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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호랑이 Aug 09. 2022

'미국에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것이 내 잘못은 아니다'

<사회학 공부의 기초>, 앨런 존슨


<사회학 공부의 기초>는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집중해서 읽었고, 가장 얻은 게 많았고, 내 관점을 가장 크게 바꿔준 책이다.






미국에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것이 내 잘못은 아니므로 나는 이 나라가 인종차별적이라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사회의 일원인 백인으로서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와 책임을 느낀다. 죄책감을 넘어서 변화로 가는 유일한 방법은 시스템은 나 자신이 아니며 나 역시 시스템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사회 시스템을 모노폴리라는 게임에 비유해 보자. 그리고 모노폴리를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자. 게임 하는 사람의 인격이나 의도, 태도 같은 특징을 언급하지 않고도 모노폴리를 설명하고 묘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다시 말해 이 게임은 독자적으로 설명 가능한 실재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 누군가가 모노폴리를 하든 하지 않든 존재한다. 사회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금융, 교육,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서 우리는 이미 갖춰져 있는 시스템 안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시스템에는 결함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결함은 누군가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결함이 발견된다면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주로 예로 드는 인종차별의 경우가 그렇다.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를 비롯한 여러 가지 차별과 특권을 종식시키는 데 가장 큰 난관은 특권 집단의 방어적인 태도와 저항일 것이다. 특권 집단이 저항하는 이유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그들 또한 대체로 개인주의 모형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비난받는 느낌을 갖지 않으면서도 백인 특권을 사회적 삶에 존재하는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인종차별은 누구나 갖고 있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사회적 문제이다. 그러나 인종차별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백인인 경우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닌데 마치 인종차별의 가해자인 것처럼 여겨지는 게 불편할 수 있다. 그러면 인종차별에 대해 ‘아무런 스탠스를 취하지 않는 것'이 그 사람의 ‘최소 저항의 길’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종차별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곧 자신이 잘못을 했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학벌주의에도 이 인식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동등하게 공부하는 환경에 놓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력만으로 사람을 줄 세우고 인생의 성패를 평가하는 시스템은 부당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노력해서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학벌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곧 자신의 노력을 부정당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책 읽으면서 나름대로 정리해본 메모ㅎㅎ (블라인드 채용 정책은 한때 관심있게 본 이슈였어서 생각이 났다)



이 책에서는 이런 경우 개인이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준다. 이 내용은 내가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 부분이다. ‘시스템의 오류를 개인의 잘못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렇지만 시스템은 그대로인 채로 개인의 노력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는 것’. 전자는 개인이 그 오류가 만들어지는 데 기여한 바가 없기 때문이고, 후자는 시스템의 오류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누군가는 뒤처져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잘못 없이 시스템에 의해 차별받고 뒤처지는 것은 분명 문제다. 그러나 그 차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으로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위의 두 가지를 모두가 인식하고 인정한 다음에야 유의미한 변화를 꾀하고 더 나은 무언가를 모색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사회학적 관점’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의 삶과 완전히 분리시킬 수는 없지만 분명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모노폴리 게임을 직시하는 것. 그 게임에 결함이 있다면 다같이 바꾸어나가야 한다는 것. 왜 최소 저항의 길 대신 어려운 변화를 택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나는 그 결함으로 인한 누군가의 불행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고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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