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그 질문
"영국에 왜 가?"
"왜, 영국만 가?"
근 한 달 영국 여행을 준비했던 제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꽤 오래전부터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준비기간이 길었던 여행이라는 걸 알기에. 좀 더 다양한 나라와 문화를 경험하길 바라며 제게 한 질문들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알기에 질문한 사람에 따라 제 대답은 달랐습니다.
"나한테 여행은 공부라서. 영국 한 곳만 공부하는 것도 벅차더라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나라라서, 한 달도 모자라, 들어봐. 브론테 자매, 제인 오스틴, 버지니아 울프, 올더스 헉슬리, 찰스 디킨스, 오헨리, 조지 오웰, 아서 코난 도일, 셰익스피어, 루이스 캐럴, C.S 루이스, 조앤. K. 롤링, 제시 버튼..."
"영국이 볼게 얼마나 많은데! 런던이랑 그 근처 말고도 스코틀랜드, 중북부 요크셔, 남쪽에 콘월까지."
"보고 싶은 박물관이랑 미술관을 찾아봤는데, 영국 박물관, 내셔널 갤러리와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런던 도서관, 런던 박물관,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 스코틀랜드 미술관, 켈빈그로브 박물관, 제인 오스틴 문학관, 셜록 홈스 박물관, 브론테 문학관..."
"외국어 중에 영어가 제일 편하잖아. 전부 이해는 못해도, 들을 수도 있고, 말할 수도 있고, 읽을 수도 있는 외국어가 영어뿐이거든."
꽤 다양한 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답들 모두 제가 영국을 가고 싶었던 이유였습니다. 그럼에도 질문이 계속되자, 제가 할 수 있는 답에 한계가 생겼습니다. 그러다 마음속에 '왜 영국만 다녀오면 안 되는데?'라는 말이 삐쭉 나왔습니다.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그 질문은 마음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제게 아주 특별한 교수님이 질문 하나를 했습니다.
'영국' 다녀와서 책으로 남겨야지!
그러려면 준비를 더 충실하게 되고 배우는 것도 많을 거다
그때는 정확하게 몰랐지만, 제 마음속에 삐죽 나와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책'으로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이 질문을 계기로 이제까지 막연하게 써야지 생각했던 책을 목표로 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영국 여행이 아니라면 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결심한 2017년 5월 어느 일요일에 제 노트북에 '영국 여행 Project 폴더'가 태어났습니다. 2달 동안 열심히 보고 싶은 곳, 궁금해서 확인하고 싶은 것 위주로 여행 계획을 세웠고, 지난여름 영국에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계획하고 다녀오는 것까지는 빠르게 해냈지만, 글과 사진을 정리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훌훌 털어냈지만 탄식이 절로 나오는 그 쉽지 않았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쿵 내려 앉는 느낌이 듭니다. 그 이야기는 생략하고 제가 여행했던 영국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영국에 대해 공부한 것과 여행하며 적어둔 일기, 메모, 사진 그리고 그곳에서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이를 글로 엮어 글을 부지런히 쓰던 중 빅토리아 시대에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의 《에레혼》을 읽었습니다. 영국 여행기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 제 머리 속에 한 문장이 박혔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다시 거기에 가 있는 기분이다."
에레혼(Erewhon)에 다시 갈 수 없는 주인공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런데 그때 이 문장이 정확하게 제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당장 영국 땅에 있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나라에서 영국에서 기억을 떠올리지만 영국 생각을 때때로 하는 제 마음을 대변한 문장입니다. 글을 쓰며 런던의 골목 어딘가에 서 있는 것 같고, 폴리머스 항구 앞에서 파도를 바라보는 것 같고, Land's End에서 대서양을 보는 것 같고, 캠(Cam)강가 배에 앉은 것 같고, 비바람에 보랏빛 히스꽃이 흩날리던 무어에 서 있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러 기분 좋은 감정과 함께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Nowhere) 에레혼처럼
내가 경험하고 느낀 영국은 이제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이겠구나.'
제가 경험한 영국의 모습은 오직 그때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누군가 살아보고 경험한 영국과 다를지도 모릅니다. 또 여행을 하고 온 분들이 느낀 영국과 다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통과 옛것에 깃든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영국이라면, 제가 보고 느낀 영국과 닮은 구석을 조금은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글을 통해 더 이야기하겠지만, 영국은 옛것이 지닌 가치를 지키는 나라입니다. 팔릴지 의심이 되는 골동품 파는 가게를 대부분의 도시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 웬만한 교회는 몇 백년은 된 듯 싶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전혀 다른 영국앞에 서있어도 익숙한 풍경에서 찾을거란 기분 좋은 확신까지 듭니다. 아마 이 글을 통해 영국을 바라보며, 비슷해보이지만 다른 영국을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영국'을 읽고,
누군가
영국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어 진다면
영국 여행을 계획한 분들의 여행이 더 풍요로워진다면
(다시) 읽고 싶은 영국 문학 작품을 만난다면
내 눈으로 마주하고 싶은 감동적인 예술 작품이 생긴다면
영국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진다면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예상하지 못한 어떤 (좋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영국을 만나러 가보고 싶단 마음이 들어 떠나,
그 다른 영국을 쓴 글에 제 이야기가 묻어난 글을 발견하게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