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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서생 Feb 17. 2022

빠삐용의 죄, 문재인의 죄

검찰개혁 실패의 대가

영화 '빠삐용'의 장면. 살인죄 누명을 쓴 빠삐용이 독방에 갇혀 지내던 어느 날 악몽을 꾸게 된다. 빠삐용은 꿈에서 사막 한가운데로 걸어 나간다. 배심원들과 재판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빠삐용은 말한다. 자신은 무죄라고, 자신은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고. 재판관은 말한다. “그래 그건 맞다. 그런너는 살인죄로 기소된 게 아니다. 네가 저지른 죄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흉악한 범죄다. 너는 네 인생을 비한 죄로 기소됐다.” 빠삐용은 힘없이 자신이 유죄임을 받아들인다.     

윤석열과 야당으로부터 국정파탄의 ‘누명’을 쓰고 있는 문프가 이와 비슷한 꿈을 꾼다면 어떻게 될까? 문프는 꿈에서 사막 한가운데로 걸어 나간다. 배심원들과 재판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문프는 말한다. 자신은 무죄라고, 자신은 나라를 선진국에 올려놓았다고. 그래서 퇴임 직전 지지도가 50%에 육박한다고. 국정을 파탄냈으면 그렇게 되었겠냐고. 재판관은 말한다. “그래 그건 맞다. 그런데 너는 국정파탄 죄로 기소된 게 아니다. 네가 저지른 죄는 권력자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흉악한 범죄다. 너는 너에게 부여된 권한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죄로 기소됐다.” 따지고 보면 검찰개혁에 실패한 것도 대통령과 국회의석 다수당이 가진 권한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러니 그 말을 듣고 문프도 순순히 자신이 유죄임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유가 무엇이든, 어떤 변명을 늘어놓든 민주당 정부는 검찰개혁에 결국 실패했다. 문제는 실패로 끝난 그 섣부른 검찰개혁 과정에서 거뜬히 살아남은 윤석열과 검찰권력, 그리고 이를 추종하는 언론권력이 직접 정치권력까지 잡겠다고 나섰다는 것. 그들이 대한민국이 쌓아올린 소중한 가치들을 순식간에 허물어뜨리려 하고 있는데도, 많은 시민들은 꼼짝없이 앉아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생겼다.


나는 그들의 행태에 분노하다가도 여권의 무기력에 더 자주 좌절한다. 윤석열이 그럴 줄 몰랐다고 변명하지 말라. 말이 너무 심하니 사과하라고 요구하지도 말라. 그 변명과 사과 요구를 듣고 공감하기보다 연민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다는 점을 알아두기 바란다. "니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는 '착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억울하게 당한 다음 울먹이며 외치는 슬픈 넋두리다. 착하면서 현명하기를 기대했지만 그렇게 기대한 촛불시민도 결국 어리석었다. 


윤석열은 검찰개혁의 실패가 낳은 괴물이다. 그 괴물 탄생의 가장 큰 책임을 민주당 정부에 물어야 하는 건 분명하다.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궜다고 그 책임을 구더기에게 물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분탕질을 두고 볼 수는 없다. 책임을 묻는 일보다 분탕질을 막는 일이 더 시급하다.


윤석열은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을 없애고 검찰에 독자적인 예산편성권을 주겠다는 사법개혁안을 발표했다. 이는 검찰에 봉건적 특권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검찰공화국의 선언, 시대착오적 발상, 역사의 퇴행...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으니 어휘력의 부족을 한없이 자책하고 싶다. 윤석열의 말을 빌어 “어이가 없습니다. 정말 같잖습니다.”라고 해야 하나?      



시민계급(부르주아지)이 근대사회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법을 통해 봉건적 기득권 세력의 특권을 없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특권을 없애야 할 법이 특권을 지키기 위해 이용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무리, 악법을 제정·유지하거나 개혁 법안을 저지하는 무리, 법의 해석을 독점해서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무리들이 손을 잡고 카르텔을 만들어 새로운 특권세력이 되려 하고 있다. 아니, 상당부분 이미 특권세력이 되어버렸다.


특권은 엄청난 지대 수익을 통해 막대한 경제자본은 물론 강력한 문화자본과 사회자본까지 낳는다. 그렇게 특권으로 만들어진 자본은 대물림되면서 대를 이어 특권세력을 탄생시킨다. 250년 전 특권세력을 없앴던 법이 새로운 특권세력을 낳게 된 이 엄청난 반전! 움베르토 에코의 의문대로 지금은 과연 포스트모던(탈근대)인가, 새로운 중세인가?      


윤석열이 집권하면 법 기술자들은 굳건한 카르텔을 형성해서 더욱 미쳐 날뛸 것이다. 그 세상은 문명(=법치)으로 위장된 야만사회일 뿐이다. 이 새로운 야만사회에서는 돌도끼나 돌칼 대신 법봉이나 법전을 들고 짐승 가죽 대신 법복을 입은 신종 야만인들이, 노루나 사슴고기 대신 전관예우나 개발이익 따위의 기름진 음식을 배터지게 먹게 될 것이다.        


1978년 구 소련 출신의 노벨상 수상 작가 솔제니친은 하버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현대 자유주의가 '법치주의적' 삶에 의존한다고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옳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받지 않고, 아무도 그가 완전히 옳지는 않다고 말하지 않으며, 이런 권리를 자제하거나 포기하라고 촉구하지도 않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희생과 이타적인 삶을 살라고 요청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말은 그저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자발적인 자제는 지극히 드문 일입니다. 누구나 법의 틀을 극한까지 확장하고자 합니다.“     


문재인과 민주당을 미워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올린 소중한 가치들을 버릴 수는 없다. 다행히 아직 우리에게 시간은 있다. 하지만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윤석열이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민주당 정부의 과오는 이재명의 선을 통해 그 괴물의 발호를 막음으로써만이 바로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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