.

4. 휴대용이 아닌 적당한 크기와 무게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 -휴대용은 아무래도 타건감이 좋지 않거나 시끄럽다는 얘기를 많이 들은 터였고, 이왕이면 제대로 된 타건감을 느낄 수 있는 스탠더드 크기를 경험하고 싶었다.


한마디로, 아마추어가 장비 욕심은 이미 프로급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첫눈에 반하고 싶었다. 첫눈에 반하는 타자기를 사리라.




그렇게 어느 날 모든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되는 타자기를 마법처럼 만났다.! 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 일단 타자기 자체가 지금은 생산되지 않으니 물건이 별로 없었고 -사실 1번 조건만 버리면 그중에서도 상태가 좋은 것을 손쉽게 살 수는 있었지만 -도저히 아름다움에의 욕심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름다운 타자기여야 한다. 주문처럼 외우면서 한 달 동안 매일 밤 온라인 사이트를 뒤졌다. 내 옷방 서랍도 이 정도로 꼼꼼하게 뒤지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하면서 , 온라인 구석구석을 '타자기를 찾아요~ 아름다운 타자기를 찾습니다'외치면서.


그렇게 열심히 찾아다닌 것에 비해 , 내가 내 첫 타자기를 만나게 된 경로는 좀 싱거웠다. 운명적인 만남이라기보다는 이성적인 만남이었다. 열정적인 서치 끝에 오래된 타자기를 매입해서, 사용하기 좋게 보수, 관리해서 판매하는 업체를 찾았고 '저 이러이러한 조건의 타자기를 찾습니다'라고 요청한 것이다.


"말씀하신 조건에 부합하는 타자기가 있긴 한데, 여기저기 외관이 조금 상처가 있어요. 괜찮으시겠어요? "라는 답이 왔다.


아니.. 빈티지를 사면서 외관의 상처가 하나도 없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나요. 상처 하나에 사연 열 개를 떠올리면서 흥미로워할 거예요. 나는 사연이 담긴 오래된 물건을 좋아합니다.-라고 생각하면서


"네!!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열정적인 나의 답에 대한 답변으로 하늘색 타자기 사진 하나가 왔다.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청 하늘색의 네모난 얼굴, 여기저기 쓸려서 생긴 상처들, 하얗게 묻은 얼룩들, 딱 보기에도 1970년대에 태어난 오래되고 고운 자태. 첫눈에 반했다!


수리할 부분이 많아서 사용 가능한 수준으로 고치는 데까지 2-3주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네! 다 괜찮아요. 하나도 안 급해요. 잘만 고쳐주세요."


그리고 그 날부터 약 3주간의 설레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나보다도 더 타자기의 도착을 기대하는 아이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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