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칠한 서생 Jun 09. 2024

<내 이름은 빨강>을 읽는 4가지 묘미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은 네 가지 점에서 놀라운 소설이다. 첫째는 이동식 시점. 기존의 틀로 굳이 분류하자면 1인칭 주인공 시점이지만, 1인칭인 '나'에 해당하는 존재가 장마다 다르다. 그러니 실제로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해당한다.


둘째는 화자의 확장. 일반적으로는 살아있는 특정 인물이 1인칭 화자로 설정되지만, 이 소설에서는 시체, 색깔(예:빨강), 사물(예:우물), 동물(예:말), 개념(예:죽음)도 1인칭 화자의 역할을 한다. 그러니 일반적인 전지적 작가 시점보다 더 전지적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 소설은 '1'이라는 숫자와 '나는 죽은 몸'이라는 소제목에 이어서 다음 문장이 펼쳐진다.  


"나는 지금 우물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마지막 숨을 쉰 지도 오래되었고 심장은 벌써 멈춰버렸다. 그러나 나를 죽은 그 비열한 살인자 말고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 자는 내가 정말로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숨소리를 들어보고 맥박까지 확인했다. 그러고는 옆구리를 힘껏 걷어차더니 우물로 끌고 와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여기서 '나'는 죽은 몸, 곧 시체다. 시체가 자신의 비참한 현재 상태를 이렇게 담담하고 차분하게 묘사한다는 이 파격적인 발상은 처음부터 독자를 진공청소기처럼 강력하게 흡인하는 효과를 낸다. 카프카의 <변신> 첫대목,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길한 꿈에서 깨어난 뒤, 자신이 한 마리의 끔찍한 벌레로 둔감해 있는 것을 침대 속에서 발견했다."를 접했을 때보다 나에겐 더 충격적이었다.


셋째는 풍부한 사료와 정교한 묘사. 오스만제국의 전성기인 16세기말이 배경이지만, 역사적 사건과 인물의 심리묘사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풍부하고 생생하다. 그래서 몰입감과 피로감이 공존한다. 다시 말해 구성상으로는 극도로 몰입하게 되지만 문장상으로는 정보의 밀도가 높아서 읽어내기가 뻑뻑하다.


넷째는 원근법의 역사적/문화적 의미 제시. 미술사나 영상이론에서 중시되는 원근법의 발견이 동양권에 어떤 충격을 던져주었는지 알려준다. 르네상스기 발견된 원근법은 근대의 시각문화를 창조한 위대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서양의 관점일 뿐. 동양의 미술이 접한 원근법은 무엇이었는지, 서양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동양의 땅 오스만 제국의 세밀화가 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내가 그린 인물 관계도


1,2권 합해서 700쪽에 달하는 분량임을 감안해도 읽기가 더뎌서 제법 오래 붙잡고 있었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이라는 생소한 시공간과 관련된 용어도 턱턱 눈에 걸렸지만, 특히 처음엔 복잡한 인물들과 그 관계를 머릿속에 담아두기도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내 소설 읽기 역사에서 유례가 드물게 인물 관계도를 그려가며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 읽고 나니, 형식과 내용면에서 이만한 소설을 또 만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듯한 만족감이 몰려왔다. 그만큼 <내 이름은 빨강>은 내게 소설 읽기의 묘미를 새롭게 일깨워준 작품이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처음부터 눈이 멀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