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비채
1.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아름답고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책이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작은 디테일 하나 놓치지 않는 선생님을 닮아 ‘무라이 건축설계사무소’ 직원들은 다들 비슷한 데가 있었다.
나중에 유키코에게 물었더니 오전 오후 합해서 최대 열 자루 정도 연필을 쓰는 것이 일의 정확성도 지켜지고, 연필도 정성껏 다루게 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보다 더 깎아야 하는 것은 필압이 너무 강하거나 너무 난폭하거나 너무 서두르거나 그중 하나로, 즉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선을 계속 긋고 있으면, 어느 지점부터 의식이 흐트러지는 때가 있다. 그 틈을 노려서 실수가 미끄러져 들어오니까 연필이 어떻게 닳는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64~65쪽)
처음엔 연필 깎는 시간, 방법, 쓰는 양까지 체크하는 회사라니 지나친 통제가 아닌가 싶었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 납득이 되었다. 흔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데 정확성이 생명인 설계사무소의 철저한 일처리를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선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게 긋고, 연필이 얼마나 닳는지 주의를 기울이는 설계사무소라면 어떤 일을 맡겨도 성심성의껏 해낼 테니 말이다. 이러한 태도는 책 후반부 무라이 선생님의 말씀에서 다시금 강조된다.
그런 때 건축가로서의 신념이 문제가 되는 거야. 그 자리에서 자기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가는 평상시 어떻게 해왔느냐의 연장선상에 있어. 여차하면 저력을 발휘할 생각으로 있어도 평상시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았으면 갑자기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같은 책, 354쪽)
무라이 선생님이 신입직원 사카니시 군에게 하신 조언이지만 쓰는 사람의 길로 들어선 내게도 울림이 있었다. 어쩌면 집 짓기와 글짓기가 비슷한 점이 있어서일까? 구상을 하고, 구조를 짜고, 재료를 모으고, 뼈대를 세우고, 벽돌/단어를 하나씩 쌓아나가는 점이 닮았다. 허점이 발견되면 공들여 지은 것을 허물고 다시 새로 짓기도 한다. 고민하고 정성을 기울이는 만큼 더 훌륭한 건축물/작문이 완성된다. 결국 탁월함은 지루한 일상에서, 꾸준한 반복에서, 세심한 마무리에서 나오는 법이다.
2.
실은 지나가는 바람 같은 말에 마음을 다쳤다. 최근 지인들과 식사 자리에서 취미생활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아이 키우고 일하고 정신없이 사는데 무슨 취미씩이나 있냐고 한탄하던 차였다. 잠자코 듣고 있던 나에게 한 분이 물었다. 정인 씨는 취미가 있지 않냐고, 책 읽고 글 쓰는 거 취미 아니냐고. 짧은 침묵이 흐른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취미로 하는 거 아녜요. 제겐 직업이에요.”
웃음기 하나 없는 내 대답에 분위기는 잠시 얼어붙었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데 애써 정정한 이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뭐 할 거냐는 질문에 진지하게 글을 쓰고 있다고 대답한 지가 얼마 전인데, 학부와 대학원 전공을 자세히 묻고는 경력이 아깝다고 하실 때도 그냥 웃으며 넘겼는데 이번엔 못내 서운했다.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겐 한낱 ‘취미’로 보이는구나. 돈 한 푼 못 벌면서 읽고 쓰는 삶이라니, 얼마나 한가롭게 보일까. 비단 한 사람뿐일까.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성공은커녕 세상은 일로 인정해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익숙한 우울감이 찾아왔다. 어떤 일이 있어도 계속 읽고 쓰자며 자신에게 편지를 썼던 날이 무색하게, ‘취미’라는 단어가 이토록 마음에 콕 박힐지 몰랐다.
3.
유난히 뜨거웠던 2023년 여름도 어느덧 끝이 보인다. 지난 3개월 동안 했던 작업을 돌아본다. 여름글방 및 다른 글쓰기 모임에서 10편,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2편 총 12편의 글을 썼다. 휴가 기간을 제외하고는 한 주에 한 편씩 꼬박꼬박 쓴 셈이다. 그나마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는 그럭저럭 해낼 수 있었다. 문제는 방학이었다. 최소한의 계획만 남겨놓았건만 그조차도 어려웠다. 시간과 에너지가 모조리 잠식당하는 기분이었다.
<돌봄과 작업 2>에서 읽은 문장이 떠올랐다. “소설 쓰는 사람에게는 ‘미용 티슈’가 아닌 ‘두루마리’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 티슈처럼 한 장씩 꺼내 쓰는 시간이 아니라 두루마리 휴지를 둘둘 감아 꺼내듯 길게 늘이고 늘여서 쓰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김유담, 돌봄과 작업, 42쪽)” 소설가는 아니지만 조각난 시간에는 생각도 조각나버린다는 걸 알기에 읽으면서 얼마나 공감했는지 모른다.
아이들을 영화관에 넣어놓고 카페를 찾아 헤맨 날이 기억난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무거운 가방을 들고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있는 걸 확인할 때마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겨우 한 곳을 찾아 노트북을 펼쳤다. 내게 남은 시간은 고작 한 시간 남짓. 엉킨 실을 풀어내듯 덩어리 진 생각을 하나둘 풀어 손끝으로 옮겼다. 그렇게 시작한 글은 새벽 3시에야 마침표를 찍었다.
자투리 시간이라도 어떻게 써보려고 애쓸 때, 깊은 새벽 노트북 앞에 앉아서 눈을 비빌 때, 내가 얼마나 글쓰기에 진심인지를 생각했다. 비록 잘 쓰지는 못해도 정성껏 쓰고 싶다고. 부족하지만 이게 내 최선이라고. 언제나 못해낼 것 같았지만 결국 써낸 열두 편을 보면서 생각한다. 단순히 ‘취미’라면 이렇게 할 수 없다고. 다른 사람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적어도 나 자신에겐 중요한 ‘일’이었다고.
4.
다시금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펴서 읽었다. 여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 큰 축복이라고 생각하면서. 별 뜻 없이 지나가는 말에 이토록 흔들렸던 건 당장 눈앞에 안 보이는 결과에 스스로 불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럴 땐 무라이 선생님 말씀처럼 평상시 하던 일로 돌아가는 게 특효약이다. 책을 펴고, 밑줄을 긋고, 문장을 옮겨 적고, 글을 짓는 동안 내 마음도 조금씩 덜컹거림이 줄어들면서 다시금 레일 위를 매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름글방 과제 중 가장 쓰기 어려웠던 ‘수라’ 영화평을 쓴 후 SNS에 댓글 하나가 달렸다. 내가 쓴 글 덕분에 ‘수라’를 알게 되었다고, 상영관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말에 찾아가 보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문장에 눈물이 핑 돌았다.
고마워요. 정인님의 글은 이렇게 힘이 있어요.
고마워요. 정인님의 글은 이렇게 힘이 있어요.
고마워요. 정인님의 글은 이렇게 힘이 있어요.
세 번 반복해서 읽었다. 글 한 편을 썼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이득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누군가의 사고와 행동을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 마음에 박힌 가시는 바람결에 날려버리고 독자의 귀한 한 마디를 마음에 품자. 그렇게 여름을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되는 가을을 맞이하자.
마음에 모든 창이 열리고 공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정인은 천천히 호흡을 되찾아간다.**
* 여름 별장에서 지내는 동안, 여닫이가 나쁜 문짝 같던 내 행동거지가 조금씩 덜컹거림이 줄어들면서 레일 위를 매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같이 느껴졌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47쪽)
** 모든 유리창이 열리고 공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여름 별장이 천천히 호흡을 되찾아간다. (같은 책, 27쪽)
*** 이 글은 #미루글방 #여름글방 #여름문장수집 '여름이 우리에게 남긴 글' 과제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