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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서생 Sep 15. 2022

영국과 자본주의에 관한 불편한 진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서거를 계기로 자본주의를 생각해 보다.

※이 글은 수정 보완되어 <우리를 배반한 근대>(엄창호 지음, 여문책 펴냄)에 수록되었습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했다. 캐리커쳐를 그리면서 얼굴을 자세히 보니 참 곱게도 늙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는 단순히 드높은 명예와 막대한 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따뜻하고 자상한 성품이 얼굴을 통해 배어 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삼가 명복을 빈다.




나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초 영국 런던과 에든버러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영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을 꼽으라면, 대영박물관에서 받은 충격이었다. 뜻밖의 빈약한 역사와 엄청난 양의 약탈 문화재 때문이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대한민국' 정도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영국의 문명사는 너무 짧았다. 지금 기억하기로 우리나라의 고려 중기에 해당하는 11세기 노르만 정복에서부터 시작하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짧은 기간에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영어와 같이 근대를 틀 지운  표준을 만들어 세게를 움직였으니, 짧고 굵은 나라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대영박물관에는 신라 금관이나 고려 상감청자에 해당하는 자국의 국보급 문화재는 보이지 않았다. 전시된 문화 유물이라고는 거의 다 그리스며 이집트며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에서 약탈해 온 것들이었다. 오죽하면 대영박물관을 '인류 약탈 문화재의 창고'라 부르고, "건물과 경비원 말고는 대영박물관에 영국 물건이 없다"는 말까지 나올까 싶다.


이 충격은 워낙 강력해서 그 후 영국과 관련된 정보를 접할 때마다 불쑥불쑥 나타날 정도다. 가령 손흥민의 EPL(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볼 때 뜨거운 축구 열기와 수준 높은 플레이에 감탄하다가도, 역사도 짪은 주제에 아니면 자기 문화재도 없는 것들이 축구는 제법이네, 하고 조롱하는 마음이 감탄을 희석시키곤 한다. 나에게도 국뽕이 있기는 있는가 보다.


한국인들은 영국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금 이슈가 되고 있다고 해서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EPL만으로,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한국전쟁 때 군대를 보내 싸워준 인연으로 영국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니면 예의 바른 영국 신사와 탬즈강에 자욱이 낀 안개를 떠올리며 감성적으로 접근해서도 안 된다. 근대 이후 영국이 전 세계와 전 인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아야 영국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다.


'인류 약탈 문화재의 창고'라는 오명이 붙은 대영박물관


영국은 한편으론 셰익스피어, 뉴턴, 다윈 등 걸출한 인물로 인류 문명에 기여한 점, 권리장전 및 무혈 시민혁명인 명예혁명을 통해 의회민주주의의 전범이 된 점, 그리고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에 막대한 부를 안겨준 점 등으로 세계사에 거대한 긍정의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문화재 약탈 말고도, 동인도회사를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자원과 노동력을 무자비하게 수탈해 간 일, 아프리카인들을 대거 납치해 물건처럼 팔아넘긴 악명 높은 노예무역, 인도의 면직산업을 도륙 내버린 일,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중국 민중에 아편을 퍼뜨린 일, 영일동맹을 통해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침탈을 지원한 일 등 거대한 부정의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본의와는 다르게 인류에게 가혹한 족쇄가 되기도 했고, 산업혁명의 상징인 증기기관차는 식민지 약탈의 일등 공신이 되기도 했다. 대처 수상이 벌여놓은 신자유주의의 폐해에도 영국의 책임은 있다.     


하버드대 교수 스벤 베커트의 <면화의 제국 Empire of Cotton>에 따르면, 최초의 산업국가인 영국은 흔히 묘사되는 것처럼 그렇게 신뢰할 만하고 공정한 제도를 갖춘 효율적인 자유주의 국가가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어마어마한 군사비를 지출하며 거의 지속적인 전쟁상태에 놓여 있었으며, 강력하고 간섭주의적인 관료제와 높은 세금, 치솟는 정부부채와 보호관세가 특징을 이루는 제국으로 비민주적 국가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면화의 제국>은 18세기말 이후 세계가 그토록 빠르고 철저하게 재창조될 수 있었던 것은 생산과 무역, 소비를 조직하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했기 때문인데, 이 새로운 방식의 핵심에는 노예제, 원주민 약탈, 제국의 팽창, 무력을 동원한 교역, 사람과 토지를 장악한 기업가가 있었다면서 그 주역이 바로 영국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런 체제를 전쟁 자본주의(war capitalism)라고 부르고 있다. 이 책은 영국이 이끌어간 초창기 자본주의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영국 신사처럼 고귀하고 예의 바른 모습이 아니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민주주의의 나무가 피를 먹고 자라듯, 자본주의의 나무도 피를 먹고 자랐다고 말하는 셈이다.

     

영국을 소개하는 어느 유튜브 영상을 보니, 여행 분야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나와서 위대한 역사니 위대한 나라니 하며 말끝마다 '위대한'을 입에 달고 영국을 찬양하고 있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삼키는 데 큰 도움을 준 나라를 위대하다고 칭송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매국노나 제국주의자와 한패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아닐까? 설사 어떤 면에서 '위대한 영국'을 인정하더라도, 그 뒤에는 이유 없이 납치당한 아프리카 어느 가장의 눈물과 인도 면직물 장인의 잘린 엄지손가락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사실을 알고도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역사적 과오를 영원히 붙잡고 있자는 게 아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는 그 밝은 빛만큼이나 어두운 그늘 또한 길게 드리워져 있음을 알자는 말이다. 그래서 용서하더라도 잊지는 말자는 얘기다.     


영국의 성적은 앞에서 말한 다양한 과목들을 모두 종합해서 매겨져야 한다. 성적이 탁월한 과목도 있고 형편없는 과목도 있지만, 평균을 내보면 내 짐작에 그저 낙제점을 조금 웃도는 정도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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