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수정 보완되어 <우리를 배반한 근대>(엄창호 지음, 2023년 6월 여문책 발행)에 수록되었습니다.
거의 40년만에 다시 접하는 카프카의 <소송>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막연하게 한 개인의 실존적 불안과 고독이라는 관점에서만 이해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합리와 이성을 기치로 하는 근대를 신랄하게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내용으로 읽을 수 있었다. 즉 자본주의, 대의민주주의, 관료주의와 같은 근대의 제도들을 모두 소송 과정으로 치환하고 고도의 상징을 동원해 이를 비판하거나 조롱한 작품으로 이해했다.
검색 엔진을 돌려보면 이 작품의 내용을 요약한 글들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내가 요약하는 방식은 그것들과 조금 다르다. "어느 날 느닷없이 체포되는 요제프 K는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허둥거린다, 하지만 소송의 본질과 무관한, 생뚱맞은 사건들과 난데없는 사람들을 접하며 점점 끝 모를 늪으로 빠져들다가 결국 죽임을 당한다." 이 요약문에서 드러나듯이 소설 전편을 흐르는 정서는 느닷없음, 생뚱맞음, 난데없음이다. 그렇듯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근엄한 표정과 정중한 태도를 지닌 사람들에 의해 느닷없이, 생뚱맞게, 난데없이 연이어 벌어진다.
이 소설 독해의 키포인트는 한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한 인물의 세부적인 언행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중요한 건 개별 사건과 인물이 아니라 그 관계다. 사건과 사건은 인과관계로 연결되지 않고, 인물과 인물 간의 소통은 늘 실패하며, 사건과 인물의 매칭은 거듭해서 기대를 배반한다. 구체적인 사건과 인물은 이른바 '텅 빈 기표'로서, 불합리/비논리/소통불능의 현상을 말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K는 그 구도 속으로 끌려가고 소송은 그가 전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카프카는 이런 설정을 통해 근대가 신주받들 듯이 우러러 모시는 이성과 합리주의를 조롱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어갈수록 사건과 사건의 난데없는 연결을, 인물과 인물의 느닷없는 관계를, 사건과 인물의 생뚱맞은 매칭을 유도하는 거대한 ‘보이지 않는 힘’의 존재가 궁금해진다. 소설 속에서 그 힘은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명령(order)이자 누구든 종속되어야 할 질서(order!)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힘은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처럼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권력은 아니다. 제 스스로 굴러가는, 굴러가면서 가속을 받아 점점 더 빨라지고 강력해지는, 하지만 그 누구도 왜 그렇게 빨리 그 방향으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자발적으로 동조하게 되는, 그래서 <1984>에서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시도하는 것과 같은 저항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통제받거나 관리되기는커녕 오히려 진보나 발전의 이름으로 찬양받고 숭배되는 힘이다.
그 ‘보이지 않는 힘’은 바로 ‘근대성 (modernity)’이 아닐까? 자본주의, 대의민주주의, 관료주의 등 근대의 제도들이 쏟아내는 온갖 허울과 약속, 욕망과 유혹이 아닐까? 카프카와 동시대인인 이상(李箱)이 <오감도>에서 묘사한, 공포에 떠는 ‘13인의 아해’를 막다른 도로로 질주하게 만든 힘과 결국은 동일한 것이 아닐까?
소송은 근대의 산물인 법의 한 절차이고, 도로는 근대의 산물인 도시의 한 장치이다. (그리고 '오감도'의 원 단어인 '조감도'는 근대의 산물인 건축의 한 요소다.) <소송>과 <오감도> 모두 근대라는 조건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보이지 않는 힘'을 근대성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다.
이성과 합리의 계몽주의를 기반으로 성장한 근대가 어찌 불합리와 비논리와 소통불능의 제도로 매도될 수 있겠느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근대란 말쑥한 신사이되 실은 허울만 그럴듯한 빈털터리 '빈대떡 신사'와 같다. 아니 어쩌면 깔끔한 감색 정장에 선글라스를 쓴 조폭인지도 모른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70여 년 전 <계몽의 변증법>에서, 계몽의 이념 속에 이미 신화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 결국 근대는 야만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치밀하게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리고 현재에도 우리는 근대가 합리라는 이름으로 싸질러놓은 심각한 불평등과 환경파괴, 퇴행적 대의민주주의, 법치를 빙자한 특권층의 발호 등 불합리한 배설물로 곤욕을 치르고 있지 않은가.
카프카는 이 소설 <소송>을 통해, 근대인은 그 '보이지 않는 힘'에 눌려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말하려 했다. 카프카는 그것이 바로 근대가 인간을 근대인으로 길들이는, 또는 준비되지 않은 인간을 배제하는 방식이라고 이해했다. 따져보면 카프카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보다 30여 년 전에 이미 근대의 부정성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그러니 <소송>은 소설로 미리 쓴 <계몽의 변증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