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수정 보완되어 <우리를 배반한 근대>(엄창호 지음, 여문책 펴냄)에 수록되었음.
지난 2019년 8월, KBS 〈TV쇼 진품명품〉에 독립운동가 이규채(1890-1947) 선생이 일제 말기 자필로 적은 ‘이규채 연보’가 올라왔다.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 항일 무장투쟁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이규채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과 한국독립군 참모장 등을 지낸 분이다. 그의 독립운동 여정이 기록돼 있는 연보가 일반 원고지가 아니라 한 상점의 세금 계산서에 작성되었다가 최근 발굴된 것이다. 쇼 감정단의 추정 감정가 소개가 끝나자 조명이 꺼진 가운데 김영복 서예·고서 감정위원이 추정한 감정가를 나타낼 전광판의 숫자가 숨 가쁘게 돌아갔다. 그런데 전광판은 결국 ‘0’이라는 숫자를 찍으며 멈추었다. 쇼 감정단과 사회자, 그리도 아마도 시청자들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잠시 후 김영복 감정위원이 이 감정가에 대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한 사람의 개인적인 기록이지만 자신의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한 기록이라 그 행적을 돈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무가지보無價之寶라는 뜻이었다.
가치의 네 가지 형태
일요일 낮 11시에 방영되는 〈TV쇼 진품명품〉은 일반인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 문화재를 소개하고 전문가의 추정 감정가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의뢰받은 문화재가 소개되고, 주로 연예인으로 이루어진 세 명의 쇼 감정단이 감정가를 예측하고, 그것이 각 분야 감정위원이 매긴 감정가에 얼마나 근접했는지를 확인하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예전에는 의뢰인이 항상 소개되었으나 지금은 가끔 소개된다) 시청자들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 문화재에 대한 지식과 견문을 넓히게 된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전문 감정위원, 쇼 감정단, 의뢰인이 각각 얼마의 감정가를 매겼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다. 앞에서 소개한 장면은 이와 관련해서 내 기억 속에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장면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몇몇 의뢰인은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유품에 값을 매길 수 없다는 이유로 감정가를 쓰지 않거나 ‘0’ 또는 ‘?’라고 쓰기도 했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8‧15 해방을 상징하는 의미라며 추정 감정가를 엉뚱하게 ‘100.815’라고 적은 의뢰인도 있었다. 쇼 감정단이 보기에는 상당한 가치가 예상되는 문화재인데 감정위원이 추정한 감정가가 의외로 낮아서 다들 어리둥절했던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해 해당 감정위원은 의미로만 따지면 감정가를 응당 높게 매겨야 하겠으나 현재 시장의 가치가 그것밖에 안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런 사례 모두 특정한 개인(의뢰인, 전문 감정위원, 쇼 감정단)이 주관적으로 또는 사회적·문화적 맥락을 고려해서 판단하는 가치와 시장에서 거래되는 실제 가치(가격)가 어긋나는 경우를 보여준다. 여기서 특정한 개인이 판단하는 가치, 다른 말로 사물의 개인적·역사적·문화적 의미가 담긴 가치를 ‘상징가치’라고 한다. 그리고 수치로 표현되는 사물의 가격, 달리 표현하면 경제적인 논리가 적용되는 상품의 교환비율을 ‘교환가치’라고 한다. 결국 앞의 사례들은 상징가치와 교환가치의 어긋남을 보여준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따르면, 사물의 가치에는 이 두 가지 말고도 ‘사용가치’와 ‘기호가치’가 더 있다. 사용가치는 사물의 유용성 또는 쓸모를 나타내는 가치이고, 기호가치는 사물을 소유한 사람의 신분이나 위세를 나타내는 가치를 말한다. 1972년 프랑스에서 처음 발간된 『소비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기호학을 가치론과 결합해서 소비사회를 분석한 보드리야르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제 다이아몬드를 사례로 들어 그가 말한 네 가지 가치 개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다이아몬드는 가장 비싼 귀금속으로, 무엇보다 먼저 화려한 결혼예물이나 특별한 의미를 담은 선물을 연상시킨다. 고귀한 존재로 숭앙하거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등 상징적인 의미를 전할 때 동원되는 물건이 바로 다이아몬드다. 이렇게 특별한 의미를 상징함으로써 생겨나는 가치를 ‘상징가치’라고 한다. 한편 다이아몬드는 강도가 매우 높은 금속이므로 다른 금속을 자르거나 부술 때, 즉 금속을 가공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이렇게 사용상의 기능이나 유용성이 부여하는 가치를 ‘사용가치’라고 한다.
다이아몬드는 또한 시장에서 고가의 상품으로 교환되기도(구매되거나 판매되기도) 한다. 등급에 따라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하는데, 가령 블루문이라는 이름의 다이아몬드 12캐럿(2.4그램)의 가격이 약 560억 원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다른 물건과 교환할 때 필요한 가치를 ‘교환가치’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다이아몬드는 재력이나 신분 또는 위세를 과시하는 기능을 한다. 이때 다이아몬드는 금·은·동·옥 따위가 아니기 때문에 의미를 갖게 된다. 이렇듯 차이에서 비롯되는 가치를 ‘기호가치’라고 한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각각의 가치에는 서로 다른 논리가 작동된다. 다시 말해 사용가치에는 유용성의 논리가, 교환가치에는 거래의 논리가, 상징가치에는 증여의 논리가, 기호가치에는 신분의 논리가 작동된다는 것이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관계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쓴 이래로 많은 좌파 성향의 지식인들은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을 분석하는 중요한 도구 중 하나로 가치 개념을 활용했다. 대다수는 생산과 노동의 측면에서 가치론에 접근했지만, 앞에서 소개한 『소비의 정치경제학 비판』과 함께 소비의 측면에서 가치론에 접근한 대표적인 저서가 바로 볼프강 하우크의 『상품 미학 비판』이다.
이 책에서 하우크는 먼저 “상품은 스스로를 (교환) 가치로 실현시키기 이전에 자신의 사용가치를 입증해야 한다”라는 『자본론』을 인용하며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관계를 해명한다. 사용가치는 상품의 유용성으로서 상품의 질적이고 주관적인 측면을 나타내고, 교환가치는 상품의 교환 비율 혹은 교환 가능성으로서 추상화된 성격을 띤다는 점, 그리고 서로 다른 사용가치를 갖는 두 상품이 등가로 교환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상품에 내재된 교환가치의 추상적 동질성에 기인한다는 점을 확인한다. 여기서 추상적 동질성이란 노동시간을 뜻한다.
하우크는 이런 전제 아래 두 개의 상품이 서로 교환되려면 다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밝힌다. 첫 번째 조건은 상품교환에 참여하는 각 상품소유자가 자신에게는 필요치 않은, 질적으로 서로 다른 상품을 소유해야 하며, 이들 각각이 상대방의 상품이 필요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상품을 소유하지 못해 필요를 느끼는 사람’과 ‘필요하지 않은 상품을 소유한(생산한) 사람’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교환되는 두 상품이 서로 동일한 가치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이때 각 상품의 사용가치적 관점은 다른 상품의 교환가치적 관점과 대면하며, 한 측면에서의 목적이 다른 측면에서의 수단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우산을 가진 사람 A와 장화를 가진 사람 B가 각각의 상품을 교환하려면 다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우산을 가진 A는 장화가 필요하지 않아야 하고, 장화를 가진 B는 우산이 필요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교환할 이유가 생긴다. 둘째, 우산과 장화가 서로 동일한 가치를 지녔으며, 그래서 교환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경우에는 반드시 1:1이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2:1이나 3:1 등도 괜찮다. 쉽게 말해 우산 한 자루와 장화 한 켤레가 교환될 수도 있지만, 품질에 따라 우산 두 자루와 장화 한 켤레, 아니면 우산 세 자루와 장화 한 켤레가 교환될 수도 있다. 이 말은 곧, A는 자신이 가진 우산의 교환가치를 이용해서 장화의 사용가치를 얻을 수 있으며, 반대로 B는 자신이 가진 장화의 교환가치를 이용해서 우산의 사용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을 하우크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우산의 사용가치가 장화의 교환가치와 대면하고 우산의 교환가치가 장화의 사용가치와 대면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우크는 이와 같은 상황을 ‘판매자와 구매자의 모순’, 또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모순’이라고 규정한다. 판매자와 구매자는 각각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라는 서로 다른 관점에 서 있기 때문에 모순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판매자의 경우 자기 상품의 사용가치는 자기 상품의 교환가치를 화폐로 전환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에 불과하며, 구매자의 구매 목적은 오로지 상품이 지닌 사용가치라는 뜻이기도 하다.
상품미학과 소비사회
이 과정에서 ‘사용가치의 약속’과 ‘상품 미학’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교환행위는 판매자에게는 교환목적(교환가치의 획득)의 종료지만, 구매자에게는 교환목적(사용가치의 획득)의 시작이다. 이를 두고 하우크는 “판매자에게 사용가치는 구매자에게 사용가치가 기대되는 한도 내에서만 의미를 지닌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교환가치의 관점에서는 판매가 성립되기 전까지만 사용가치를 약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구매자는 사용가치가 아니라 ‘사용가치의 약속’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상품이든 교환되기 위해서는 사용가치뿐만 아니라 ‘사용가치의 약속’이 추가로 생산되어야 한다. 바로 이 ‘사용가치의 약속’을 하우크는 ‘미학적 사용가치’ 또는 ‘상품 미학’이라고 불렀다. 하우크는 “상품 미학은 ‘미학적 추상화’ 과정을 통해 상품과 분리된 감각적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곧 상품 미학은 상품이 원래 지닌 고유의 특성과는 관계없는 감각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뜻이다. 결국 상품에는 고유의 물질적 특성이 있다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에 입각해서 감각적 현상일 뿐인 상품 미학을 비판하는 책이 바로 『상품 미학 비판』이다.
A가 자신이 소유한 우산을 B에게 상품으로 판매(상품과 화폐를 교환)하는 상황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A가 자신이 소유한 우산을 B에게 판매(화폐와 교환)하는 행위는 A에게는 교환목적(화폐의 획득)의 종료지만, B에게는 교환목적(우산의 사용가치 획득)의 시작이다. 다시 말해 A에게는 우산의 실제 사용가치와 관계없이 B가 기대하는 우산의 사용가치를 충족시키는 일이 중요해진다. A에게는 판매가 성립되기 전에 사용가치를 약속하는 것이 중요해진다는 말이다. 우산을 아직 사용하지 않은 B로서는 사용가치가 아니라 ‘사용가치의 약속’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B는 A에게 우산을 살 때, 가령 색상이 고급스러워서 세련된 신사나 귀부인 같은 인상을 준다는 식의 약속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추가로 제시된 사용가치의 약속을 바로 ‘상품미학’이라 부른다.
하우크는 상품미학을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제품디자인, 포장디자인, 광고디자인을 제시했다. 이 책이 나온 1970년대에는 그 정도였겠지만, 그 이후 이미지 시대와 디지털 미디어 혁명을 거치며 컴퓨터그래픽 등 각종 디자인 기술과 정교한 브랜딩 기법이 개발된 점을 고려하면 상품 미학의 외연은 그때보다 훨씬 더 넓어졌다고 봐야 한다.
하우크는 사회적 구매력의 한계에 직면하면서 만들어진 상품 미학이 미적이고 감각적인 현상마저도 교환가치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시장에서의 독과점을 가속화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런 독과점 상황은 사용가치의 양적 축소와 질적 악화를 초래한다는 점을 들어 상품 미학에 현혹된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또한 주기적인 미학적 혁신을 통한 사용가치의 저하를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 ‘사용가치의 상징적 소진’을 통해 아직도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동종 상품의 사용 연한을 단축한다는 점도 상품미학의 폐해로 지적한다.
『상품미학 비판』은 1990년대 우리나라 문화연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하우크에 대한 다양한 연구 성과로도 이어졌다. 하우크의 상품 미학 이론을 주로 소개하는 논문들을 모은 책 『상품미학과 문화이론』도 그중 하나다. 이 책의 권두 논문에서 백한울은 “상품미학 속에서는 인간의 자발적인 욕구와 능력이 진정하게 충족·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가상적으로 만족된다. (중략) 거기에 인간의 진정한 삶의 충족이 있을 리 만무하다”라고 우려하면서 “노동자들은 상품의 화려한 미적 가상에 현혹되어, 진정한 공동체나 현실의 모순을 망각하고, 상품 갈망에 빠져들게 된다”라며 상품미학에 빠져든 당시 한국 사회를 비판한 바 있다.
사회적·문화적으로 결정되는 사용가치
볼프강 하우크를 포함한 많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은 가치론에 입각해서 자본주의를 분석해 왔다. 나는 이러한 논의 속에서 두 가지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는 가치를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양자 구도로 설정한 다음 사용가치를 중시하고 교환가치를 비판하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상품은 그 물성적 특징에서 유래하는 하나의 사용가치만을 가진다는 입장이다. 마르크스주의 문화이론가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맥주는 그저 맥주로 충분한 것이지, 굳이 그 맥주를 마심으로써 우리가 남자답고 마음이 젊으며 다정해 보이게 된다는 점을 추가로 약속해 줄 필요는 없다. 세탁기는 빨래나 하기 편리한 기계일 뿐이지 굳이 그것이 우리가 남들보다 앞서가는 사람이며 이웃의 선망의 대상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지표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학자 김주환 교수는 『디지털 미디어의 이해』에서 이러한 견해를 정면에서 반박한다. 그는 “배고픈 것은 배고픈 것이다. 그러나 잘 익은 고기를 나이프와 포크로 썰어 먹어야 만족되는 배고픔과 손과 손톱, 이빨로 날고기를 우적우적 먹어야 채워지는 배고픔은 서로 다른 종류이다”라는 카를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사용가치는 문화적 맥락에서 결정된다고 단언한다. 개의 유용성은 반려동물, 경찰견, 맹인 길잡이, 집 지키기, 양치기, 식품 원료 등 매우 다양하다는 점을 사례로 들면서 하나의 사물에서 다양한 유용성, 다시 말해 사용가치를 발견할 수 있음을 설득시킨다. 따라서 사용가치가 상품의 물질적 속성에 따라서만 결정된다거나 하나의 상품에 하나의 진정한 사용가치만 존재한다는 것은 객관주의자의 관념이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오래전에 이미 사용가치가 사회적으로 결정됨을 강조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장 보드리야르다. 앞에서 기호의 네 가지 형태를 소개할 때 등장한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그는 먹기, 마시기, 잠자기, 섹스, 주거 따위가 일차적 욕구이고 사회문화적 욕구가 이차적 욕구라고 전제한 다음, 일차적 욕구에서 이차적 욕구로 이행했음에도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분석하면서, “교환가치가 생산물에 대해 실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관계를 표현하는 형식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용가치는 더 이상 물건들의 선천적인 기능이 아니라 사회적 결정이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사용가치는 요컨대 교환가치에 대한 알리바이(alibi, 구실 혹은 핑계)다”라고 하면서 사용가치는 교환가치와 동일한 속성의 가치임을 지적한 바 있다.
사용가치는 무조건 좋은 가치가 아니다
김주환 교수는 사용가치가 ‘문화적으로’ 결정된다고 했고, 장 보드리야르는 사용가치가 ‘사회적으로’ 결정된다고 했지만, 사회적 결정이든 문화적 결정이든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외부의 맥락에서 결정된다는 점에서는 같다. 다만 김 교수가 소비사회를 중립적 또는 긍정적으로 보았다면, 보드리야르는 소비사회를 부정적으로 보았다는 차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용가치가 문화적으로 결정된다는 김 교수의 입장은, 상품이 곧 기호라는 전제에서 디지털 혁명이 커뮤니케이션 노동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임을 논증하는 과정에서 나온 견해였다. 김 교수는 문화적으로 다양하게 결정될 수 있는 사용가치를 위해 광고·마케팅 활동이 활성화되는 소비사회는 디지털 혁명의 필연적인 결과로 이해했다. 반면 보드리야르는 교환가치가 사용가치까지 거느리며 모든 사물을 상품화하는 소비사회를 비판했다. 그리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들이 판치는 현상을 ‘시뮬라시옹’이라 명명하고 이를 포스트모던 사회의 특징이라 규정하면서 자본주의의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했다.
자동차 액세서리의 경우를 살펴보자. 블랙박스, 선팅, 내비게이션은 이제 액세서리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자동차의 필수 장착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자동차 액세서리’를 검색해 보면 이 밖에도 컵홀더, 선커버, 사이드홀더, 뷰와이드미러, 태블릿 거치대, 차량용 방향제, 주차번호판, 컵홀더, 벨트조절커버 등 다양한 상품이 숨 가쁘게 나열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용가치를 지닌 상품들이다. 스마트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거의 해마다 새로운 버전으로 크고 작은 기능이 향상된, 다시 말해 새로운 사용가치가 추가된 신제품이 출시된다.
사용가치는 상품 고유의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으로 결정되며, 교환가치를 위한 알리바이라고 생각한다면 응당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져야 한다. 각종 자동차 액세서리든 스마트폰 신제품이든 과연 이들에 특별한 유용성, 즉 사용가치가 있다고 해서 그 상품을 소비하는 일이 무조건 정당화될 수 있을까? 각각의 유용성(=사용가치)은 자본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부여한 핑곗거리, 심한 말로 미끼가 아닐까?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든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다음에는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유용성이라는 구실이 붙은 사용가치는 당연한 욕구가 되고, 그 욕구는 점점 더 증폭되어 다시 새로운 상품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며, 이 과정은 끊임없이 되풀이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