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무 글쓰기 Jan 09. 2024

강제적인 명예퇴직

사기 결혼 당하다



2001년 3월 명예퇴직을 했다. IM F이후로 매출은 떨어지고 회사 경영 상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신문광고 부서는 목표보다 50%밖에 달성을 못 했다. 인원을 삭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월급 생활하면서 중간에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일했다. 내가 퇴직을 희망하지 않으면 안 나갈 수도 있었으나, 좋은 인상을 남기고 떠나고 싶었다. 퇴직 위로금 조로 몇 달 치 월급을 받고 사표를 냈다. 퇴직해도 살아 나갈 용기가 있었다. 오히려 신세계로 나간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때까지 세상 물정 모르고 까불었다.


퇴직하니 상황이 급변했다. 광고 사업에 세무상 문제가 생겨 많은 가산세를 물게 되어 광고 사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나만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했었다.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주변에 인맥이 모두 떨어져 나가 광고 사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 여기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됐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는 것처럼 내 뒤를 보이지 않게 돌보아 주던 거대한 조직이 없어진 것을 퇴직하고 나서야 알았다.


퇴직하니 가깝게 지내오던 친지들이 골프를 주선하여 몇 번 치고 나니 연락이 뚝 떨어졌다. 특별히 만날 이유가 없어졌다. 그러던 중 저녁 늦게 동료 A가 전화가 왔다. 평소에 전화도 안 하던 친구였다. 사업 본부장 자리가 있다고 소개했다. 월급은 250만 원 주는 조건이다. 기계 수입하는 회사였다. 하는 일은 윤전기를 파는 일이었다 수주 금액이 커서 계약이 쉽지 않았다. 첫째 달 월급은 150만 원밖에 주지 않았다. 250만 원 준다는 게 150만 원밖에 안 나왔지만, 월급 적다고 불평할 수 없었다.

 

두 달을 참다가 왜 월급이 적게 나오냐고 하니 여기 임원들도 150만 원밖에 못 받는다 하면서 시치미 떼며 일언반구 설명도 없었다. 약속을 밥 먹듯이 어겼다. 마치 사기 결혼 당한 기분이었다. 주변 사람에게 취직했다고 명함도 돌리고 잘 됐다고 인사까지 받은 처지인데 난처했다. 하지만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 30년 동안 월급쟁이 생활을 하면서 두 번밖에 직장 안 옮겼는데 어처구니없이 4개월 만에 그만둬야 할 상황이 벌어졌다. 중소기업에서는 특별한 기술이 있거나 사장과 특별 관계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퇴직하고 첫 번째 시련이었다. 시스템으로 돌아가던 대기업에서 일하던 버릇이 몸에 배어 있었다. 중소기업에서는 내가 주인이 되어 스스로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