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계절산문

‘요알못’이지만 봄나물에 도전해 봄

by 시에나


고백하건대 집안일 중에서 제일 자신 없는 분야를 꼽자면 단연코 요리다. 청소, 빨래, 장보기는 그럭저럭 할 만한데 요리와 설거지는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일단 지저분한 걸 못 견디기에 부엌이 어질러지는 게 싫고, 손이 느린 편이라 뭘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저녁 식탁에서 상추쌈을 야무지게 못 싸 먹는다고 혼난 어린이는 “자기는 손이 발이야!” 놀림을 받는 어른이 되었다. 아이 이유식으로 요리에 입문한 지 어언 10년이 되었으나 착착 가지런히 썰어내는 빠르고 정확한 칼질, 물 흐르듯 이어지는 공정은 내겐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다. 나는 대충 먹어도 되지만 돌아서면 배고프다는 아이들을 굶길 수는 없으니 매일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생존 요리를 추구한다. 허나 국 하나에 반찬 한두 가지면 초토화되는 주방을 어찌하리오. 해외 생활 3년 동안 는 건 요리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째 귀국 후엔 실력도 의욕도 도루묵이다. 그런 나이기에 다음 글방 주제가 ‘봄나물’이라는 걸 알고 가벼운 한숨이 나왔다. 이를 어쩐담.


일단 감이 안 잡힐 때는 책에 의존하고 본다. 언젠가 친구들이 건강해져야겠다고 동의보감 해설서, 홈트레이닝 관련 서적을 읽는 날 보고 깔깔 웃으며 놀려댔지만 내겐 가장 빠르고 안전한 방법이다. 도서관에서 봄나물 관련 그림책 3권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쑥, 냉이, 달래, 두릅, 고사리, 돌나물 같이 익숙한 봄나물도 있지만 뾰족뾰족 쌉쌀한 엄나무 순, 화살나무 새순이라는 홑잎 나물은 처음 들어봤다. 어린 시절 가장 굵은 줄기를 꺾어 누가 오래 버티는지 씨름하던 질경이, 작은 보랏빛 꽃이 귀여워 자꾸만 눈길이 가던 제비꽃도 나물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읽고 놀랐다. 냉이는 지방에 따라 ‘나생이’, ‘나숭개’라고 부른다는 것, 쑥은 거친 땅도 가리지 않고 아무 데나 쑥쑥 자라서 쑥이고, 달래는 하얀 알뿌리가 달롱달롱 달려있어서 전라도에서는 ‘달롱개’라고 부른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알뿌리를 살살 달래 가며 캐야 해서 달래인 줄 알았는데. 이로써 봄나물 지식 +10 습득!


도서관에서 빌려온 봄나물 그림책 세 권

봄나물에 관심이 생긴 김에 검색하다 신기한 내용을 발견했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곰과 호랑이에게 준 쑥과 마늘이 사실은 쑥과 달래일 수도 있단다. 마늘과 달래는 한자로 둘 다 산(蒜)이라고 쓰는데 마늘은 대산(大蒜), 달래는 소산(小蒜)이라고 불렸다. 마늘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고 단군신화가 기록될 당시 한반도에서 재배되지 않았지만, 쑥과 달래는 오래전부터 우리 땅에서 자생하는 식물이기에 마늘보다 달래가 더 신빙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아무도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호랑이는 진작 포기한 쑥과 마늘을 꾸역꾸역 참고 먹은 곰이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는 설화를 들었을 때, 자동으로 연상되는 쓰고 매운맛에 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그런데 마늘 대신 달래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눈물 나도록 맵고 독한 인고의 시간보다 알싸하지만 푸릇한 기운이 생명력 넘치는 사람이 되기에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쑥과 달래, 봄의 맛

이론을 채웠으니 이제는 실전이다. 보통은 간단하게 분식이나 사다 먹을까 싶은 금요일이지만 봄나물 밥상을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정한 메뉴는 그나마 간단해 보이는 쑥국과 달래장. 집 앞 대형마트에서 달래와 모시조개, 백합은 구했는데 어라, 쑥이 없다. 얼마 전 한살림 홈페이지에서 본 것 같아 한살림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냉장 코너를 샅샅이 뒤졌지만 없어서 돌아서려는데 상온 채소 매대에서 발견! 의기양양하게 한 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 요리를 시작했다.

먼저 봉지에서 쑥을 반쯤 꺼내 깨끗한 물에 담갔다가 헹구고 채반에 받쳐두었다. 쌀을 씻고 받은 쌀뜨물을 냄비에 붓고 불을 올린 뒤 해물 육수 코인을 몇 개 던져 넣고 된장망에 한살림 장국 된장과 시판 된장을 반반 넣어 살살 풀었다. 국물이 끓을 때쯤 쑥을 넣었는데 숨이 죽고 나니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 나머지 쑥을 얼른 씻어 한 봉지를 다 넣었다. (요알못의 요리팁: 처음부터 한 봉지를 다 넣으시오!) 한소끔 끓이고 난 뒤 모시조개와 백합을 투하한다. 혹시 해감을 해야 하나 싶어 재빨리 검색하니 마트에서 산 조개는 이미 해감이 다 되어있단다. 간 마늘을 조금 넣은 뒤 불을 끄면 쑥국은 완성!

달래장은 예전에도 종종 해 먹었던 터라 낯설지 않았다. 달래는 손질이 반이다. 알뿌리가 붙어있는 두꺼운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고 아기 머리 감기듯 살살 헹궈 흙먼지를 털어준다. 땅속에서 캔 것이라 그런지 흙이 자꾸 나와서 여러 번 깨끗이 목욕시키는데 시간이 지체되었다. 물기를 빼고 잘게 썰어 그릇에 담은 뒤 간장, 참기름, 간 마늘, 설탕, 고춧가루를 적당히 넣어서 되직하게 양념장을 만들면 끝이다. 이번에도 부엌은 엉망이 되었지만 잠시 못 본 척하자.


봄나물로 차린 소박한 저녁 식사

퇴근한 남편과 나란히 앉아 두 아이를 마주 보며 천천히 저녁을 들었다. 아이들은 고기반찬 하나 없는 저녁에 살짝 실망한 듯했지만 이내 군말 없이 잘 먹었다. 따뜻하고 향긋한 국물이 입안을 적시고 식도로 내려가니 배 속이 든든해진다. 보드랍게 풀어지는 쑥과 탱글탱글한 조갯살의 조화가 좋다. 다음은 달래장을 맛볼 차례. 친정엄마가 보내주신 마른 김에 시아버지가 농사지으신 쌀로 갓 지은 밥을 올리고 내가 만든 달래장을 얹어 맛을 보니 입안으로 싱그럽고 짭조름한 봄이 한가득 들어오는 것 같다. 문득 브로콜리, 로메인, 루꼴라 같은 서양 채소들은 자주 상에 올리면서 우리 땅에서 자란 봄나물은 정성껏 챙겨 먹(이)지 못했구나 반성이 된다. 어린 시절 동네 아주머니들 따라 바구니 하나씩 들고나가 쑥과 냉이를 캤던 추억을 우리 아이들은 가질 수 없겠지만 이 봄나물의 맛을 전해주는 데는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봐야지. 국물 떠먹으랴 밥에 달래장 올리랴 숟가락이 바쁜 저녁밥상이었다.



참고자료


조혜란 글 그림, 『할머니, 어디 가요? 쑥 뜯으러 간다!』, 보리출판사

박미림 글, 문종인 그림, 『봄나물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다섯수레

오진희 글, 백명식 그림, 『자연을 먹어요!』, 내인생의책

이가영 기자, 단군신화 속 웅녀가 먹은 것은 마늘이 아니다?, 중앙일보 2017년 10월 3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99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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