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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Aug 06. 2020

어렵다 인간관계

어이없이 봉변당한 날... 

학부시절 심리학 시간에 배운 바에 따르면 인간관계에는 단계가 있다고 했다.

생성, 친밀 , 소멸이었던가.. 다섯 단계로 나눠지는 학설이었던 것 같은데 인간관계 속에서 잊을만하면 생각나곤 하는 학설이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것은 소멸.

처음에는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이고, 그리고 친밀해지는 단계, 종국에는 인간관계의 소멸이라고 했던 것 같다.

정확한 기억도 나지 않고 교재도 이미 처분해버린 지 오래라 저 단계가 맞는 건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인간관계에도 단계가 있다는 것은 항상 기억나는 개념이었다.


사무직 근로자이다 보니 항상 PC 앞에 있어 메시저는 언제나 로그인 상태다. 그러다 보니 카톡으로 거의 매일 대화하는 친구가 있다. 어떤 날은 서로의 상사에 대한 푸념이 있기도 어떤 날은 사고 싶은 쇼핑리스트에 대한 의견이 나눠지기도 하는데 가끔은 너무 귀찮다 싶을 정도로 대화를 쏟아내는 친구가 버거운 적도 있었다. 대답을 안 하면 그만이지 않나 싶겠지만 관계에서 특히 대화의 뉘앙스에 예민한 나와 같은 사람들은 그렇게 일반적으로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그냥 상대방이 말을 그만 해주기를 바랄 뿐. 업무에 방해가 될 만큼 떠드는 날도 있었지만 이게 다 관계를 위한 거라고 이런 것으로 돈독해질 거라고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 친구의 단점은 본인의 기분에 따라 상대방에게 본인의 감정을 쏟아내는 낸다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일희일비하고 친구들과 모임 날짜를 정하는 것도, 위치를 정하는 것도, 대부분 본인 위주로 돌아가길 바라고. 하다못해 식사 메뉴도 본인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때까지 거절하기도 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의 삶이 녹녹지 않음을 알기에 대부분은 그냥 따라주고 넘어가 주는 편이었는데 그날은 어쩐지 그 친구의 말투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비난의 말이 너무나 거슬렸다.

 시작은 모임 날짜를 정하는 것 때문이었는데, 그동안은 그 친구의 사정에 거의 맞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다른 일정으로 그날은 안 되겠다고 고집을 피우길래 이런 점은 조금 섭섭하다 했더니 왜 본인에게만 비난의 화살이 돌아오는 거냐면 카톡으로 쉴 새 없이 화를 내고 본인 기분이 오늘 좋지 않아서 그런 거니 이해하라면서 일반적인 통보로 사과 아닌 사과도 함께 보내왔다.

 일반적인 감정, 마치 내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 친구에게 갖고 있던 애정의 마음이 아주 차갑게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니 비단 그날 오전만 하더라도 모든 것을 나누고 걱정과 고민과 행복과 일상을 공유하던 친구였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싫어질 수 있는 것인가 했지만...

아마도 그동안 내가 그 친구의 감정의 쓰레기를 받아주면서 한편에서는 미움이 차곡차곡 쌓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너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무엇이 아쉬웠는지 그 말은 꾹 참고 또 한 번 그렇게 넘겼다. 그런데 지나고 나고 이 기분이, 왜 내가 그 아이의 투덜거림을 들어줘야 하는지, 대체 그 아이는 나에게 왜 이러는 건지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 이런 관계가 건강한 관계는 아님을 알아차렸다.

고민거리를 다 받아주는 아주 너그러운 친구의 모습이었지만 실상 내 안에서는 내가 왜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나 하는 감정의 응어리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던 것 같다.


 우리의 관계는 생성되고 친밀해졌다가 이제는 소멸의 길로 가는 것 같다.

혹시 이 앙금이 풀리면 다시 친밀함이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당분간은 더 이상 친구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몇 남지 않은 친구일지라도 관계를 이어나감에 있어 내가 소비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관계는 사절이다.


 마음이 심란할 때는 그간 사찰들을 다니면서 읽었던 법구경의 글귀들을 찾아보는데 

오늘 눈에 든 것은 바로 이 것 




불견 不見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 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고 옮고 그름을 살펴야 한다. 


불문 不聞

산 위의 큰 바위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비방과 칭찬의 소리에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 


불언 不言

나쁜 말을 하지 말라. 

험한 말은 필경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악담은 돌고 돌아 고통을 몰고 끝내는 나에게 되돌아오니 

항상 옮은 말을 익혀야 한다'.


-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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