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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May 10. 2021

재미와 의미가 만나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


   남편의 오랜 위시리스트였던 애플워치를 얼결에 함께 사고 결혼 12주년 선물이라는 이름을 갖다붙였다. 애플워치에는 움직이기, 운동하기, 일어서기 세 개의 링이 있고, 미리 목표를 설정해놓으면 정해진 링을 채우며 운동량을 체크할 수 있다. 그 중 애플워치가 있는 친구와 겨루기를 할 수 있는 기능이 눈에 띄었다. 남편과 나는 눈을 반짝이며 겨루기 버튼을 눌렀다. 기간은 일주일, 링에 1 퍼센트가 추가될 때마다 1점씩 얻는 방식이고, 일주일 뒤 점수가 많은 사람이 이기게 된다. 부상은 애플워치에 새롭게 추가되는 뱃지다. 누르면 팽그르르 돌아가며 반짝이는 뱃지, 그게 뭐라고 갖고 싶다. 그러려면 이기는 수 밖에.


  초반엔 내가 역시 우세했다. 그러나 나는 초기에 반짝하지만 지구력이 없어 뒷심이 부족한 스타일.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남편이 치고 나가더니 마지막 날 급기야 역전을 당했다. 아이들 점심을 챙겨주고 침대에서 잠깐 쉬는데 애플워치에서 알람이 떴다.


  ‘WJ Kim님이 운동을 완료했습니다.’


  나는 다급하게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엄마 지고 있어. 빨리 옷 갈아 입고 나가자!”


  집에 있고 싶어하는 집돌이 형제들을 양몰이하는 개처럼 몰고 나가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다시 나의 재역전!


  가만 보자, 남편이 회사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꽤 걸을테니 또 역전을 당할 것 같다. 그냥 있을 수 없지. 저녁 설거지를 미루고 실내 달리기 및 막춤을 30분간 췄다. 아, 나의 치밀함이란. 건너편 집에 사는 사람이 보면 무척 이상하겠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무조건 이겨야하니까! 결과는 초박빙으로 나의 승리!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새로 획득한 뱃지를 보고 남편을 놀려주었다. 그걸 보고 눈빛이 변하는 걸 보니 앞으론 절대 봐주지 않을 것 같다.




  남편과는 대학교 1학년 때 친구로 만났다. 스무살 여름 포항 조방낙지 배 토익점수 내기를 시작으로 두꺼운 고전읽기, 헬스장 가기 등 수많은 내기를 해왔지만 운동분야에서 이긴 건 처음이다. 운동이라니. 어려서부터 몸이 자주 아파서 늘 절전모드로 살았던 나는 운동과 담을 쌓았고, 대학 필수과목인 생활체육에서 C+를 받을 정도로 운동신경이라곤 없었다. 그러던 내가 남편을 만나 홈트레이닝(이하 홈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매일은 못하지만 애들 재우고 함께 애플워치를 차고 홈트를 하는 시간이 참 좋다. 혼자 하면 귀찮다고 미룰 운동을 같이 하자는 사람이 있어서, 오래도록 함께 건강하게 살고싶은 사람이 있어서 몸을 일으키게 된다.


  남편은 나와 정반대다.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농구로 이름을 날렸고, 대학교 때도 농구코트에서 살다시피 해서 별명이 ‘체대생’이었다. 어쩌다 그가 책을 집어들면 “어, 웬일이야? 낯설다.”하고 놀릴만큼 책과는 거리가 있고,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면서 낄낄거리는 게 집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영화를 고르는 취향도 매우 다르다. 나는 뭔가 내 인식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새롭고 깨달음이 있는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반면, 남편은 현실도 녹록치 않은데 영화까지 심각한 걸 보고 싶지 않다며 오락이나 액션 영화를 고른다. 그래서 신혼 때 같이 영화관에 가서 각자 원하는 걸 보고 나와 함께 집에 돌아온 적도 많았다.



  

  남편에게 중요한 가치는 ‘재미’다. 그가 있는 곳에는 늘 웃음이 넘쳐나고 분위기가 밝아진다. 그가 재미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의미’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의미에 세계에 살던 내가 남편을 만나 재미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생각은 좀 더 가벼워지고, 몸은 더 건강해졌다. 남편이 낄낄거리면서 웃는 동영상을 함께 보면서 나도 따라 웃게 된다. 남편은 나를 만나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회사에서 주식이나 부동산, 연예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가 나에게서 페미니즘, 환경이나 채식 등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고, 인식의 지평이 넓어졌다고 고마워한다. 재미의 세계에 주로 사는 그가 의미와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재미와 의미. 어떤 순간에는 재미 자체가 의미가 되기도 하고, 재미가 없어도 의미 있는 일이면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결국 의미없이 재미만 있으면 공허해지고, 재미없는 의미는 지속할 수 없다. 재미와 의미, 두 가지 ‘미’를 우리 가정의 두 기둥으로 삼고 앞으로도 재미있고 의미있게 살아가려고 한다. 다름을 오히려 축복으로 여기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살아가고 싶다. 아이들이 우리의 삶을 보면서 “그래, 우리 엄마아빠는 어떤 상황에서도 재미를 찾아내는 사람이었지. 의미도 놓치지 않았어.”라고 기억해주면 기쁘겠다.


  얼마 전 남편이 주문한 아마존 택배가 와서 열어보니 ‘Winner of Month'라 적힌 미니 트로피가 들어있다. 이런 건 어떻게 알고 샀담. 앞으로는 매달 겨루기를 해서 이기는 사람이 한 달 동안 트로피를 갖자고 한다. 이 남자랑 있으면 도무지 심심할 틈이 없다. 그래, 콜! 다음번에도 사력을 다해 이겨야지, 챔피언의 명예를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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