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수정 보완되어 <우리를 배반한 근대>(엄창호 지음, 2023년 6월 여문책 발행)에 수록되었습니다.
1.
얼마 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했다. 그녀가 70년의 재임 기간 중 영국을 위해 무슨 특별한 일을 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녀의 온화하고 단아한 모습은 영국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는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영국은 비유컨대 똑똑하고 성격 좋은 모범생의 이미지로 오랫동안 각인되어 있었다. 가난하게 태어나 과외는 전혀 받지 않고 교과서로만 공부해서 전국 수석을 따낸 수재로, 사시 합격과 존경받는 고위 법조인을 거쳐 전관예우를 누리며 돈과 명예를 모두 거머쥔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랄까, 한 마디로 개천에서 난 착한 용쯤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영국은 많은 사람에게, 짧은 역사에도 최초의 시민혁명을 통해 의회민주주의를 확립하고 산업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확산시킨 나라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아이작 뉴턴, 애덤 스미스와 찰스 다윈과 같이 세계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을 배출했으며, 한때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세계를 주름잡은 나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인에게는 품위 있고 매너 좋은 신사의 나라이기도 하고, 한국전쟁 때 군대를 보내 도와주고 박지성과 손흥민을 키워준 고마운 나라이기도 하다. 내 생각에 반전을 가져온 두 가지 사건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껏 영국을 그렇게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인류 약탈 문화재의 창고'라고 불리는 대영박물관 2.
첫 번째 반전은 몇 년 전 대영박물관을 관람할 때 일어났다. 뜻밖의 빈약한 역사와 엄청난 양의 약탈 문화재가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대한민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영국의 문명사는 너무 짧았다. 지금 기억하기로 본격적인 역사의 시작은 우리나라의 고려 중기에 해당하는 11세기 노르만 정복에서부터였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대영박물관에는 신라 금관이나 고려 상감청자에 해당하는 자국의 국보급 문화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전시된 유물이라고는 온통 그리스며 이집트며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에서 약탈해온 것들이었다. 오죽하면 대영박물관을 ‘인류 약탈 문화재의 창고’라 부르고, “건물과 경비원 말고는 대영박물관에 영국 물건이 없다”라는 말까지 나올까 싶다. 이를 계기로 영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는 템스 강에 자욱이 낀 안갯속으로 가뭇이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말마디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이다. 스미스는 생산자가 아무리 이기심을 가지고 상품을 만들어 팔아도, 남거나 모자라지 않고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시장이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준다고 보았다. 그런 시장의 기능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 했다. 또 베버는 낭비하지 않고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자본가의 정신이 자본주의를 형성하고 발전시켰는데, 그런 정신의 뿌리가 다름 아닌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있다고 보았다. 즉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의 조화로운 질서를 뜻하고,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자본가의 건실한 태도나 정신을 뜻한다. 이 두 가지 표현과 함께 자유 계약과 임금노동, 재산권 보호, 야경국가 등도 초기 자본주의를 말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연관검색어들이다. 자본주의의 초창기 모습은 이런 말마디들과 어우러지면서, 많은 사람에게 깔끔하고 따뜻하고 세련된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실상은 이러한 이미지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두번째 반전이 찾아왔다. 반전을 일으킨 한 주인공은 하버드대학교 스벤 베커트 교수의 <면화의 제국 Empire of Cotton>이었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역사’라는 부제에 잘 나타나 있듯이, 2백여 년에 걸쳐 진행된 면산업의 변화과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영국이 주도한 자본주의의 부끄러운 역사를 날것 그대로 털어낸 책이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다음 인용문에 잘 요약되어 있다.
“자본주의를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임금노동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초기 자본주의는 자유노동이 아니라 노예노동에 기반했다. 산업자본주의라고 하면 우리는 계약과 시장을 먼저 떠올리지만 초기 자본주의는 거의 폭력과 신체적 구속에 의지했다. 근대의 자본주의는 재산권을 우선시하지만, 초기 자본주의의 특징은 확고한 소유권과 대규모 약탈이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국가를 등에 업은 강력한 제도와 법의 지배에 의존한다.”
이 책은 세계가 자본주의를 통해 빠르고 철저하게 재창조될 수 있었던 것은 생산과 무역, 소비를 조직하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전제하고, 이 새로운 방식의 핵심에는 노예제, 원주민 약탈, 제국의 팽창, 무력을 동원한 교역, 사람과 토지를 강제력으로 장악한 기업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짚어낸다. 그리고 이런 체제를 전쟁 자본주의(war capitalism)라고 부른다. 행정, 군사, 사법, 기반 시설에서 엄청난 역량을 갖춘 강력한 국가를 기반으로 형성된 산업자본주의는 전쟁 자본주의를 토대로 발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면산업의 다양한 실증 자료를 동원해서 이들을 꼼꼼하게 논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면화는 19세기에 지구 전역에서 거래된 상품 중 가장 중요했으며, 거의 연금술에 가까운 비술을 동원해 노예제와 자유노동, 국가와 시장, 식민주의와 자유무역, 산업화와 탈산업화 등 상반된 듯이 보이는 것들을 결합해서 부로 바꿔놓았다고 한다.
3.
면화는 옷을 만들기에 뛰어난 원료다. 부드럽고, 내구성이 좋고, 가볍고, 염색과 세탁이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대의 식물학자들은 면화를 신의 선물이라고 여긴다고 한다. 면화를 재배하고 옷감을 짜는 일은 남아시아, 중앙아메리카, 동아프리카 세 지역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발전했지만, 18세기 중엽까지는 인도가 최대의 면화 산지이자 면직물 생산국이었다. 유럽의 각국은 동인도회사를 세워 인도의 면직물을 구매했는데, 물론 그 가운데 영국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1766년엔 면직물이 동인도회사 전체 수출품의 75%를 차지했다고 한다. 구매 이유는 세 가지였다. 동남아에서 향신료와 교환하기 위해, 자국의 국내 소비를 위해,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할 노예들의 몸값을 지불하기 위해.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부르주아지들은 대표적인 인도산 면직물인 친즈와 모슬린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겼다고 한다. 그 면직물로 지은 옷을 몸에 걸치고 자신들의 지위를 과시하려는 욕망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인도산 면직물은 점점 더 크게 유행했고, 아프리카 노예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면서 인도산 면직물이 영국 내 직물 시장을 잠식했다. 이에 모직물과 리넨 같은 전통적 직물 제조업자들이 반발했고 인도산 수입품으로부터 자국의 직물 산업을 보호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마침내 영국 정부는 인도산 면직물에 대해 1685년 10%의 관세 부과했고 1774년에는 결국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에 따라 면직물의 국내 생산이 본격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개발된 방직기와 방적기가 산업혁명(1차 산업혁명)의 신호탄이 되었음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산업혁명의 출발점이 된 방직기
영국 상인들은 국내 시장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의 글로벌 시장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하지만 영국 면산업은 그때까지 규모도 작고 기술적으로도 뒤쳐졌다. 이를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반을 잡아준 것이 바로 제국의 팽창, 노예제, 토지의 약탈로 요약되는 전쟁 자본주의였다. 전쟁 자본주의는 보험, 금융, 운송은 물론 국채, 화폐, 국방과 같은 공적 제도들까지 덩달아 키워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국가라는 든든한 뒷배와 군사력이라는 주먹, 그리고 넉넉한 돈줄까지 갖추고 만들어진 면직물과 면제품은 증기선이나 증기기관차를 타고 아프리카로, 아메리카로, 아시아로 운반되었다.
이는 면산업 강대국이었던 인도의 몰락으로 귀결된다. 인도는 원래 원면과 면직물과 면제품의 수출국이었으나 하나하나 차례로 빼앗기더니 결국 원면까지 수입해야 하는 나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영국이 인도의 면직물 기술을 빼앗기 위해 저지른 만행은 실로 무자비했다. 위안부나 징용 등 일제가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영국은 면제품 생산의 글로벌 네트워크 안으로 파고들어 이를 주도했다. 영국을 선두로 한 유럽 국가는 세계 면산업을 재편해나갔다. 스벤 베커트는 그 결과로 “불연속적이고 다원적이고 수평적이었던 오래된 면화 세계에서, 통합되고 집권적이고 위계적인 면화 제국으로의 이행이 일어났다”라고 말한다.
<면화의 제국>에는 이처럼 면산업의 변방에서 수입하는 데 급급했던 영국이 면산업을 통해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자본주의의 선두 국가로서 세계를 호령하게 된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스벤 베커트는, 200여 년의 역사를 탐사하는 과정에서 자본가와 국가가 나란히 등장해 서로의 지배력을 촉진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을 지적하면서, 자본과 정치의 다양한 조합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렇게 의미 심장한 진술로 마무리하고 있다.
“폭력의 여러 형식들 중에서 특히 노예제, 식민주의, 강제노동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핵심에 놓여 있었다. (...) 면화의 제국을 통과하는 여행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세계 최초의 글로벌 산업의 진화와 그것을 모델로 삼은 다른 여러 산업의 진화에서는 문명과 야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4.
그렇게 두번의 반전을 겪고 난 다음, 나에게 영국은 그리고 자본주의는 더 이상 개천에서 난 착한 용의 이미지로 남아있을 수 없었다. 베일을 벗겨보니 졸부이기는 하나 금수저 출신에다 포악한 성격의 이중인격자였다. 한 마디로 신사가 아니라 조폭이었던 셈이다. <면화의 제국>에서도, "최초의 산업국가인 영국은 흔히 묘사되는 것처럼 그렇게 신뢰할 만하고 공정한 제도를 갖춘 효율적인 자유주의 국가가 아니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오히려 어마어마한 군사비를 지출하면서 거의 지속적인 전쟁상태에 놓여 있었으며, 강력하고 간섭주의적인 관료제와 높은 세금, 치솟는 정부부채와 보호관세가 특징을 이루는 제국으로 비민주적 국가였음을 강조한다. 이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영국은 1902년 영일동맹을 맺어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와 한반도 병탄에 일조했다는 사실도 나는 잘 알고 있다.
역사적 과오를 영원히 붙잡고 있자는 게 아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는 그 밝은 빛만큼이나 어두운 그늘 또한 길게 드리워져 있고, 자본주의의 성장과 풍요의 뒤편에는 착취의 신음과 살육의 피가 흥건했다는 사실을 알아두자는 말이다. 그래서 용서하더라도 잊지는 말자는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