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프랑스에 살고 있다는 걸 깜빡했다.

맥시멈 55분

by 보르도대감

중국집에 전화해서 30분 전에 탕수육 시켰는데 왜 안 와요?라고 전화하면 중국집 주인의 대답은 주방에서 탕수육 튀기고 있는 알면서도 '조금 전에 배달 출발했어요'하는 거짓말과 똑같다.

밥 먹고 나왔는데 차가 퍼졌다. 앗,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시동이 안 걸리는 알면서도 키박스에 박혀있는 열쇠에 힘을 주어서 돌려본다. 컥, 컥, 컥 그냥 헛구역질만 한다.

큰일이다. 손님이 점심식사를 마칠 시간이 대략 15분 정도 남았다.

차량 보닛을 열어봐야 아무것도 모르지만, 남들도 차량에 문제가 있을 때 보닛부터 열어보니 나도 한 번 흉내를 내본다. 거기까지다. 내가 흉내를 낼 수 있는 부분은 보닛을 열어보는 것 그것뿐이다.

눈에 보이는 건 그냥 쇳덩어리와 플라스틱 그리고 주유소 근처에서나 맡을 수 있는 기름 냄새가 내 코로 들어오는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러고 멀건히 쇳덩어리만 쳐다볼게 아니고, '빨리 보험회사에 연락을 취해서 서비스를 받아야겠다'라는 나름 이성적인 행동을 하려고 어설픈 노력을 했다.

보험회사에 전화를 하니 자동응답기에 숫자 몇 번을 누르고 나서야 상담원과 통화 가능했다.

나는 어디에 있고, 차량 상태는 어떻고, 내 차 정보는 이렇고,,,,상담원이 알고 싶어 하는 모든 정보를 건네주고, 받은 결론은 맥시멈 55분 안에 서비스 차량이 나있는 곳으로 도착을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더 빨리 안돼요?라는 불필요한 질문을 던질 필요는 없다. 상담원도 모니터 상에 나오는 정보만 갖고 대답을 할 거고 급한 건 내가 급하지, 그 사람들은 급할 게 하나도 없다.

그냥 얌전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맥시멈 55분이라고 했으니깐 조금 빨리 도착만 한다면 손님 식사 시간과 대략 40분 정도 차이가 난다. 간단한 배터리 충전이라면 충전만 하면 되고, 이동 시간까지 해서 대략 1시간 안에 모든 일이 해결될 것 같은 내 나름대로의 시간 계산 방식이 나왔다. 그 계산 방식의 결론 참혹할 정도의 오답이 됐다. 내가 프랑스에 살고 있다는 함수를 계산에 대입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카톡, 카톡, 전화기에 메시지가 뜬다. 대략 15분 남았을 것 같은 손님의 점심시간이 벌써 끝났다는 메시지다.

안 되겠다.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겠다. 포도밭 한가운데서 다른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고객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괜찮다고 수리 마치는 대로 연락을 달라는 성경 구절에나 나올 것 같은 마음 평화로운 대답이었다. 자,, 이제 성경 말씀도 한 번 들었겠다, 최대한 차량 서비스가 빨리 도착하는 걸 기도할 일만 남았다. 하지만 내 기도빨이 약한 걸까? 40분이 지나도 50분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이다.

그래! 맥시멈 55분이라고 했으니깐 5분 안에는 도착하겠지!라고 큰 바람만 있었지, 내가 프랑스에 살고 있다는 걸 또 까먹었다. 1시간 20분이 지나고 또 카톡, 카톡이 울린다. 손님도 오래 참아주기 했다. 다시 카톡으로 상황 설명을 했다. 너무 미안해서 손가락 떨릴 정도였다.

1시간 35분가량이 지나고 나서야, 서비스 차량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도착했는데 나보고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그런데 일이 꼬이려니깐 끝이 없다. 서비스 차량이 도착한 곳은 샤토 슈발블랑의 뒷문이었다.

아니, 샤토 슈발블랑으로서는 정문 일 수 도 있지만 이제 그쪽은 슈발블랑의 사무실에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들어 올 수가 없다. 코로나 이후부터 진입로가 변경됐다.

서비스 차량이 와있는 곳은 내가 있는 곳과 35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뛰어야 한다. 서비스 차량이 그냥 가버리면 나만 손해다. 그래, 차량이 있는 곳까지 뛰어야 내가 산다. 골프 칠 때 350m와 지금 내 상황에서의 350m는 숫자상으로 같지, 느낌 상으로는 m가 아니고 Km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뛰어도 거리가 줄지 않는 것 같다.

wine&travel 030.JPG

숨 헐떡이며 서비스 차량에 다가갈수록 차량 안에서 내가 뛰어오는 것만 쳐다보고 있는 기사가 야속하기만 했다. 진짜 가래떡 딱딱하게 마른 게 있으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차 문을 열면서 '아,, 와줘서 고마워요'라고 격한 거짓말을 했다. 뛰는 동안에도 손님으로부터 카톡은 계속 울려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양해를 구하고 빨리 차를 수리를 해서 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서비스 차량을 타고 샤토 슈발블랑 포도밭을 한 바퀴 삥 돌아서 내 고장 난 차량에 겨우 도착을 했다.

서비스 기사도 나처럼 자동차 키를 돌려보지만, 차량은 컬럭컬럭 헛구역질뿐이었다.

기사는 차량에서 배터리를 갖고 내리더니, 이것만 대면 괜찮을 것 같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제발 차량 고장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였으면 좋겠다 라는 기대는 대서양을 건너갔다.

배터리에 충전을 해서 시동을 걸렸지만, 다른 문제가 있어서 차량은 움직이질 않고 다른 경고등만 들어오는 것이다. 1시간 30분 만에 나타난 기사는 나에게 선고를 내렸다. 차량을 견인해서 서비스센터로 가서 수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20220408_161158.jpg

'나는 자연 인다'에 출연하는 사람들을 보면 모든 거 다 버리고 산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유가 그냥 마음 편한 게 제일 좋아서 라는 이유다. 그때는 나도 자연인이 되고 싶었다. 그 모든 상황이 싫어졌다. 하나 해결하면 다른 문제 생기고, 작은 문제이기를 바라면 그 예상은 항상 빗나가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20220408_164506.jpg

지금 나를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 있는데,,, 제일 중요한 건 이 부분을 빨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 그럼 차량은 정비센터로 보내져서 수리를 하면 되고,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 택시를 불러야지. 택시로 손님을 모시러 가야 한다.

택시 회사로 전화를 했더니 20분 안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나를 기다리는 손님은 거의 2시간을 기다렸는데 20분 더 기다려 달라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하지?

하지만, 포도밭 한가운데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라고는 기다리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또다시 손님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택시를 기다렸다.

역시나 프랑스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20분 안에 온다던 택시는 40분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내가 프랑스에 살고 있다는 것을 계속 확인만 시켜줬다.

그때 기분은 이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라고 느꼈다.

45분 정도가 지나서 불렀던 택시를 취소하려고 하자, 택시가 나타났다. 불평도 하기 싫었다.

그냥, 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손님과의 후일담은 하고 싶지 않다. 나도 그냥 자연인이 되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IMG_7244.JPG

맑은 하늘에 포도밭 한가운데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두 문장.

나는 지금 프랑스에 살고 있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ㅎㅎ






keyword
작가의 이전글10년은 찍어야 볼 수 있는 샤토 마고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