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는 ‘명품 조연’ 이정은이 처음으로단독주연을 맡은 영화다.언론들은 만년 조연이던 그녀가 단독 주연이 된 것을'승진'이라도 한 것인양호들갑을 떨었다.마치만년 부장으로 퇴직할 것 같았던 사람이예상을깨고임원으로승진이라도 했다는 듯이.하지만그녀에게서 명품조연에이어'명품주연'까지 기대하기는 아직 이른 듯하다.
연기자로서 이정은의 역할은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창조하는 일이다. <오마주>의 경우,표정과 제스처와 목소리 등모든 연기의 수단을 동원해서, 거듭된 흥행참패로 흔들리면서도 꿋꿋하게 영화 감독의 길을 가려는 김지완을 살아있는 인물로 재현해야 한다.
그런데 <오마주>의 주인공지완은 새롭게 창조되지 못하고 뭔가 어정쩡한인물이 되고 말았다. 어떨 땐 <미스터 선샤인>의 함안댁이었다가 <자산어보>의 가거댁이 되기도 했고,<우리들의 블루스>의 은희로 보이더니 간혹 <소년심판>의 나근희 부장판사로 나타나기도 했다.즉 이정은은 지완이 되지 못하고 밖에서빙빙 겉돌았다.그래서영화 속 지완이 말하고 행동할 때마다무언가 어색함이 뚝뚝 묻어났고,그 어색함은몰입을 수시로 방해했다.내가몰입을 시도할때마다그녀는 "착각하지 마, 나는 무명의 영화감독 김지완이 아니라 유명한 조연배우 이정은이야"라며내 어깨를 툭툭 치는 듯했다.
이정은을주연으로 캐스팅한 감독의 섣부른 욕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주연에 대한 이정은의 과잉 집착이 문제였을까? 감독의연출이나 시나리오가치밀하지 못해서였을수도 있고, 이정은의 인물분석이미흡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도흥미로운 소재와 전체적으로 안정된연기력에 힘입어 그런 대로 볼 만은 했다.
2. 신파적인 주제와 흐지부지한 결말
뒤에서 분석할 예정이지만, 자칫 복잡할 수 있는 구조의 이야기를 단순화시켜 알기 쉬운 주제로 전달한 점은 이 영화의 미덕이다. 하지만“고생 끝에 낙이 온다." 또는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식의계몽적메시지가담긴신파영화로보인다는 점은 이 영화의 피할 수 없는 한계이다.
이 영화가 더 높은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려면, 주제가 시나리오를 쓴 감독의 개인적 소망 차원을 넘어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여성차별을 겪는 구체적이고 전형적인 한 개인이 여성 차별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와 대결하는 구도가 있어야 한다. 그 대결 속에서 긴장도와 몰입도가 높아질 뿐만 아니라 주제의 객관성과 보편성도 확보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대결구도로 달려가는 대신 구조적 문제를 개인 차원에서 해결하는 쪽을 택했다. '꿈'을 내세우면서 대결을 피해 현실과 애매하게타협하고만 것이다. 그 결과결말은 흐지부지해졌고,자칫 신파로보일 만큼 주제는 상투적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구성상의 문제가이정은의아쉬운 연기로이어진 측면도 있을 것이다.하지만농부가밭을 탓할 수 없듯, 연기자가 시나리오를 탓할 순 없다.구성상의 문제를 자신의 연기력으로 덮어줄 수 있어야 좋은 연기자다.
이정은의 연기는 <미스터 선샤인>의 함안댁, <자산어보>의 가거댁, <우리들의 블루스>의 은희 역을 할 때 빛났다. 그런데 <소년심판>의 나근희 판사와 이번 <오마주>의 김지완 감독 역을 할 때는 실망스러웠다. <로스쿨>의김은숙 교수역도 그저 그랬다. 이는 곧 몸을 주로 쓰며 매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여종이나 시골 아낙 역을 할 땐 빛났고, 두뇌를 주로 쓰며 특정 문제를 깊이 사유하는전문가 역을 할 땐 실망스러웠다는 뜻이다.한 마디로, 몸연기는 잘 하는데 내면연기는 못 한다는 얘기다.이정은과연출자들은 이런 결과를 냉정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정은의 '승진'은 조연에서 주연이 되는 일이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좋은 조연에서 더 좋은 조연이되고또다시 더 좋은 조연이 되는 일이다.그리고 주연이든 조연이든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배역을 받아서 살아있는 캐릭터로 재현해내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우리가 보고싶은 건'주연이정은'이나 '조연 이정은'이 아니라 '이정은의 좋은 연기'라는 점이다.
3. 액자구조 속에 담긴 절망과 희망
영화 <오마주>는 일종의 ‘액자 구조’를 취하고 있다. <오마주>라는 영화 속에 다른 영화, 즉 1962년 개봉된 <여판사>라는 영화가 등장한다. 액자 구조(額子構造)란 액자가 그림을 둘러서 그림을 꾸며주듯, 외부 이야기가 내부 이야기를 액자처럼 포함하고 있는 기법을 말한다. 여기서는 <오마주>라는 외부이야기가 <여판사>라는 내부이야기를 액자처럼 포함하고 있다. ‘액자 구조’에서 중요한 것은 외부이야기와 내부이야기가 유기적 관련성을 맺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마주>의 경우, 외부이야기는 김지완 감독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며 내부이야기(즉 영화 <여판사>)는 진숙이라는 여성 판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외부이야기는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여성 감독 · 여성 편집자 · 여성 시나리오 작가 이렇게 세 명의 여성 영화인이 영화를 제작한 흔적을 약 70년 후 주인공이 추적하는 이야기이고(외부이야기1), 다른 하나는 주인공 즉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는 감독이 갖은 편견과 질시 속에서 꿋꿋이 영화의 길을 간다는 이야기이다(외부이야기2). 또한 내부이야기 곧 영화 <여판사>는 여성 판사로서의 절망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1962년 개봉한 영화 <여판사>의 한 장면
그런데 외부이야기1,2와 내부이야기는 전문직 여성의 삶이라는 세 겹의 동일한 주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삶의 공통점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간다는 점이다. 이를 ‘전문직 여성의 삶과 꿈’이라고 요약한다면, ‘내부이야기’에서는 ‘1960년대 여성 판사의 삶과 꿈’이, ‘외부이야기1’에서는 ‘1960년대 여성 영화인의 삶과 꿈’이, ‘외부이야기2’에서는 ‘2020년대 여성 영화인의 삶과 꿈’이 다뤄지고 있다. 즉 영화 <오마주>는 액자 구조를 통해서, ‘1960년대 여판사의 삶과 꿈->1960년대 여성영화인의 삶과 꿈->2020년대 여성 영화인의 삶과 꿈’ 이렇게 세 겹으로 유기적 연결망을 구축하면서, 전문직 여성이 겪는 절망과 이를 이겨내고 희망을 지니게 된다는(혹은 지녀야 한다는, 혹은 지니겠다는) 메시지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 세 겹의 삶은 수시로 등장하는 여판사의 실루엣으로 서로 연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