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지식사회 지형도에서 박홍규 교수만큼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도 드물다. 그는 주전공이 노동법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철학, 문학, 정치학, 문화이론, 예술, 역사 등 장르와 영역을 넘나들며 백 권이 넘는 저서와 역서를 남겼다.
고 이어령 교수와 고 김윤식 교수 그리고 조동일 교수가 영향력 있는 많은 저서를 남겼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문학이나 문화와 관련된 영역에 한정되어 있고, 이진경 교수도 의미 있는 다작으로 두터운 팬덤을 구축하고 있지만 사회학과 철학 영역에서의 근대/탈근대 담론에 집중되어 있다.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 건축사가 임석재 교수 등 좋은 책을 남긴 몇몇 다작가들도 대개 자신의 전공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에 비해 박홍규 교수의 관심영역은 인문사회과학 모든 분야를 망라할 만큼 전 방위적이다. 그를 르네상스형 인간으로 부를 수 있는 이유다.
그래서 그에게는 한 우물을 깊게 파는 느낌이 강한 '학자'보다는, 저술가나 작가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린다. 그런데 박 교수를 '독서인'으로 상정하고 그의 생각과 생활을 심층 인터뷰한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 고독한 독서인 박홍규와의 인터뷰>라는 책이 눈에 띄기에 빌려서 단숨에 읽었다.
그렇지, 그는 무언가를 쓰는 사람이기 이전에 무언가를 읽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도 저술가나 작가 박홍규보다 독서인 박홍규를 더 사랑하는 듯했다. 평생 그런 책들을 읽어온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또 그만큼 써왔다는 사실이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다.
한 가지 엉뚱한 생각. 제목인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를 유심히 보니 '읽다'와 '늙다'가 모두 'ㄺ'이라는 받침을 가진 단어로 운(pun)이 맞는다. 읽는다는 것과 늙는다는 것은 왠지 의미상으로도 깊은 상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기억하고 싶은 몇 개 구절을 소개한다.
“특정한 책 한 권이 누군가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줄 수 있다? 저는 그런 식의 단 한 권의 책을 믿지 않아요. 더욱이 지식인으로 불리는 사람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보고, 좀 더 강하게 말하자면 지적인 사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책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요?
그보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즐거워야 해요. 저 자신에게도 그랬습니다. 저는 어떤 경우든지 간에, 어떤 책이든 ‘읽는다는 것’이 그 자체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습관과 감수성이 쌓인다면, 사람들은 저마다 이 세상에 어마나 좋은 책들이 많은지 발견해 나갈 수 있겠죠. 그 모든 책이 그것을 읽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책들일 겁니다.”
“혼자서 사고하고 혼자서 행동하고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힘을 갖는 게 고독입니다. 그런데 사회와 국가는 그런 개인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기본적으로 흡수하고 동화하려는 경향을 띠게 마련이죠. 그래서 저는 고독을 기본적으로 저항이라고 생각해요. 저항을 위해서 고독하는 것이지, 저항의 의미 없이 그냥 고립된 삶을 산다는 것은 다소 무의미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자기 계발적인 고독의 의미가 아니라, 우리 사회엔 좀 더 능동적으로 고독해질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 어린 친구들도 혼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요, 그래서 고독하기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고독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키워내는 교육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우리가 돌아가야 할 가장 기본적인 생각, 혹은 명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이며 ‘모든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고 또 마땅히 평등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읽어야 할 단 한 권의 책이 남아 있는 한, 반드시 써야 할 단 한 줄의 문장이 남아있는 한 나는 내내 읽고 또 쓸 것이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남지 않게 살 것이다. 나는 다만 그렇게 살 수 있어서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니까 말이다.”(후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