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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서생 Jul 15. 2024

그렇게 뻔한 말을 왜 ‘지혜’라고 할까

공감하고 감사하고 현재에 집중하라, 『불멸에 관하여』속 지혜이야기

1. 스티븐 케이브의 <불멸에 관하여>는 내가 최근 주목해 읽고 있는 죽음 주제 책 가운데 압권이다. 원제는 그냥 ‘불멸 immortality’. 일어판 제목은 <불사의 강의(不死の講義)>. 편집자가 부제를 ‘죽음을 이기는 4가지 길’로 달아놓았으나, 공교롭게도 이 책의 주제는 그와는 전혀 다르게, 인류가 추구해 온 4가지 불멸의 방식은 모두 불가능하거나 헛되다는 것이다. 4가지 불멸의 방식이란 육체적 생존/부활/영혼으로 살아남기/유산이다.     


2. 저자는 각각의 역사적 배경과 주요 내용을 촘촘히 소개한 다음, 네 가지 불멸 이야기 모두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고 간단히 매듭짓는다. 또한 불멸 이야기들은 대부분 인간의 이기심 강화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인격의 무한한 생존에 집중하라고 가르침으로써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동정과 같은 실질적인 가치에는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은 채, 우리 자신을 위한 의미에만 집중하라고 재촉한다고 비판한다. “죽음을 부정하고 영웅적 이미지를 성취하려는 충동은 인간의 사악함의 가장 근본적 동인이다”는 어니스트 베커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가 정말로 개인적인 불멸을 성취한다면 인류의 이성과 문명에 거대한 재앙을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3. 다만 그렇게 불멸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거의 모든 문명이 탄생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인간의 문명은 뜻하지 않은 부산물이거나 횡재라는 얘기다. 생명 연장을 향한 도전이 과학과 진보를 탄생시켰고, 내세에 대한 이미지를 재생산하려는 시도가 문화의 상당 부분을 창조했고 자기 자신을 미래로 영속화하려는 생물학적 충동이 인류를 번성하게 만들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고로 나도 분명히 죽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상상조차 할 수 없기에 불멸을 발명했고, 우리는 이러한 발명품을 문명이라 부른다.”(브라이언 애플야드)     


<길가메시 서사시>가 기록된 점토판


4. 저자의 무게중심은 6부 ‘지혜 이야기’에 몰려있다. 죽음은 현실이며 불멸은 환상이라는 깨달음을 통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삶을 긍정하라는 것이 그 요지다. 저자는 자칫 평범해 보이는 이 지혜의 근원을, 인류 최초의 신화 <길가메시 서사시>와 인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경전인 기독교의 <성경>, 그리고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몽테뉴, <히브리 지혜의 서> 등에서 찾는다.

“그러니 길가메시여, 배를 가득 채우고/밤낮으로 항상 즐기세요!/하루하루를 만끽하고 /밤낮으로 춤추며 놀아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세요! /당신의 손을 잡은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고 /언제나 아내를 껴안아 주세요!”(<길가메시 서사시>)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구약> ‘전도서’)

“세상의 모든 지혜와 논의는 결국 한 가지 결론에 이른다. 그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몽테뉴)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든 선악은 감각 속에 존재하며, 죽음은 모든 감각의 끝이기 때문이다.”(에피쿠로스)

“나는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했으며,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아무런 상관없다.”(스토아학파)      


5. 저자는 지혜에 이르는 세 가지 덕목을 제시한다. 무아(또는 공감하기), 현재에 집중하기, 감사하기가 그것이다. 무아 또는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기는 자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버려야 불멸에 대한 환상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끔찍하면서도 하찮은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최고의 비결은 관심사를 점차 넓혀나가고 더욱 비개인화 (impersonal)하는 것이다. 그러면 에고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면서 우리의 삶은 우주적 생명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버트런드 러셀)

현재에 집중한다는 건 미래에 대한 걱정을 없앰으로써 불멸에 대한 환상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일 죽는다고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게 살아라. 동시에 내일 죽지 않는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게 살아라.” 감사하기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앰으로써 불멸에 대한 기대를 회피하는 방식이다. “현자란 가지지 못한 것에 슬퍼하지 않고 가진 것에 기뻐하는 사람이다.”(스토아학파의 에픽테도스)      

알고 보면 모든 지혜는 지혜라는 말이 어색할 만큼 너무나 뻔하고 평범해 보인다.  



6. 저자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삶에 끝이 있다는 생각은 우리의 시간에 한계를 설정하고, 그래서 그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죽음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존재에 긴박감을 주고, 그래서 우리가 자신의 존재에 형태와 의미를 부여하도록 허락한다.”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공통을 겪게 되는, 또는 어떤 다른 방식으로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사건이 아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전부는 오직 삶이며, 그 삶이 한정돼 있다는 깨달음을 통해서 그 소중함을 통감하게 된다.”

저자의 입장은 이렇게 줄일 수 있다. 우리에겐 오직 삶만이 존재하기에 삶은 소중하다는 것, 그 삶에는 끝이 있기에 삶은 더욱 가치 있다는 것. 저자는 이 말을 하기 위해 수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신화와 문학과 철학 속 지혜의 말들을 촘촘히 검토한 것이다. 그 말이 바로 비틀스의 렛잇비(let it be) 즉 “그대로 두어라”, 또는 “순리에 맡겨라”라는 뜻이 담긴 지혜의 말씀(words of wisdom)이 아닐까.


7. 책은 책을 부른다. 좋은 책일수록 더 좋은 책들의 숲으로 이끈다. <불멸에 관하여>가 불러온 책은 <길가메시 서사시>, <바가바드 기타>, <프랑켄슈타인>, <히브리 사자의 서>. 이중 <프랑켄슈타인>은 이미 읽었고 나머지는 온라인 책장에 꽂아두었다. 모두 묵직한 고전들이라 목욕재계한 다음 의관을 정제하고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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