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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서생 Mar 10. 2022

자유주의, 국가주의와 손잡다

"자유주의는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이 글은 수정 보완되어 <우리를 배반한 근대>(엄창호 지음, 2023년 6월 여문책 발행)에 수록되었습니다.


1.

2022년의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정치 경험이 일천한 한 국가주의자가 48%의 득표율로 대통령으로 뽑혔다. 하지만 48%의 한국인만 그를 선택했다고 말하는 건 역사의 문법이 아니다. 37%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1987년의 한국인은 노태우를 선택했다'라고, 32%의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1933년의 독일인은 히틀러를 선택했다'라고 역사는 기록하는 법이다. 따라서, 2022년의 한국인은 대통령으로 그를 선택했다, 라고 말해야 옳겠다.


그런데 취임 초부터 그의 지지율은 바닥을 기고 있다. 국민들은 그를 지지하지 않는 주된 이유로 '자질 부족'을 꼽았다. 대통령 경선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확인된 사실들만으로도 그의 자질 부족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도대체 왜 2022년의 한국인은 그를 5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뽑았고 그 일당을 집권당으로 선택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주는 책이 있다. 바로 미국의 정치학자 패트릭 드닌의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Why Liberalism Failed)>이다.      



 근대 이후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자유주의가  결국 실패했는지를 밝히는 게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신봉하는 자유주의를 두고 '실패했다(failed)' 단정하는 제목부터가 매우 도발적이다.


18세기 말부터 형성된  근대의 자유주의는 개인의 욕망을 제한하는 사회규범을 해체하고 기성의 권위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며 자연에 대한 지배를 확대하고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할 수 있게 해 준, 부르주아 계급의 이념이었다. 바꿔 말하면, 자유주의는 전근대적 속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면서 자본주의와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된 사상이었다. 하지만 결국 자유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새로운 귀족정과 관료제, 경제적으로는 심각한 불평등, 사회적으로는 능력주의, 생태적으로는 환경파괴를 낳는 등 전 분야에서 위기를 초래했다고 이 책은 진단한다. 인간을 구속에서 해방시켜 유례없는 풍요를 가져왔지만, 그 대가로 위에서 말한 위기들에 인간을 속박시켜 결국에는 실패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패트릭 드닌은 이를 한 마디로 “자유주의는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라는 역설로 표현한다.      


이 책은 자유주의의 역사적 진행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와 시장의 동맹에 주목한다. 개인은 시장을 통해 자유를 증대시킬 수 있었지만, 모든 개인이 자신의 자유를 무한대로 증대시킬 수 없다는 한계 앞에서 그 자유의 한도를 정하는 권위가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는데, 그 역할을 국가가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국가만이 자유를 제한하는 유일한 주체가 될 수 있었으므로, “자유주의는 결국 ‘해방된 개인’과 ‘통제하는 국가’라는 존재론적 요소에 도달했다.”라고 이 책은 파악한다. 이것이 바로 국가와 시장의 동맹이다. 즉 자유주의(혹은 개인주의)의 확대는 반드시 국가주의의 확대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를 두고 ‘개인이 속박에서 풀려날수록 결국 국가가 강화되어 개인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국가란 강력한 법치의 다른 이름이라고 보아도 좋다.


패트릭 드닌은 실패한 자유주의에서 벗어나는 세 가지 방법으로, 공동체적인 문화의 유지, 자치의 강화, 자유 학예(liberal arts; '인문학'으로도 번역됨)의 강화를 꼽으며 이 책을 마무리하지만 비판의 풍부에 비해 대안 제시는  소략한 편이다.      



2.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은 국가주의자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이는 곧 자유의 확대를 위해 국가(혹은 강력한 법치)의 강화를 선택한 것이다. 여기서 자유의 확대란 곧 개인의 이익과 욕망의 확대를 말한다. 따라서 그들이 국가주의자를 자신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적임자로 고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그들의 선택과정에서 후보의 개인적 역량과 자질은 아무런 고려사항이 되지 못했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연설할 때마다 자유를 수십 번씩 외치는 이유는, 자신이 국가주의자임을 숨기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지키기 위한 선거 전술로 보인다.


그렇게 그들은 국가주의와 손잡고 자유주의의 성공을 도모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설명에 따르면 그럴수록 실패의 악순환에 빠져들게 된다. 문제는 자유주의의 실패가 그들 각 개인의 이익과 욕망이 제한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 자유주의의 실패로 인해 정치적으로는 귀족정과 관료제의 강화, 경제적으로는 불평등의 확대, 사회적으로는 능력주의의 만연, 생태적으로는 환경파괴의 가속화 등 전 분야의 위기가 더 심각해질 것이다. 함께 지켜야 할 공동선의 가치들이 갈수록 위험해질 거라는 얘기다.       


자유주의의 반대편에 공화주의가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조항을 입에 달고 사는 정치인들조차 ‘공화’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듯하다. 흔히 2항에 나오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문장을 공화의 정신을 대변하는 표현으거론하지만, 사실 이는 공화가 아니라 인민 주권론 즉 민주주의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공화/공화국/공화주의에 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그 용어의 긍정적인 사용이 제한되거나 금기시된 측면도 있다. 북한에서 자신의 나라를 ‘공화국’으로 지칭하고 남한에서는 ‘제5공화국’이니 ‘삼성 공화국’이니 ‘검찰 공화국’이니 하는 식으로 그 용어가 대개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탓이다. 중도 사퇴한 모 후보의 슬로건은 ‘기득권 공화국에서 기회의 나라로’였다.      


공화주의는 개인의 이익과 욕망의 추구가 아니라 공동선, 자치, 관용과 절제, 시민의 미덕을 중시하는 정신이다. 이제는 유효기간이 지난  듯하지만, 19세기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격찬한 건국 초기 미국이 추구한 정신도 공화주의였다. 자유주의는 되려 배격되었다. 로버트 달(Robert Dahl)의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에 따르면, 상하 양원제, 선거인단 투표, 의회 중심주의, 배심원제 등에 공화주의의 정신이 담겨있다고 한다. 이들은 지금까지 미국 민주주의의 빛나는 상징이 되고 있다.  


기본소득, 지방분권, 토론을 통한 문제 해결, 통합과 협치를 강조하고 실천하는 정치인이라면 그는 공화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의 정책에 열렬한 지지를 보낸 일반인과 전문가 그룹은 공화주의 세력이다. 공화주의라는 용어가 위에서 말한 이유로 금기시되거나 제한적으로 사용되어 공개적으로 그렇게 명명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선거는 진보 후보가 보수 후보에 패한 선거가 아니라, 공화주의 세력이 국가주의자와 손잡은 자유주의 세력에 패한 선거였다고 볼 수 있다.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본격적인 전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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