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있는 자가 정의롭다?
영화 <서울의 봄>이 던지는 역설
1. 영화 <서울의 봄>이 화제다. 그런데 실제로 이 영화가 다루는 시기는 1980년 '서울의 봄'이 아니라 그 직전인 1979년 '서울의 겨울'이다. 나중에 진짜 '서울의 봄'을 다루는 영화를 만들 땐 어쩌라고 이 제목을 미리 가져다 썼는지 모르겠다. 1980년 서울의 봄은 당시에도 '춘래불사춘'이라 표현했듯이 진짜 봄이 아니었고, 이는 1979년 12/12라는 혹한의 겨울 탓이었다. 이 영화와 '서울의 봄'이라는 제목의 관계는 여러 가지로 많이 헷갈린다.
2. 이 영화를 보고 나니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말이다. 주인공 윈스턴이 한 말인지, 그가 속한 당(영사)의 구호인지, 전지적 작가의 해설인지 가물가물하다. 어쨌든 합수단장이자 하나회 리더인 전두환은 현재(당시)의 정보와 무력을 완전히 지배했기 때문에 무려 계엄사령관의 과거(박대통령 살해 연루 혐의)를 지배할 수 있었고 결국 미래(정권 찬탈)까지 지배할 수 있었다. 나중에 그는 빵에도 가지만, 그를 빵에 집어넣은 세력은 현재를 완전히 지배하지 못했던 까닭에 그는 곧 풀려나 떵떵거리고 살다가 자연사했다. 그에게는 여전히 현재를 지배할 힘이 남아있었고, 이 때문에 그와 그의 일파는 과거(광주항쟁에 대한 해석)와 미래(재산과 명예 등)를 불완전하게나마 지배할 수 있었다.
3. 감독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 영화는 다음의 연상작용을 일으킨다. 전 씨=윤 씨, 12/12사태= 조국사태, 최통=문통, 하나회=특수부 정치검찰, 장장군(수경사령관)=추장관(법무장관)... 역사는 그렇게 반복된다. 그런데 실패한 역사만 반복되는 것같아 고약하다.
4. 이 영화는 정의와 힘의 관계를 묻고 있다. 정의가 곧 힘이라는 건 착각이 아닐까, 정의로운 것이 힘 있는 것이 아니라 힘 있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순진하고 어리숙한 사람은 모르지만 약삭빠른 사람은 다 아는 만고의 진리가 아닐까 하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정의를 위해서라면 내 한 몸 희생할 수 있다고 믿게 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영화를 통해 정의는 다만 상품으로 소비될 뿐, 실천과 결단의 대상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