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첩첩 산골 오지에도 있었고 외딴 섬마을에도 있었다. 가수 조영남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번안가요 <내 고향 충청도>에는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동네서 제일 큰 집이었죠”라는 가사가 나온다. 한국전쟁 중에 그의 가족은 초가집만이 드문드문 있던 두메산골에 정착했는데 거기에도 학교가 있었다는 얘기다. 1967년 이미자가 불렀고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섬마을 선생>은 서울에서 내려온 총각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시골 처녀의 순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남해안 어느 낙도의 분교다. 이 섬마을에서도 학교는 가장 큰 건물이었을 것이다.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있던 혼란과 빈곤의 시대에도 우리에겐 도처에 학교가 있었다. 물론 학생도 있었고 교사도 있었다. 그리고 고도성장의 기반이었다는 높은 교육열도 있었다.
오영일, 문희 주연의 영화 <섬마을 선생> 포스터
2.
내가 아는 한 선배는 캄보디아를 지원하는 봉사단체를 이끌어간다. 그 단체의 주된 사업은 캄보디아 오지에 학교를 지어주고 그 학교에서 일할 교사의 봉급을 지원하는 일이다. 학생은 있는데 학교를 짓지 못하고, 학교가 있어도 교사를 보내지 못할 만큼 그 나라의 재정이 열악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번 비교해 보자. 1960년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158달러이고 2022년 캄보디아의 1인당 GDP는 약 2,700달러다. 지난 60여 년간 화폐가치의 하락을 고려하더라도 1960년 전후의 대한민국이 현재의 캄보디아보다 분명 더 가난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교육 인프라는 튼튼했고 캄보디아의 교육 인프라는 턱없이 빈약하다. 이는 우리의 높은 교육열을 말해주는 유력한 증거이기도 하다. 도처에 있던 학교가 높은 교육열로 이어졌는지, 높은 교육열이 도처에 학교를 짓게 했는지는 물론 더 따져봐야 하겠지만.
3.
높은 교육열은 학벌주의를 낳았다. 학벌주의란 개인의 능력과 관계없이 출신학교의 서열을 중요시하는 사회현상을 말한다. 학벌주의 사다리의 꼭대기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줄여서 부르는 ‘서울법대’가 있다. 대학입시를 치러본 한국인이라면, 특히 문과의 경우 대학 학과별 배치표 맨 위에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서울법대가 떡 하고 자리 잡고 있었음을 쉽게 기억할 것이다. 공부를 잘해서 서울법대가 실제 목표였던 사람은 물론이고 서울법대가 그림의 떡일 뿐인 사람에 이르기까지, 서울법대는 만인의 우상이고 로망이었음이 틀림없다. 서울법대는 2009년 서울대에 로스쿨이 생기면서 자율전공학부에 정원을 내주고 사라졌지만, 그 동문들은 법조계는 물론 정계와 재계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현재 국가의전서열 1위인 대통령과 공동 3위인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권한대행) 그리고 7위인 여당 대표가 서울 법대 출신이다.
4.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잡대 출신의 듣보잡’에 불과했던 한 정치 브로커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그가 관계를 맺은 유명 정치인은 여럿이지만 특별히 두 사람이 내 눈길을 끈다. 한 사람은 그에게 ‘세비 반띵’을 당하거나 주인 앞의 머슴처럼 일방적으로 야단을 맞는 녹취의 주인공인 5선의 여성 정치인이며, 다른 한 사람은 그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하고 그의 권유로 영부인을 찾아가 충성맹세를 한 끝에 공천을 받았다고 알려진 현직 도지사다. 그 두 사람의 공통점은 ‘서울법대-사법고시 패스-국회의원’이라는 초엘리트 코스를 밟았다는 점이다. 이들 ‘대한민국 1퍼센트’의 주인공이 ‘지잡대 출신의 듣보잡’에게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린 그 사건이 내겐 너무나 흥미로웠다. 문자를 쓰자면 매우 ‘문제적’이고 ‘징후적’이다. 서울법대라는,고귀하다고 믿었던 문화자본이 실은 깡통계좌나 마이너스 통장 속허상이었던 것이다.
5.
그림에는 1950년대 어느 초등학교의 입학식 날, 처음 학생이 되는 두 아이가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의 손을 잡고 서 있는 모습이 나타나있다. 여성이 그녀가 손을 잡고 있는 아이의 어머니임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 아이 옆에 있는 다른 아이와는 어떤 관계인지 알 수는 없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아이를 성공시키고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와 결연한 자세 같은 게 보이고, 아이들의 표정에는 막연한 기대와 낯설음이 뒤섞여있다. 약간의 비약의 감수하고 추측하건대, 그녀가 생각하는 성공의 사다리 맨 위에는 필시 ‘서울법대-고시패스’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다리 위로 올라가면 ‘판검사나 국회의원-위세와 권력-부와 명예’라는 화려한 영광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상상했을 것이다.
6.
공부 잘해서 서울법대 가고, 서울법대 가서 고시 패스하고, 고시패스해서 판검사나 국회의원 되고, 그래서 돈과 명예를 거머쥐고 떵떵거리며 사는 게 가장 큰 성공이라고 배운 사람들이 많다. 꼭 그렇게 되지 못했다면 그 비슷하게라도 되는 것이, 그마저도 안 되면 혈연·지연·학연을 동원해 그런 지인을 알고 지내는 것이 작은 성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을 무작정 추종하거나 동조하는 것이 실패하지 않는 삶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지난 수십 년 간 우리 사회는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이나 그 동조세력이 주도해 왔다고 해도 크게 지나치지 않다. 그 결과 특히 정치판에서 지금 같은 저급하고 한심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한국판 능력주의(meritocracy)의 폐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7.
선진국이 되었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문화강국이 되었다고 우쭐해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지금 실패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나의 조심스러운 진단을 전해주고 싶다. 내명부에서 외척들 간에 궁중 암투가 벌어지고 안동 김 씨나 여흥 민 씨가 나라를 쥐고 흔들던 조선시대나 부정부패가 만연하던 자유당 때와 비교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교묘해졌기 때문이다. 그 실패의 뿌리에는 서울법대와 서울법대로 상징되는 왜곡된 능력주의가 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지금의 ‘실패한 사회’를 만든 셈이다. ‘성공’이 ‘실패’를 낳았으니,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가 되고 말았다. 오호통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