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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서생 Dec 19. 2021

나의 헌책 처분기

1.

'지식의 보물창고' 책이 처치 곤란한 폐기물로 전락할 때가 있다.  유입량의 증가로 서가가 비좁아지는 등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을 때다. 그땐 어쩔 수 없이 소장가치가 떨어지는 순서로 책의 일부를 처분해야 한다. 처분된 책들은 제 팔자에 따라 다양한 운명을 맞게 된다. 헌책방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지만 폐휴지가 되어 소각장으로 끌려갈 수도 있다. 어느 애서가의 손에서 애지중지 사랑받기도 하지만 사지가 갈갈이 찢겨 구천을 떠돌 수도 있다.


애초의 원인은 나의 오랜 책탐(冊貪)에 있었다. 나의 책탐이란, 책은 반드시 사서 읽어야 한다는 이상한 고집과 좋은 책이라면 당장 읽지 않아도 일단 사놓아야 한다는 근거 없는 욕심이 합쳐진 것이다. 그래서 아내에게서 자주 핀잔을 들었다. 아내는 나와 달리 책 한 권을 사도 신중히 따져가며 사고, 그렇게 산 다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는 스타일이다. 아무튼 나는 그 문제의 책탐 탓에 사들인 책을 주기적으로 처분해야 했다. 늘어나는 책으로 서가가 수시로 비좁아졌으니 처분의 요건은 주기적으로 생겨났다. 지난 이삼십 년을 돌이켜보면 2~3 년에 한 번씩, 한 번에 대개 50권 이상 처분해왔던 것 같다.


2.

이삼 년 전부터 나의 책 처분 행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내 책탐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이다. 즉, 언제부터인가 나의 책탐이라는 것이 책을 소유하는 순간 책의 내용까지 소유할 수 있다는, 주술(呪術)이나 물신숭배(fetishism)의 일종임을 깨닫게 되었다. 늦게 그 미몽에서 깨어났으니, 그동안 내 미개한 신앙의 제물이 되어온 책들에게 용서를 구할 따름이다.


둘째는 우연히 시작한 공공도서관 이용의 맛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내 작업실이 있는 서울 은평구의 경우 공공도서관은 간이 도서관까지 합하면 스무 군데가 넘을 만큼 곳곳에 있으며, ‘상호대차 서비스’나 ‘책 단비 서비스’ 같은 편리한 서비스로 대출과 반납이 매우 쉽고 편리하다. 은평구 도서관 전체를 통틀으면 내가 보고 싶은 책의 거의 대부분이 소장되어 있는 데다가, 보려는 책이 없을 땐 희망 도서를 신청하면 직접 구입해주기도 한다. 그전까지는 우리나라 공공서비스가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처졌다고만 생각해왔는데, 은평구의 공공도서관 시스템을 안 다음부터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셋째는 삼 년 전 넓은 집으로 이사한 덕에 책 보관 공간이 넉넉히 확보되었다는 점이다.


이 세 가지 이유로 앞으로 책 처분 행사의 주기가 길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맞다, 공공도서관의 본격적인 이용에는 가벼워진 내 주머니 사정이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토해야 하겠다. 


국내 최대의 중고도서점, 서울책보고


3.

그런데 바로 엊그제 80권 정도의 책을 처분할 일이 생겼다. 비좁은 작업실의 서가를 단출하게 정리하면서 처분 요인이 발생한 것이다. 나는 우선 책 처분을 위한 네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째는 문화적 의미의 보존. 단순한 폐휴지가 아니라 문화콘텐츠라는 본연의 임무를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것. 둘째는 공익성. 그 책들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제공되어 공동체의 지식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것. 셋째는 편의성. 처분하는 과정이 편리해야 한다는 것. 넷째는 환금성. 될 수 있으면 돈이나 다른 책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여기서 첫째, 둘째, 셋째는 필수사항이고 넷째는 선택사항이다. 이 기준 하에서, 그리고 발행한 지 3년 미만의 책만 받는 공공도서관 기증을 배제한 상태에서, 내게 떠오른 처분 방법은 네 가지였다.       


첫 번째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파는 방법이었다. 이전에 두 번인가 사용했던 방법이었는데, 실은 그리 내키지 않았다. 알라딘 측의 구입 기준이 워낙 까다로운 탓에 가져간 책의 반도 구매되지 못한 기억이 있어서였다. 그나마 받은 돈도 운반비용(기름값+주차비+운반 인건비?)이나 건졌을까 싶을 만큼 헐값이었다. 내키지 않았던 더 큰 이유는, 팔지 못한 책을 되가져올 때 기분이 몹시 더러웠다는 점이다. 입양하려던 자기 아이가 입양을 거부당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의 당혹감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 방법은 내 선에서 초장에 탈락되었다.    


두 번째로 고려한 처분방법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는 것이었다. 이 또한 이전에 두어 번 사용했던 방법으로, 그때 '아름다운 가게'는 알라딘 중고서점과는 달리 모든 책들을 받아주었고 기부의 만족감도 느끼게 해 주었으며 기부금 영수증까지 발급해주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운영방식이 달라졌을지도 몰라서 가까운 은평구 소재 ‘아름다운 가게’ 지점에 전화를 걸어 접수 조건을 문의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이라는 곳의 접수기준이 영리 기업인 알라딘보다 더 까다로웠다. “저희는 책이 조금이라도 훼손되었거나 책에 티끌 하나있어도 안 받아요. 저희 매장에서 판매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이런 안내를 받고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듣고 보니 헌책이 아니라 새 책을 원하는 거였다. “기부를 받는 쪽의 콧대가 그렇게 높아도 되나요? 그게 새 책이지 헌책인가요? 앞으로 아름다운 가게와 거래할 일은 없겠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으며, 귀족노조라는 말을 유비해서 귀족 사회적 기업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귀족노조가 노조활동의 근본적인 이유를 잊어버렸듯 아름다운 가게는 헌책을 기부받는지를 잊어버린 듯했다. 그러한 변화가 설립자인 고 박원순 시장의 부재와 어떤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폐기물 수거업체에 맡기는 방법이다. 이런 업체는 헌책의 경우 구매 가능 도서와 수거 가능 도서를 구분한 다음, 구매 가능한 책에 대해서는 비용 지불 후 수거하며 수거 가능한 도서에 대해서는 비용은 지불하지 않고 수거해가기만 한다. 물론 구매와 수거가 모두 불가능한 책에 대한 거래는 아예 발생하지 않는다. 나는 검색을 통해 한 수거업체에 문의했고 처분할 책들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서 보냈더니 구매는 물론 수거도 불가능하다는 의미의 답신을 받았다. 실제로는 물론 사진상으로도 내용이나 보관상태가 양호한 내 책들을 수거하지도 못한다면, 그 업체에서는 도대체 어떤 책을 구매하거나 수거하는지 궁금해졌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방법이 남았다. 이 역시 이전에 몇 번 사용한 방법으로, 내가 사는 아파트의 관리인에게 넘겨주는 방법이다. 그 관리인은 관리소 옆에 헌책과 헌 옷 버리는 함을 따로 두고 관리해왔다. 이들을 수거해서 푼돈을 챙기는 통로를 아는 듯했다. 묶은 책 네 덩어리를 카트에 담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수거함에 넣으려는데, 그때 마침 관리인이 나와 있었다. 나는 이전처럼 “아저씨, 이 책들 내놓을 게요.” 하고 말했다. 이전에는 그렇게 말하면 반갑게 맞아주었던 관리인이 이번에는 마뜩하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카트를 받았다. 귀찮다는 건지 이제는 도움이 안 된다는 건지 알 수는 없으나, 헌책의 가치가 떨어졌음을 감지하기에는 충분했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4.

앞에서 헌책을 처분하는 네 가지 조건으로 문화적 의미의 보존/공익성/편의성/환금성을 들었다. 안타깝게도 이 가운데 확실하게 지켜진 것은 편의성 하나뿐인 셈이다. 어쩌면 다음 처분 시점이 오면 조차 기대하기 어렵게 될지 모른다.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 버리고, 신성한 모든 것은 저속한 것이 된다. 약 150년 전 칼 마르크스가 한 이 말의 의미를 여러 가지로 곱씹어 본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처분 방식을 못 찾아 전전하던 내 80여 권 책들은 우여곡절 끝에 내 품을 무사히 빠져나갔다. 잘 가거라, 한때 나의 열정을 받아주던 벗들이여. 좋은 임자를 만나 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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