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란 Aug 08. 2018

허구를 믿게 하는 박물관!?

셜록 홈스 박물관 (Sherlock Holmes Museum)에서



“1미터 80센티미터가 좀 넘는 그의 키는 지나치게 호리호리한 체격 때문에 한결 더 커 보였다. 두 눈은 날카롭게 꿰뚫어 보는 듯했는데, 가끔 앞서 말한 그런 무기력 상태에 있을 때만 몽롱했다. 가는 매부리코는 전체적으로 빈틈이 없고 단호한 인상을 풍겼다. 각이 지고 돌출한 턱 역시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가 연약하고 철학적인 악기를 다루는 젓을 볼 때 곧잘 관찰할 수 있듯이, 언제나 잉크가 묻어 있고 화학약품으로 얼룩진 두 손은 그 손놀림이 참으로 섬세했다.”


_ 아서 코난 도일 Arthur Conan Doyle, 『주홍색 연구』






  영국에 딱 한번 가본 내가 외우는 주소가 하나가 있다. 사실 영국에 가기 전부터 외우고 있던 주소였다. 바로 “221b Baker Street, London베이커가 221번지 B호"다. 홈시언(Holmesian)도 셜로키언(Sherlockian)도 아닌 내가 알만큼, 유명한 베이커가 221b번지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선 줄이 길가를 따라 서있었다. 들어가기 위해 기다린 지 30분째. 하지만, 홈스를 만나려면 최소 10분은 더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데 파란 잉글리시 헤리티지(English Heritage)의 기념판(Blue Plaques)이 눈에 보였다. 





“221b 사립탐정 셜록 홈스, 1881~1904년까지 이곳에 살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내 눈을 의심했다. 잉글리시 헤리티지에서 정식으로 부여하는 기념판은 그 자체로 굉장히 명예로움을 뜻한다. 그곳에 살았던 인물의 자취를 더 생생하게 느껴지게끔 만드는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기에 아무에게나 부여하지도 않고 정말 존경받는 사람만을 엄선하여 그들이 산 곳에만 붙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가상인물에게도 이 기념판을 줄 수 있다? 이상한 일이다. 






Sherlock Holmes Museum, London




  다시 살펴보니, 비슷하게 모방한 금속판이었다. “lived here”이란 단어가 빠져있는 잉글리시 헤리티지 모조품이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나니 엉성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인물 이름보다 주소 ‘221b’가 더 눈에 잘 들어오는 헤리티지 기념판은 영국 어디에도 없다. 공식 헤리티지 기념판은 말이다. 


  진짜 홈스가 이곳에 살았을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헤리티지 기념판을 만들어 붙인 것이다. 그런데 진짜같이 만들지 않고, 왜 주소를 부각했을까. 헤리티지 기념판을 만드는 재단의 항의 때문일까. 단지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모조 금속판에 주소가 크게 쓰여있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마 셜록이 이곳에 살았을 리도 없지만, 주소 자체도 원래 베이커가에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즉 홈스이라는 가상 인물이 진짜 살았다고 믿을만한 장소를 되살리는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주소를 강조한 헤리티지 모조품을 만든 것이다. 

  마치 소설 해리포터의 킹스 크로스역의 9와 4분의 3 승강장, 그리몰드 광장 12번지의 불사조의 기사단 본부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한참 뒤 런던의 도로와 주소 체계 개편으로 베이커 가가 연장되었을 때, 221번지가 없다가 생긴 적이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홈스가 아니라, 지금은 스페인의 산탄데르 은행과 합병한 애비내셔널 은행 Abbey National이 그 주소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19세기 말 소설을 읽고 팬들이 너무 많은 편지를 은행으로 보냈기 때문에 편지에 답장하는 담당 직원을 두었고, 은행 한쪽에 코난 도일 소설에 등장하는 소품을 전시했다고 한다. 


  지금의 홈스 박물관이 생긴 건 1990년의 일이라고 한다. 홈스를 좋아하는 한 가족이 지금 박물관이 있는 베이커가 239번지를 사서, 셜록 홈스 박물관을 연 것이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박물관과 은행과 베이커가 221b 주소를 두고 경쟁을 하게 되었다. 심각했을 때는 소송을 할 만큼 홈스 팬들 사이에서 뿐만 이니라, 런던 내에서도 큰 화제였다. 이때 나를 착각하게 만든 잉글리시 헤리티지 가짜 기념판을 붙인 것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경쟁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고 만다. 2002년 애비내셔널 은행 본부가 베이커 가에서 철수했고, 2005년 산탄데르 은행과 합병으로 사라지면서 두 기관 간의 긴 논쟁은 막을 내린 것이다. 애비내셔널 은행이 계속 있었다면 셜록 홈스의 기념관이 두 개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비싼 돈을 내고 셜록 홈스 박물관을 방문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점이 참 아쉬울 뿐이다.


  원래 221b가 있었던 자리를 포함해 219번지에서 229번지까지 있었던 은행은 아파트로 바뀌었다. 셜록 홈스 박물관의 노력 덕분인지, 웨스트민스터 시 의회에서 221b번지를 박물관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그래서 셜록 홈스 박물관은 정식으로 221b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베이커가 주소를 살펴보면 219, 229, 231, 233번지를 지나 337번지와 341번지 사이에 뜬금없이 221b번지가 들어가 있는 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왕이면 왓슨 박사 것도 기념판으로 만들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셜록만큼이나 왓슨도 꽤 흥미로운 인물이니까 말이다. 물론 알고 있다. 221b 주소를 이마 가진 셜록 홈스 박물관이 굳이 만들 리가 없다는 걸. 



Sherlock Holmes Museum

  경찰복을 입은 박물관지기와 기념촬영을 마치고, 한 10분 정도 기다리다 보면 경찰관이 신호를 준다. 그제야 19세기 말, 셜록이 살았던 허드슨 부인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셜로키언처럼 나는 계단의 수를 셌다.      



“자네는 사물을 보기만 하고 관찰은 하지 않는 군. 본다는 것과 관찰한다는 것은 크게 다른 거야.”   

   


  셜록이 유일하게 ‘The woman’이라고 했던 아이린 애들러가 나와 더 사랑받았던 「보헤미아 왕국의 스캔들」의 명대사를 곱씹으면서 말이다. “You see, but you do not observe.” 문장은 소설로 남았지만, 내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BBC 드라마 <셜록>에서 셜록을 맡은 배우 베네딕트 컴버비치였다. 그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응접실까지 계단 수가 정확하게 17개임을 확인하고 응접실과 방들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Sherlock Holmes Museum

 “우리의 주홍색 연구의 결과가 바로 이거야. 남들이 표창받게 하는 것!”이라며 소파에 기대 신문을 보던 셜록과 “내 일기에 모든 사실을 기록해두었으니,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알릴 거야. 그때까지는 로마의 구두쇠처럼 보화를 꽁꽁 숨겨두고 다만 성공했음을 음미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겠어.”라고 대꾸하는 왓슨의 대화가 이어졌을 것 같은 응접실에 놓인 소파 둘.


  “이 모든 재능을 조화시켜서 이 친구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만 있다면……. 하지만 그런 시도는 당장 때려치우는 게 낫겠어.”하며 왓슨이 작성한 ‘셜록 홈스 - 그의 한계’를 쓴 종이를 재로 만든 벽난로. 왓슨이 좋아하는 멘델스존의 <노래 Lieder>를 비롯해 몇몇 훌륭한 음악적인 곡을 연주할 때도 있지만, 홈스 스스로 내키는 대로 연주할 때면 낭랑하고 구슬픈 혹은 몽롱하고 명랑한 선율을 만들어내며 왓슨을 짜증 나게 만드는 악기였던 바이올린. 


(추리를 해보건대,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반에 제작된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리고 3층에 밀랍 인형으로 재현된 홈스와 왓슨을 비롯한 소설 속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가장 분위기를 깨는 전시물이 바로 이 밀랍인형들이다. 근처에 있는 마담투소 박물관에서 엉성하게 만든 밀랍인형을 가지고 온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엉성한 밀랍인형들은 때때로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특히 다락에서 내려다보는 듯 천장에 달려있는 밀랍인형은 날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밀랍인형을 대신해 볼만한 박물관으로 만드는 건, 그 외에 박물관을 채우고 있는 모든 것들이다. 박물관을 채우고 있는 가구들은 대부분 빅토리아 시대의 가구들이거나 고증하여 만든 것이다. 가구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 다른 19세기 말에 사용한 타자기, 「외로운 사이클리스트」에 나오는 성경책 속에 숨겨둔 권총, 당대 모습을 재현한 화장실, 홈스가 사건의 단서를 잡기 위해서 모은 증거물이 흐트러진 셜록의 실험대는 모두 실제 존재했던 것처럼 재현되어 있다. 의식적으로 허구의 존재를 위한 박물관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믿어버릴 만큼 정말 박물관은 19세기 말 런던에 살았던 홈스의 방 같았다. 이 모든 걸 구현할 수 있었던 건 작가의 섬세한 묘사와 이 묘사를 실제로 구현했던 팬들의 사랑 덕분이었다. 








   셜록 홈스 박물관에 홈스를 실존인물처럼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아이러니하게 전시실에서 찾을 수 없다. 바로 『셜록 홈스』 쓴 작가 코난 도일의 흔적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처음엔 “이제 홈스와 나의 통장을 함께 묻으려고 한다”는 비통에 쌓인 편지를 보내고 셜록 홈스 집필을 중단하기로 마음먹은 작가에 대한 팬들의 서운함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 아서 코난 도일의 이름이 박물관에 등장하는 순간, 실존 인물이라고 믿은 홈스 판타지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만다는 모순을 알고 나니, 그의 흔적이 왜 없는지 알 것 같았다. 그가 등장하는 순간 셜록이 코난 도일의 소설 속 가상의 인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물관은 철저하게 작가의 흔적을 지운 채, 그가 소설 속에 세밀한 묘사를 구현하는데 집중했다.  


(혹시 짧은 관람 시간 동안 제가 놓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내가 아서 코난 도일로 착각했던 존 왓슨의 사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의학을 공부한 아서 코난 도일 Arthur Conan Doyle, 1859~1930은 비엔나에서 안과학을 배운 뒤, 1891년에 런던에서 안과 의사로 개업을 했다. 하지만 ‘단 한 명의 환자도 없었다’ 던 그의 고백처럼, 그가 안과 의사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손님이 없는 병원에서 도일은 심심풀이로 신문과 잡지에 기고할 단편을 쓴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설이 셜록 홈스다. 이 사실은 좀 아이러니하다. 한가한 아서 코난 도일이 심심풀이로 소설을 썼던 것에 비해, 셜록 홈스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 해결할 일이 없는 상태를 끔찍하게도 싫어했다. "일이 아니라 게으름에 지친다"라고 투덜거리는 홈스의 대사를 쓰면서 코난 도일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일이 없어 게으름을 부리는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바쁘고 분주하게 살기를 권하던 빅토리아 시대에 환자가 오지 않는 그의 심정이 투영된 대사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바쁜 작가가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1887년 『주홍색 연구』를 쓰기 2년 전, 그는 무고한데도 불구하고 이웃이 경찰에 밀고로 자신의 형 존 호킨스를 살해한 용의자로 조사를 받는다. 오랜 시간 동안 조사한 결과 그가 아무런 죄가 없음이 밝혀졌지만, 그 과정을 통해 “그는 단서의 중요성, 진실과 모함의 사소한 차이, 정확한 물증 없이 심증만으로 한 인간의 죄가 판단되고 사형이 선고되는 부당한 현실을 깨닫는다.” 그때 도일이 겪은 경험은 "불가능한 것들을 제외하고 남은 것은 뭐든, 아무리 사실 같지 않더라도, 틀림없이 진실이다. (When you have eliminated the impossible, whatever remains, however improbable, must be the truth.)"라는 확고한 철학을 가진 정의로운 사립탐정 홈스를 태어나게 만들었다. 



영국 드라마 <SHERLOCK> 포스터



  이런 우연에 우연이 겹쳐져 만들어진 셜록 홈스는 대중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덕분에 도일은 19세기 말이나 지금이나 셜록 홈스를 쓴 작가로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홈스는 도일의 일생에 최고의 영예를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평생 그를 따라다니는 짐이기도 했다. 셜록홈스를 쓰기 시작한 지 6년 만에 「마지막 사건」에서 홈스를 사망에 이르게 한 뒤에, 작가가 한 고백에 그의 심경이 제대로 드러나 있다.   

  

“나는 셜록 홈스를 과식한 셈이다. 홈스를 생각하면 푸아그라가 떠오르는데, 푸아그라를 너무 많이 먹었더니 그 이름만 들어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도일은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홈스의 인기에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그는 셜록 홈스 박물관을 세우는 것도 우려했을 만큼, 홈스를 열광적으로 사랑하는 대중을 우려했다. 하지만 홈스를 사랑한 팬들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모리아티 교수와 함께 죽은 것으로 홈스가 끝나길 원하지 않았던 팬들은 홈스를 다시 살려낼 것을 도일에게 끊임없이 요구했고, 팬들의 성화에 못 이겨 교묘한 방법으로 홈스를 살려낸 도일은 이후로 30여 년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야기 속 홈스는 드라마로, 영화로 계속해서 대중에게 전달되고 있다.



딸랑- 딸랑-



  마지막 층을 구경하는 시간이 끝났다는 걸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마치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리는 종소리처럼, 셜록 홈스란 환상에서 깰 시간이 되었다고 알려주는 종소리 같았다. 박물관을 찾는 수많은 셜록 팬들을 최대한 수용하기 위해 층별 관람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박물관에 꽤 많은 물건들이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찬찬히 다 살펴볼 틈이 없다는 사실에 난 충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응접실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사람들이 찍을 수 있도록 빠르고 신속하게 진행된다. 눈을 감았다고 다시 줄을 서서 찍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운이 나쁘면 맨 뒤에 입장한 사람은 사진을 찍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려 15파운드나 지불하고 들어왔는데 말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계단을 내려와 박물관을 나왔다. 입장을 위해 기다린 시간은 한 시간 가까이 되었는데 관람 시간이 고작 20분밖에 되지 않는단 씁쓸한 사실을 확인하니, 허탈감이 밀려들어왔다. 아쉬운 마음에 박물관 앞을 기웃거리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만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홈스를 아주 가까이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셜록 홈스 박물관에서만 가능하다. 다만, 코난 도일의 저작권도 소멸된 지 한참 지났고 모든 것이 가짜인 데다가 관람 서비스도 매우 아쉬운데, 입장료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는 점은 매우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금액으로 낮아지면 좋겠지만, 내가 들어가기 전보다 더 길어진 줄을 보니 당분간 그럴 일은 없어 보인다. 





“가장 위대한 셜록 홈스 미스터리는 어쩌면 우리가 홈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홈스란 인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환상에 빠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1929년 셜록 홈스 단편 전집을 읽고 난 뒤에 시인 T.S. 엘리엇이 남긴 리뷰처럼, 확실히 이곳은 셜록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셜록 홈스를 가상의 인물에서 실존 인물로 바꾸는 환상의 박물관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15파운드를 채링 크로스 역 인근의 셜록 홈스 펍에서 사용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펍 1층 레스토랑도 박물관의 응접실과 유사하게 꾸며놓았다고 한다. 




<참고문헌>

큐레이터 송하나의 뮤지엄 스토리, 송한나, 학고재 (2012)

0부터 100까지 런던 101, 최은숙·지니최, 소소북스 (2017)

주홍색 연구, 아서 코난 도일, 현대문학 (2014)

셜록 홈스 단편선, 아서 코난 도일, 지식의 숲 (2013)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가장 솔직하게 만들었던 감정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