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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서생 Jun 06. 2024

“우리는 처음부터 눈이 멀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 관한 짧은 느낌

오래전 영화로 본 <눈먼 자들의 도시>를 원작 소설로 읽었다. 원작 소설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가 제작되었을 경우, 소설의 미묘한 감정표현과 세밀한 배경묘사를 영화가 따라가는 경우가 많. 하지만 더러 영화가 더 나을 때도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의 경우는 어떨까. 가물가물한 기억을 비집고 비교해 볼작시면, 영화가 원작보다 더 나은 것 같다. 좀 장황하고 반복적인 소설보다, 콤팩트하게 군더더기를 뺀 영화가 보기에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뭏든 조만간 영화도 다시 봐야겠다.


어느 도시에서 갑자기 실명이 유행병처럼, 예컨대 코로나처럼 번져서 대다수 시민이 실명하게 된다는 가상의 상황이 이 작품의 모티브다. 실명한 시민들은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가 탈출해서 집으로 돌아오고, 결국 다시 정상을 회복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행태들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문명의 진실을 묻고 있는 소설이라고나 할까. 이런 형식을 '알레고리'라 한다. 알레고리란 이솝우화라고 할 때 그 '우화'라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 몸중요한 부위, 가령 뇌나 손발에 비해 눈을 소홀히 여기기 쉽다. 눈의 소중한 정도는 뇌나 손발 못지않은데, 그 소중함을 인식하는 정도는 그에 훨씬 못 미친다는 얘기다. 인간의 역사에서 시각이 차지하는 역할이 얼마나 지대한가, 그리고 두 눈을 뜨고 뻔히 볼 수 있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간은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맹목적인가, 포르투갈 출신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특유의 알레고리 형식을 통해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 숨은 그림 찾기처럼 실눈을 뜨고 살펴보면 작품 깊숙한 곳에  질문에 대한 답도 준비해 놓았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결국 작가는 이 말을 하기 위해, 황당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독특한 이야기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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