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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Jul 04. 2023

영국 초등학교에는 교과서가 없다고?

feat. 김성우 엄기호,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따비


남편의 갑작스러운 주재원 발령으로 영국으로 건너가게 된 우리 가족, 3년을 살면서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대상은 역시 아이들 학교다. 자녀가 둘인 덕에 어린이집부터 5학년까지 두루 경험할 수 있었다. 영국 초등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아무래도 교과서가 없다는 점이다. 이 얘기를 하면 ‘교과서도 없이 어떻게 수업해?’ 다들 놀란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나중에 보니 교과서와 진도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수업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예를 들어 해당 학기에 ‘로마 역사’를 다루면 수업 시간엔 로마 역사, 문화, 생활상을 다룬 각종 자료를 읽으며 글짓기를 했다. 주말엔 재활용 쓰레기를 활용해 로마 시대를 표현하는 만들기 과제가 나왔다. 우리는 큰 박스를 자르고 은박지로 감싸 방패와 칼을 만들었다. 만들면서 아이들이 무척 즐거워했다. 한 달간 로마 역사에 대해 충분히 배우고 나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로마인의 날’! 그날은 교사, 학생 할 것 없이 고대 로마인들이 입었을 법한 복식으로 등교해 연극과 노래, 만들기로 종일 한바탕 축제를 즐겼다. 읽고, 쓰고, 참여하고, 오감으로 느끼는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배운 지식은 아이들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매 학년 그리스, 이집트, 타이타닉, 1950년대 영국사 모두 유사한 방식으로 배웠다.



집에 있는 박스와 은박지를 이용한 핸드메이드 단검과 방패



고학년부터는 어깨에 메는 백팩이 필요하지만, 저학년생들은 학교 로고가 찍힌 가벼운 천 가방 하나를 달랑 들고 다녔다. 어른들 서류 가방 정도 크기지만 신발주머니처럼 가볍다. 이름은 book bag, 말 그대로 책가방이다. 안에는 교과서 대신 자기 읽기 레벨에 맞는 책과 읽기 노트가 달랑 들어있다. 매일 정해진 분량을 읽고, 읽기 노트에 기록하는 것이 기본 과제다. 한 권이 끝나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관련 퀴즈를 푼 뒤 다음 책으로 넘어간다. 같은 학년이라도 아이마다 읽기 레벨이 다르다. 자기 레벨에 맞는 책을 본인의 속도대로 꾸준히 즐겁게 읽어나가면 된다. 그뿐이다.


쓰기 역시 매우 중요한 교육이다. 한 주제로 한 편의 글을 써내는 걸로 끝나지 않고, 여러 번 고쳐 쓰면서 발전시키는 법을 배운다. 그 과정에서 내용은 깊어지고 분량도 늘어난다. 맞춤법까지 다 수정하고 나면 반 전체에 공개(publish)한다. 자기 의견을 말과 글로 논리적이고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영국 교육의 본령이다. 영국 교육 전체를 경험한 것도 아니고 고작 초등학교 몇 년을 지켜보았을 뿐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책이 평생 가까이할 친구로 자리 잡은 것은 영국 교육의 덕이 크다.



초고 - 수정고- 공개까지 거치는 영국 초등학교 글쓰기 수업



김성우, 엄기호 공저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를 읽었다. 믿고 읽는 두 분의 대담이라니!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날까 읽기 전부터 기대감 상승이다. 시선을 낚아채는 제목과 달리(나중에 보니 책의 핵심은 부제에 담겨있었다) 이 책은 ‘트렌디하게’ 현 세태를 분석하거나 손쉽게 위기나 대안을 말하는 책이 아니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미 유튜브가 기본값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문해력, 리터러시의 의미와 역할에 관해 깊이 천착한다. 최근에 말랑한 에세이류를 주로 접한 탓인지 상대적으로 이론적이고 딱딱하게 느껴져 완독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아니, 슨생님들, 이 시대 잠재 독자들에게 두꺼운 진입장벽을 치는 책을 쓰시면 어떡합니까...’


외치고 싶은 마음과 두 학자께서 오래 연구하고 고민한 결과를 책 한 권으로 얻어갈 수 있다니 감사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후킹 하는 제목에 속지 말라! 부제에 책의 핵심이 담겨있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해서 본 부분은 “리터러시는 개인적 역량이 아니라 사회적 역량이어야 한다(191쪽)”이다. 즉, 개인이 잘 읽고 쓰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본격적인 읽기·쓰기로 진입하기 위한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사회가 얼마나 잘 닦아놓았느냐의 문제라는 것(133쪽). 학교와 도서관, 서점, 독서 모임 등에 손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필요한 도움을 적절하게 받을 수 있는지가 그 사회의 리터러시를 좌우한단다. 나 역시 독서의 유익과 기쁨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어 어려서부터 목이 갈라지도록 읽어주는 등 노력했지만 돌이켜보니 학교의 도움이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결국 개인의 문해력은 제도교육부터 학교 밖 인프라까지 전체 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일임을 깨닫는다.



한국 초등학교 과학수업 과제: 실험 - 보고서 - 발표. 이런 수업이 많아지길



작년에 귀국해 햇수로 2년째 한국 초등학교를 목하 관찰 중이다. 한국에서도 독서와 글쓰기, 토론수업, 프로젝트 수업이 점차 강조되는 것 같아 반갑다. 매일 책을 읽고 독서록을 작성하거나(저학년), 매주 한 주제를 골라 글쓰기를 하는 과제도 나왔다(고학년). 집에서 실험한 뒤 과정과 결과를 사진 및 글로 정리해 발표하는 과제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학년과 교사에 따라 선택적으로 진행되는 점, 학교 전체 프로그램으로 연속성 있게 추진되지 않는 점은 아쉽다.


무엇보다 암기 위주의 교육, 객관식 답 찾기 위주의 평가가 계속되는 한 읽고 쓰고 활용하는 능력, 지식을 다루는 역량으로 리터러시 교육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독서와 논술이 입시에 유리하다는 편협한 접근과 두 선생님이 강조한 ‘좋은 삶을 위한 리터러시’의 간극은 얼마나 멀고 아득한지. 일단 한숨 한번 크게 쉬고 천천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다.



* 이 글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블로그 일간노워리에 함께 실렸습니다.

https://m.blog.naver.com/noworry21/223144936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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