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평설 병자호란>과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를 읽었다. 모두 조선의 흑역사를 담은 책이다.
조선왕조가 500년이나 갔다는 걸 대단하게 평가하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변화와 창조의 동력이 얼마나 약했으면 그렇게 부실한 체제가 500년이나 갔을까 하고 부정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의견도 있어야 한다. 난 후자 쪽이다.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의 저자는 관료 출신 경제학자로서 신제도경제학의 관점에서 체제의 포용성을 중심으로 조선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짚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넘어 왜 진작에 망할 나라가 500년이나 갔는지 알고 싶었는데, 그게 저자의 의도가 아니라 아쉽지만 그래도 내 생각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 생각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500년 왕조는 성리학으로 무장한 지배층인 양반계급과, 성리학에 포섭되어 지배질서에 동조한 피지배층의 합작품이라는...심지어 동학당조차 왕권 강화를 기치로 대원군과 결탁하려 했다고 하지 않은가.
결국 조선 500년은 우리에게 어떤 측면에서 하나의 치욕일 수도 있다. 그래서 훗날 대한민국 역사가 치욕으로 남지 않으려면 지금 이 시점이 중요하다.
<역사평설 병자호란>은 임진왜란보다 덜 알려진, 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병자호란을 다룬 책이다. 그 이유는 단지 한 달 남짓한 짧은 기간에 끝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임진왜란은 지지 않은 전쟁이고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영웅을 탄생시킨 드라마가 있는 전쟁이라면, 병자호란은 한 달여 동안 일방적으로 처참하게 박살난,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전쟁이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일 터.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인조반정 이후 정권을 잡은 서인(훗날 노론) 세력이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는 걸 넘어, 심지어 삼학사니 뭐니 하며 미화하기까지 했다는 것. 그런 식의 노론사관이 아직도 국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역사를 살피는 이유가 과거에서 교훈을 얻자는데 있다면, 임진왜란보다 병자호란에서 더 많은 교훈을 얻을수 있음을 이 책은 말해준다. 조선왕조실록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의 사료까지 두루 섭렵해서, 당시 역사를 그물처럼 촘촘하게 재배치했다. 웬만한 소설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명나라(혹은 중화)는 텅빈 기표였고 거세된 슈퍼에고였다. 그 가상의 권위 앞에서 인조와 당시 집권세력인 서인들은 어쩌면 그렇게까지 무력하고 무모하고 한심하고 허접할 수 있단 말인가. 미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이 강하게 충돌하는 지금, 현집권세력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토 정상회담에서 미국대통령으로부터 '노룩 악수'의 치욕을 당한 윤석열의 얼굴 위로400년 전 인조가 당한 삼전도의 굴욕장면이 오버랩된다. 어차피 광해군이 될깜냥은 전혀 아니니, 간절히 바라건대 인조가 되지나 않으면 좋겠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