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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n Nov 04. 2021

폴 아트레이드의 피로감


어제, 아이와 영화 '듄'을 관람했다.

마블 영화나 애니메이션 영화가 아닌 진지한 sf영화를 (게다가 3시간짜리..) 아이와 함께 보는 것은 처음이라 걱정이 되었다. 영화 도중에 지루하다고 그만 보자고 하면 어쩌나 싶어 그전에 너튜브로 듄의 세계관에 대해 미리 예습을 시키고 영화관 입장 전에 화장실도 필수로 다녀오게 했다.(영화 보는 중에 화장실 가자고 하면 안 되므로)

 사실 방법이 있었다면 혼자 갔을 것이다. 혼자 보고 싶었다. 아이는 아무리 협조적이어도 나의 관심과 집중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가 듄의 아이맥스 상영 마지막 날이기도 했고, 이리저리 아무리 스케줄을 바꿔봐도 혼자   있는 타이밍을 찾까 힘들었다. 그렇다면 아이와 함께여도 반드시 보고야 말겠다는, 철저나의 사심으로 강행된 영화 관람이었다.

  듄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연출도 너무 좋았고, 배우들의 연기도, 화면의 아름다움도 , 스토리도 너무 좋아서 그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밤새 얘기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에 대해 할 말이 많다는 것은, 그러니 애매하게 어설픈 길이의 평을 남기느니 '좋았다'는 단순한 감상이 낫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영화 평론가도 아니고 듄의 원작 팬도 아니므로 그에 대한 긴 감상평은 굳이 남기고 싶지 않다. 그저 너무 좋았다-이 말로 충분하지 싶다.

 다만, 영화를 보는 내내 떠나지 않았던 피로감에 대해서는 기록하고 싶다. 그 피로감은 폴 아트레이드 (티모시 샬로메)의 피로감이기도 했고 영화와 무관한 나의 피로감이기도 했다.

 폴 아트레이드에게는 여러 가지 재능이랄까 능력 같은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예지능력이다. 그는 꿈을 통해 또는 환각처럼 나타나는 장면들을 통해 미래를 볼 수 있다. 물론 그 미래라는 것이 고정된 하나의 미래가 아니라서 꼭 그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는 가능한 수많은 미래 중 몇 가지를 내다볼 수 있다.

 다른 이의 죽음을 보기도 하고 자신이 이끌게 될 대전쟁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 미래의 섬뜩함 또는 아름다움과 무관하게 일단 그는 자신의 미래에 살아있다. 당장 닥친 위험이 얼마나 크던간에 그는 자신이 결국 생존해 내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셈이다.

  언듯 보면 , 자신이 이 위험을 이겨내고 생존해낼 것이라는 사실이 큰 위안과 힘이 될 것 같지만, 당장 죽음을 모면하고 또 모면해야 하는 폴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예지 따위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미래에 살아있는 자신을 구현하기 위해 지금과 그 미래 사이의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 숙제를 어떻게든 풀어내야 하는 피로감이 몰려온다.

  사이의 이야기를 매우는 ,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 그러면서도 자신이  미래의 모습을 이뤄 나가는 일, 순간순간 선택의 선택을 거듭하는 , 그래 봤자 결과는 정해져 있지 않나 하는 허무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자유의지에 집중하는 - 이것이 폴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예지능력이 있는 초인적인 인간이면 뭐하나 -결국엔 평범한 우리와 똑같은 현실을 살아내야 한다.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 외에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우리와 같은 고민을 매 순간 해야 한다. 아니다. 우리의 입장이 낫다. 우리에겐 반듯이 도달해야 할 어떤 지점이나, 반듯이 재현해야 할 모습 같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그 미래를 마음대로 구축할 자유라도 있지 않나. 하지만 폴은 어느 지점에 반듯이 도착해야 한다. 그리고 반듯이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한다. 그 일은 절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답이 이미 주어진 문제의 풀이과정을 도출해내야 한다. 전혀 멋지거나 수월하지 않은, 치열하고 지루한 과정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폴은 우리처럼 사랑을 하고 웃기도 하고 행복을 느끼기도 기쁨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그런 작은 장치들이 없다면 매일을 살아내야 한다는 피로감을 그 누구가 이길 수 있을까. 폴의 경우엔 누구를 사랑하게 되는지도 내다볼 수 있다는 것이 내입장에서는 거의 저주처럼 느껴지지만 뭐 아름답고 초인에 가까운 폴은 그 저주도 알아서 잘 살아낼 것이다.

 나와 폴의 피로감과는 별개로, 영화는 그리고 티모시 샬로 메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이제는 이런 영화도 아이와 함께 공유할 수 있음이 감사했다. 나에겐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메트릭스 가 있었다면, 아이에겐 듄이 그러한 거대 sf 서사 장르의 시작일까-만약 그렇다면 나는 아이의 역사 속 중요한 한 페이지를 함께 나눈 셈이다. 누군가의 역사가 쓰이는 것을 지켜보는 일, 그리고 중간중간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참 오랜만에 되새겨본다.

 이런 깨달음과 감동을 주는 것은 내게는 늘 책이거나 영화이거나 공연 , 전시 같은 것들인데- 단돈 몇만 원으로 삶의 의지를 다질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경이로운 일이다. 하루를 살아내는 피로감을 해소해주는 것이 훌륭한 아티스트들이 사회의 공헌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그 몇만 원에 받아 든 큰 선물을 뻔뻔하게 넙죽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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