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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서생 Aug 17. 2024

한국 뉴라이트의 기원

안병직과의 인연을 떠올리며

요즘 이슈의 중심에 있는 ‘뉴라이트’의 창시자가 바로 서울대 경제학과의 경제사 전공 교수였던  안병직이다. 한국에서 뉴라이트는 90년대 후반부터 안병직이 기반을 세우고 이영훈 등 제자들을 통해 퍼진 이론에 동조하는 세력을 말한다. 이론의 핵심에 ‘식민지근대화론’이 있다. 식민지근대화론을 내 식으로 설명하자면, 식민지 조선은 일본을 통해 잘 살게 되었으니 그 후손들은 일본에 감사하라는 주장이다. 이 세력은 학계를 넘어 정계/재계/문화계에서도 계속 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듯하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놀랄 일이지만, 80년대 초 안병직은 뜻있는 대학생들의 우상이었다. 나는 당시 경제학과 학생으로 안병직의 전공인 경제사에 깊이 빠져있었던 차에, 마침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그의 한국 근대경제사 강의를 개설했고 나는 반갑게 수강신청을 했다. 그런데 그리 크지 않은 강의실을 수강생과 청강생으로 가득 채운 그의 강의가 나의 기대에 많이 어긋났다. 구체적인 이유를 기억하긴 어려우나, 내가 알고 있고 기대하는 한국 근대경제사의 방향이나 관점과 많이 달랐던 탓으로 짐작된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 맹아론이나 자생적 근대화론이 아니라 타율적 발전론에 입각한 내용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는 아마도 식민지근대화론의 서곡이었으리라. 나는 그 학기 내내 인식상의 혼란을 겪었다.


나는 당시 근대이론경제학이라 불렸던 주류경제학에 완전히 흥미를 잃고 경제사와 경제사상사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경제학과 학생의 정체성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 강의를 끝으로 경제사에서도 관심을 접고 말았다. "저게 무슨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내가 나서서 바로잡아 보겠어." 이런 패기는 없었던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게도 우상이었고 경제사 영역의 지존이라고 인정받는 학자의 시각을 감히 넘어설 엄두를 낼 만한 지적 기반이 심히 부족했던 탓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비전공 원로교수가 영혼 없이 가르치던 경제사상사(당시 강의명은 경제학설사)에 대한 관심까지 접으면서 경제학이라는 학문과 나의 실제적 인연은 완전히 끝나버렸다.



안병직이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기 시작한 시점을 대개는 80년대 후반으로 보는 듯하다. 그 요상한 궤변은 논문이나 저서를 통해서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배출되었을 테지만, 그의 삐뚤어진 머릿속에서 구상되어 강의실에서 시운전을 한 시점은 내가 문제의 강의를 들은 80년대 초가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게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물론 그런 의심에 대한 근거는 현재로선 나의 아련한 기억뿐이다. 그것도 이번 독립기념관장 임명사태로 인해 문득 (그리고 ‘얼핏’에다가 ‘잠깐’) 소환된 내 40년 전의 흐물흐물하고 너더너덜하고 가물가물한 편린에 불과하긴 하다.


일본 우익이나 토왜(土倭)들의 역사왜곡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말이 있다. 1944년 조선의 마지막 총독으로 일본의 전 수상 아베 신조의 증조부로 잘못 알려지기도 한 아베 노부유키의 기분 나쁜 저주가 바로 그것이다. 그 자는 패망 후 우리 땅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조선은 문명을 회복하지 못하고 서로 이간질하며 싸우는 노예적 삶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나 아베는 반드시 돌아온다.”


그가 실제로 이렇게 말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이유가 어떻든 우리가 ‘서로 이간질하며 싸우는 노예적 삶’을 살고 있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가 그때 심어놓은 식민교육 때문이든, 아니면 그 후 사사카와 재단(현 일본재단) 등 일본 우익 자금의 유입 때문이든 우리는 80년 전에 끝냈어야 할 역사 논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40년 전 강의실에서 느꼈던, 누군가가 역사를 비틀고 있으나 나는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질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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